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핼로윈 참사] 깊은 상처로 남은 죄책감 '생존자의 편지'

입력 2022-11-06 14:08 수정 2022-11-06 14:59
지면 아이콘 지면 2022-11-07 2면
경찰·국과수, 이태원 압사 참사 현장 합동감식
이태원 압사 참사를 수사 중인 서울경찰청 수사본부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들이 10월 3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압사 참사 현장을 합동감식 하고 있다. 2022.10.31 /김도우기자 pizza@kyeongin.com

3일 동안 다리에 감각이 없다 지금은 조금 호전됐어요. 다음 주엔 다리 쪽에 괴사가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피검사를 할 예정입니다. 가끔 과호흡증이 오기도 해요. 무의식적으로 그날 참사 현장에 있다고 생각해 숨을 자꾸 크게 들이마시려고 해서 그런가 봐요. 그때 산소가 부족해서 무조건 숨을 크게 들이마셨거든요.

가장 힘든 건 죄책감이에요. 둘이 갔다가 저만 살아 돌아와서 죄책감을 지울 수 없을 것 같아요. 끝까지 옆에 있어 주지 못한 게 가장 슬프고 마음 아파요. 계속 같이 있었다면 제가 뭐라도 해줄 수 있지 않았을까, 지금도 계속 되뇌어요.

연지는 고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가장 친한 친구예요. 9년 동안 서로 바쁘더라도 꾸준히 만나고 생일도 꼭 챙겨줬어요. 그날 핼러윈 축제도 연지가 제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데리고 간거에요. 제가 요새 개인적으로 안 좋은 일이 많았거든요. 연지 덕분에 난생처음 서울에서 술도 마셔봤죠.
고등학생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와 찾은 이태원
덕분에 난생처음 서울에서 술 마시기도
처음에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였던 참사 현장
갑자기 몰린 사람들에 내리막길 골목 떠밀려
저와 연지는 지난달 29일 이태원 참사 현장에 있었어요. 오후 10시에 이태원세계음식문화거리 인근 술집에서 밖으로 나왔는데요. 처음엔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였는데, 갑자기 사람이 몰려 해밀톤 호텔 옆 내리막길 골목으로 떠밀려 가게 됐어요. 그러는 와중에 연지랑도 흩어지게 됐죠.



저는 맨 앞쪽에서 하반신이 깔린 채로 1시간 반 동안 있었어요. 신발도 벗겨지고 발도 땅에 닿질 않아 공중에 떠 있었죠. 구조가 지연되자 옆 여성분은 구급대원분께 본인의 이름과 부모님 연락처를 알려주면서 부모님께 사랑한다고 전해달라 하기도 했어요.

산소 부족으로 의식을 잃을 때가 많았어요. 그때마다 구급대원분이 호흡기를 달아주셨죠. 오전 12시께 구급대원분이 간신히 저를 끌어당겨서 구조될 수 있었어요. 구급차 안에서 의식이 들자마자 연지가 떠올랐어요. 연지는 새벽 내내 연락이 안 됐어요. 느낌이 좋지 않았지만, 핸드폰을 잃어버려서 연락이 안 되는 거라고 굳게 믿었죠. 반나절이 지나서야 첫 연락이 왔는데 그게 연지의 사망 소식이었어요.
하반신 깔린 채로 1시간 반 동안 버텨
반나절 지난 뒤 첫 연락이 친구의 사망 소식
우측 보행 통제됐더라면 사고 없었을지도
세월호 참사 이후 크게 달라진 것 없어
정쟁보다 참사 방지·국민 안전 먼저 생각하길
연지가 떠나고 이번 참사가 왜 발생했는지 생각해봤어요. 그날 6시부터 이태원에 있었는데 사고 발생 때까지 통제하는 경찰분들을 한 명도 못 봤어요. 축제 참석자들이 우측 보행할 수 있게 통제됐더라면 사고가 발생하진 않았을 것 같아요. 지난 축제 때 사진을 보니 그때는 경찰분들이 계셨던데 참 아쉬웠어요. 왜 이번엔 경찰분들이 안 계셨는지 모르겠어요. 핼러윈 축제 때 이태원에 사람 몰리는 게 한두 번은 아니지 않나요.

세월호 참사 이후로 크게 달라진 게 없는 것 같기도 해요. 세월호 희생자 중엔 제가 아는 친구들도 있는데요. 그때 정부가 안전망을 구축하고 강화하겠다고 했지만, 8년 동안 크게 나아진 게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에도 안전망을 구축하고 강화한다고 하는데 기대가 안 되는 건 사실이에요. 터지고 나서야만 이런 대책을 만드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요.

그럼에도 저와 연지 같은 피해자가 다시는 나오지 않길 바라요. 다시는 이런 참사가 재발하지 않도록 제도를 만들고 보완해줬으면 해요. 정쟁보다는 참사 방지와 국민의 안전을 꼭 먼저 생각해줬으면 합니다.

*이 편지는 김정연(26·시흥·가명)씨의 구술 인터뷰를 바탕으로 재구성해 작성했습니다.

/김동한기자 dong@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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