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의 향토 하역사이자 종합물류기업인 (주)선광의 설립자인 고(故) 심명구(1922~2008) 회장을 기리는 추모 전시 '시간을 건너 당신에게로'가 인천 선광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올해는 심명구 회장이 생존해 있었다면 100세가 되는 해로 그의 100번째 생일을 앞두고 심명구 선대 회장의 3세들이 힘을 모아 마련한 전시다.
이번 추모전은 선광을 국내 최고 수준의 종합물류기업으로 성장시킨 고인의 삶을 입체적으로 재현해냈다. 3부로 구성된 전시회를 들여다 보자.

■ 인천항 하역업의 선구자
=1부는 인천항을 일군 기업인으로서 심 회장의 면모를 소개한다. 심 회장은 1922년 10월 평택에서 출생했다. 안중공립보통학교와 서울 중앙중학교에서 수학했다. 1949년 국학대학교(고려대학교에 흡수 통합)문학과를 졸업했다.
옛 조선기계제작소(현 두산인프라코어)에서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1948년 4월 인천항에서 창고업 면허를 받아내 '선광공사'를 창업했다.
이후 통관업과 항만하역업 등으로 사세를 확장하면서 1961년 개인회사에서 법인인 주식회사 선광공사로 전환했다. 1980년대 중동 건설 붐 시기에 선광은 리비아 브레가항, 미스라타항, 벵가지항만 등에 하역 노무자와 관리직 등 450명 규모의 국내 직원을 보내 해외 항만하역사업에 나서기도 했다.
이후 약 10여 년간 건설 기자재 등 하역사업을 통해 연간 2천만 달러의 외화를 획득하는 등 급속 성장했다. 선광은 인천항에 양곡 전용부두가 생기고 양곡 수입이 급증하자 1985년 내항에 사일로를 준공했다.
1997년부터는 컨베이어벨트로 연결하는 현대화한 사일로를 운영했다. 사일로는 선광이 일반 화물하역사업에 국한하지 않고 새로운 사업에 진출해 안정적인 이익을 올리는 기반이자 선광을 대표하는 상징이 됐다.
1948년 창고업 면허로 '선광공사' 창업
'야드 자동화' 신컨테이너터미널 운영
선광은 인천 북항에 다목적부두를 건설·운영했고 군산과 평택 등 국내 다른 항만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선광은 인천신항 운영 참여를 결심하고 인천항 최초로 야드 자동화가 실현되는 컨테이너터미널을 계획했다. 3천억원의 사업비를 투입해 2015년 6월 선광신컨테이너터미널(SNCT)를 개장했다.
선광은 글로벌 인천항의 파트너로서 1883년 개항한 인천항이 세계 40위권 항만으로 성장한 데 향토 하역사로서의 큰 역할을 했다. 현재 선광은 인천항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인천신항에서 선광신컨테이너터미널(SNCT)을 운영하며 인천항 컨테이너 물동량의 3분의1을 처리할 정도로 인천항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 꿈 그리고 헌신
=심명구 회장은 현대 하역업을 일군 기업인이면서도 동시에 조상의 전통과 교육을 중요하게 여겼다.
특히 청송심씨 대종회장으로 일하며 파평윤씨 문중과 400년간 이어온 '묘지다툼'을 마무리한 일화는 유명하다. 묘지다툼은 파주시 광탄면 분수리에 위치한 고려시대 명장 윤관 장군묘와 조선중기 문신 심지원(1593~1662, 영의정)묘를 둘러싼 두 가문의 다툼이다.
1614년 윤씨 측이 심씨 일가가 심지원의 부친 묘를 쓰면서 고려시대 윤관 장군 묘역을 훼손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한다. 1763년 청송 심씨 문중은 파평 윤씨 문중이 윤관 장군 묘를 되찾겠다는 이유로 심지원의 묘를 훼손했다며 윤씨 가문을 처벌해 달라고 당시 고양군수에게 요구하면서 분쟁이 본격화됐다.
난처해진 고양군수는 이 문제를 중앙정부에 넘겼고, 영조 임금은 "윤관 장군 묘 위에 모셔진 심지원 묘를 그대로 받들고 윤 장군 묘도 그대로 받들라"는 절충안을 제시했지만, 윤씨 문중의 일부 인사가 왕명에 반발하다 매를 맞고 죽임을 당하는 참사가 빚어지며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1969년에는 양가 후손들이 화해각서를 교환하는 등 해결의 기미도 있었지만 무산됐다.
심 회장은 갈등의 해결을 위해서는 조상의 묘도 옮기겠다고 결단했고 양보와 타협으로 400년간 지속된 두 집안의 묘지 다툼에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되었다. 2005년에 두 집안이 합의서를 체결하고 2008년에 청송 심씨의 묘를 이장함으로써 묘지 다툼은 종지부를 찍었다.
'양보·타협' 청송심씨-파평윤씨 문제 해결
지역 젊은인재 양성 위한 문화재단 설립
그는 특히 조상의 전통과 삶의 지혜가 녹아 있는 책들을 꼼꼼히 읽었다. 그는 "눈이 아프도록 보아야 한다"고 했다. 한문으로 되어 있는 선대의 책들을 번역 발간해 널리 보급했고, 집안 대대로 내려온 소중한 책과 문서들을 가보로 간직하고 있다.
그는 향토기업으로서 국가와 지역사회에 보은의 기회를 마련하고자 늘 마음속으로 고민해왔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바로 장학사업이다.
그는 사회 발전을 위한 백년대계는 인재육성을 위한 '교육'에서 찾아야 한다고 확신했다. 그는 장학사업을 통해 지역사회 구성원 모두가 서로를 사랑하고 희망을 함께 나누는 건강한 교육문화를 만들고자 했다.
또 재능과 소질 있는 지역 젊은 인재들이 국가와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인재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취지에서 2002년 선광문화재단을 설립했다.

