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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광장] 카타르 월드컵에서 배운 삶의 기술 '사과하기'

입력 2022-12-13 19:45
지면 아이콘 지면 2022-12-14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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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서 아주대학교 스포츠레저학과 교수
지난달에 시작한 카타르 월드컵대회가 다음 주 월요일에 끝날 예정이다. 카타르 월드컵 중계권을 확보한 네이버에 의하면 우리나라와 포르투갈 경기의 누적 시청자 수는 1천152만6천845명이고 최다 동시 접속자 수는 217만4천7명에 이른다. 이 수치를 작년 국내 프로축구(K리그) 네이버 중계에서 1경기 최다 동시 접속자 2만4천185명과 비교하면, 월드컵 최다 동시 접속자 수가 90배 정도 많다. 평소에 축구를 보지 않아도 월드컵을 시청하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월드컵을 시청하는 것은 자기 국가 팀의 승패를 확인하거나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 기량을 보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세계 일류 선수들이 보여주는 도전, 노력, 눈물과 기쁨을 인간의 삶에 투영하고 자기 삶을 성찰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의 스포츠과학자 스캇 피어스와 그의 동료는 이러한 현상을 '스포츠를 통한 삶의 기술 전이(life skill transfer)'라고 명명하였다.

이번 카타르 월드컵에서 우리에게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12월3일 포르투갈 팀을 상대로 우리나라 팀이 2-1로 역전하며 이긴 때이다. 그리고 이 경기의 종료로 16강 진출이 확정되지 못하고, 우루과이와 가나 경기 결과가 나오기를 8분 기다려서 마침내 승점이 높은 우리나라의 16강 진출이 확정된 때였다. 이때 8분은 80분이라도 되는 양 느껴졌다. 이 순간 우리는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인간의 숭고함을 느꼈고, 삶에서 자기 노력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타인의 조력과 운도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12년전 사건 수아레스 "사과않겠다"
가나, 복수심에 우루과이 16강 저지


그런데 우루과이와 가나전 결과를 기다린 8분 동안 의문이 생겼다. 가나 선수들이 한 골도 내주지 않겠다는 각오로 너무나 결사적이었다. 경기 종료 1분을 남기고 가나 감독이 선수 1명을 교체하기까지 했다. 가나팀이 2-0으로 지고 있어서 16강 탈락이 확정된 상태라서 3-0으로 져도 결과가 같은데, 왜 부상을 무릅쓰고 악착같이 싸우는 것인지 궁금했다. 처음에는 가나 선수들이 월드컵에서 자기 경기력을 잘 보여서 좋은 프로팀으로 진출하려는 경제적 이유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나중에야 8분 싸움이 가나의 12년 걸린 복수라는 것을 알았다. 2010년 월드컵 8강전에서 가나와 우루과이가 1-1 동점으로 연장전에 들어간 막바지에 가나 선수의 헤딩으로 공이 골문으로 들어가는 순간 우루과이의 수아레스가 손으로 공을 막았다. 수아레스는 이 파울로 가나에게 페널티킥(penalty kick)을 내주고 퇴장을 당했다. 가나는 페널티킥을 실축하고 승부차기에서 4-2로 졌다. 12년이 흘러 두 팀이 다시 만나자 가나는 우루과이의 16강 진출을 막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가나의 복수심이 더욱 타오른 것은 경기 직전 기자 회견에서 수아레스가 한 말 때문이라고 한다. 12년 전 사건에 대해 사과하겠냐는 질문에 대해 그는 "사과하지 않겠다. 나는 당시에 레드카드를 받았다. 가나 선수가 페널티킥을 실축한 것은 내 잘못이 아니다. 내가 만약 가나 선수를 다치게 했다면 사과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선수 관점만 따진다면, 수아레스는 파울을 잘 활용한 영리한 전술을 펼쳤고, 파울에 대해 대가도 치렀기 때문에 사과할 것이 없을 수 있다. 하지만 팬의 관점에서 가나 국민의 분노를 고려했다면 다르게 말할 수 있었다. 그가 팬 입장에서 가나 국민이 느끼는 분노를 자신도 이해한다고 먼저 공감을 표현하고, 선수로서 본능적으로 손을 뻗쳐 공을 막는 파울을 저질렀는데, 선수로서 어쩔 수 없이 저지른 실수에 대해 사과한다고 12년 전에 아니면 이번에라도 사과했다면 어땠을까.

자기 관점에서 잘못한 것 없는데도
상대방 상처 왜 받았는지 고려해야
사과할 일 있다면 하고 다음 해 맞자


사과할 필요성을 따질 때, 우리는 자기 관점만 고려하여 잘못이 없다고 판단하여 사과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자기 관점에서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상대방이 왜 마음의 상처를 받았는지, 상대방 입장까지 고려하는 삶의 기술이 필요하다. 먼저 상대방 관점에서 내 행동으로 인하여 마음의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것에 공감하는 것이 사과의 출발이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시기이다. 내가 사과할 일이 있는지 살펴보고 만약 있다면 올해가 저물기 전에 사과하고 다음 해를 맞이하자.

/이현서 아주대학교 스포츠레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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