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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용 경기북부평화시민행동 공동대표
지난 9월29일 한국 주둔 미군을 상대로 성매매에 종사한 위안부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대법원은 원고의 손을 들어주며 기지촌 위안소를 운영한 것이 정부 주도의 국가폭력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고(故) 윤금이씨'의 30번째 기일을 맞아 추모와 위로, 다짐의 행사를 앞두고 있던 동두천의 경기북부평화시민행동은 때맞춰 나온 의미 있는 판결을 환영하며, '고(故) 윤금이씨'로 대변되는 수많은 기지촌 여성들이 그때의 잔인한 시대상을 벗어나 어여쁜 누이이자, 어머니, 웃음 좋은 할매로 우리 사회에 온전히 복원되길 바라는 마음 가득하다.

인종차별을 동반한 우월감으로 중무장한 미군과 나약하고 복종적인 모습의 대한민국, 그 인연의 시작점은 어디였을까? 그곳으로 거슬러 가 보지 않고서는 30년 전의 그 사건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30년 전의 그 사건과 그 이후 일어난 일들을 알지 못하고서는 현재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위안소 운영 국가폭력 인정 대법 판결 환영
미군 상대 정신·육체적 고통 받으며 죽어가


1945년 해방으로 들떴던 시절도 잠시, 대한민국 전국에 배치하며 군정을 실시했던 7만의 미군은 해방군이 아닌 점령군의 모습으로 한반도에 들어와 이 땅에 대한 강력한 통제력을 확보하고 1949년 6월 500명의 군사고문단을 남긴 채 완전히 철수한다. 그러나 1950년 한국전쟁을 계기로 미군은 다시 이 땅에 들어와 한국 군대의 통제권을 모두 가지고 정전협정을 맺는 당사자가 됨으로써 평화를 실질적으로 좌지우지할 더 큰 영향력을 갖게 된다. 불평등한 한미관계의 시작이다.

오로지 '대한민국의 안보를 책임지기 위한 주둔'의 측면만 강조된 채 이루어진 한미행정협정(주한미군지위협정)은 이 땅에 있는 미군에게 무소불위의 힘을 주었으니, 결과적으로 이 땅의 민중은 살기 위해 치욕과 굴욕을 감내하고 억울을 일상화해야 했다. 이후에 이루어지는 미군의 수많은 범죄와 그 범죄에 눈 감고 오히려 더 큰 희생을 강요하는 국가의 행위는 이런 불평등한 한미관계의 당연한 결과물일 뿐이다. 이런 불평등의 최전선에 미군 기지촌이 있었고 그 중심에 미군 위안부들이 모든 권리를 박탈당한 채 미군과 포주의 폭력에 노출되어 위태로운 생을 견디게 되었다. 자국민을 보호해야 할 국가가 의무를 방기하고 폭력을 오히려 장려하고 구조화한 공범자였음을 대법원은 판결로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평등한 한미관계가 모든 폭력의 원인이며, 평등하고 호혜로운 관계로 개선하려는 노력을 시급히 하지 않는 국가 또한 공범인 것이다.

순하디순한 우리의 누이들이 가난에 밀려 공장으로, 파출부로, 술집으로, 기지촌으로 떠밀려 가던 시절 무소불위의 힘을 쥔 미군을 상대하는 일은 정신과 육체를, 삶과 죽음을 담보 잡아 구차한 생을 끌고 가는 일이었다. 기지촌에 들어온 여성들은 폭력과 혐오의 대상이 되어 고통받고, 착취당하고, 죽어갔다. 동두천의 상패동엔 그런 죽음들이 비석도 없이 검은 말뚝에 노란 번호가 된 채 산을 이루고 있다. 10월28일은 1992년 동두천에서 참혹한 모습으로 살해당한 '고(故)윤금이씨'의 30번째 기일이다. 그녀의 유해도 그 산에 뿌려졌으니 그녀의 삶과 죽음이 그곳에선 특별한 건 아니다. 거기에 묻힌 많은 사람처럼 그녀 또한 그 산의 어느 비탈에 돋았다가 겨울에 사라지는 풀잎 같은 존재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녀의 죽음 SOFA개정 민중 움직임 일으켜
상패동에 쓸쓸히 묻힌 아픔들 특별한 존재


그런 그녀의 죽음을 다시 꺼내는 이유는 그녀의 죽음이 미군 범죄 근절과 불평등한 SOFA의 개정을 위한 민중의 움직임을 일으켰다는 데 있다. 그 결과 결국 범인 케네스마클을 한국 법정에 세워 단죄할 수 있었다. '고(故) 윤금이씨'의 죽음을 통해 상패동에 쓸쓸히 묻혀있던 아픔들이 기억되고 추모받을 특별한 존재들이 된 것이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통해 깨어있는 민중의 정의로운 분노와 저항이 모든 폭력을 쓰러뜨릴 수 있는 힘의 원천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경기북부평화시민행동은 '고(故) 윤금이씨'의 30주기 기일에 맞춰 시대와 국가로부터의 폭력에 쓰러져간 기지촌 여성들을 우리의 어여쁜 누이이자, 어머니, 웃음 좋은 할매로 환원시키고자 동두천에서 조용하고 진심 어린 추모식을 준비하고 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한미관계는 평등하지 않고, 평화의 한반도는 요원해 보이지만 말이다.

/김대용 경기북부평화시민행동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