■ 손때묻은 물건들
=3부에서는 손때묻은 고인의 물건들을 만날 수 있다. 특히 3층에 재현된 그의 집무실이 인상적이다.
고인이 사용했던 책상과 작업복, 명함, 당좌수표 첩, 가방 등 그의 손때가 묻은 물건 등도 만날 수 있다.
특히 심 회장은 애정과 열정으로 종사(宗事)를 돌보았던 선친의 영향으로 오랜 기간 대종회를 위해 노력했는데, 집안 문중의 책과 문서를 늘 곁에 두고 보았다고 한다.
심명구 회장은 집안 대대로 내려온 책에는 조상들의 삶과 지혜가 들어있다고 생각했다. 선조들이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 만들어 낸 책들을 단지 옛것으로만 치부하지 않고 선조들의 삶과 생각을 전하기 위해 노력했다.

■ [인터뷰] 추모전 기획 심우현 선광미술관장 "인천항 일군 할아버지 이야기 공익적 가치"
"인천항을 일군 기업인으로서의 삶뿐 아니라 '레이어'가 다양한 입체적인 할아버지의 면모를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심명구 회장의 추모전 '시간을 건너 당신에게로'를 기획한 심우현 선광미술관 관장은 이번 전시에 대해 이렇게 소개했다.
심 관장은 심명구 선대 회장의 차남인 심충식 부회장의 딸로 선광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선광미술관에서 지난해 말부터 일하고 있다. 직책은 관장이지만 아직 정식 미술관도 아니고 직원도 따로 없어 관장이라는 직함이 어색하다고 했다.
심우현 관장은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지난 14년 동안 나무 상자에 보관됐던 할아버지의 유품을 볼 때마다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하지 못하는 점이 늘 가슴 아팠다"면서 "때문에 할어버지의 100번째 생일에 맞춰 이번 전시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인천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인천항을 일군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많은 이들과 공유해도 될만한 충분히 공익적인 가치가 있다는 것이었다.
심 관장은 서재에서 책을 보시던 할아버지의 모습과 하교 길에 자신을 마중 나오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그럼에도 이번 전시에서는 개인적인 추억은 배제하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거리감을 지키며 전시를 구성하려 애썼다고 한다.
미술을 전공한 심 관장은 작가로 활동하면서 자신도 여러 기업으로부터 혜택을 받은 만큼 앞으로 지역 작가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전시를 기획하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그는 "인천에는 훌륭한 작품과 작가들이 많다. 예술적으로 충분한 잠재성이 있는 도시라고 생각한다"면서 "제가 받은 혜택들의 장점만을 선별해 작가를 위한 미술관으로 전환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