
고일(1903~1975) 선생은 인천의 대표적인 언론인으로 손꼽힌다. 그를 '인천석금(仁川昔今)'을 쓴 향토사학자로 기억하는 이들도 많다. 인천석금은 인천 근현대 향토사를 다룬 책 가운데 원조로 꼽힌다.
인천시립박물관 1층에서 열리고 있는 '매일매일 인천 기록 : 고일 미공개 아카이브' 전시는 언론인, 향토사학자뿐 아니라 항일운동, 청년운동, 사회운동, 문화·예술운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천지역 '오피니언 리더'로 활약한 그가 남긴, 그에 대한 기록을 만날 수 있는 전시다.

고일의 본명은 희선(羲璇)이며 호는 '산재(汕哉)'로 그는 1903년 5월 6일 서울 마포에서 출생했다. 그는 생후 4개월 만에 인천으로 이주해 평생을 인천에서 살았다. 1915년 창영초교 전신인 인천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18년 서울 양정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다.
서울로 통학하면서는 곽상훈을 중심으로 결성된 '경인기차통학생회' 친목회 문예부에서 활동했다. 우현 고유섭, 이길용(동아일보 일장기 말살 사건 주인공), 송건우, 임영균 등과 함께 기관지인 '제물포'를 발행하기도 했다. 연천공립보통학교에서 교사로 일한 이력도 있다. 인천으로 돌아와서는 조선일보 인천지국 기자와 시대일보 인천지국 기자 등을 역임했다.

1926년 진우촌·원우전 등과 칠면구락부를 결성해 문화운동에도 힘썼고, 노동운동에도 만은 관심을 가졌다. 조선인 여공이 일본인 감독에게 맞아 파업을 벌인 가등정미소에 대한 그의 기사는 도화선이 되어 여러 정미소가 동맹파업을 단행했다. 또 부두 노동자들까지 합세해 파업에 돌입해 인천 전체가 총파업을 벌였다.
이번 전시는 '기억을 기록하다', '기록을 기억하다' 등 두 가지 주제로 구성됐다. '인천시사' 원고 등 시사편찬 관련 자료와 경기언론 25년 회고를 비롯한 인천 향토사 관련 육필 원고가 최초로 선을 보였다. 특히, 인천시사편찬위원회 초대 상임위원인 그가 타계하면서 그 전모를 알 수 없게 된 인천 상고사, 인물사 내용의 실마리를 찾게 하는 인천 상고사·중고사 원고, 인천 인물 12명에 대한 기록 등도 만날 수 있다. 본인이 작성한 신문 기사 스크랩 등 그가 수집, 소장한 각종 기록물도 함께 전시됐다. 그의 손자인 고춘씨가 기억하는 할아버지에 대한 인터뷰 영상도 고일 선생을 폭넓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