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사부곡(思父曲)이자 가슴에 자식을 묻은 아비의 초혼(招魂)이다.
태어남은 일관되게 모두 출생이지만 죽음은 여러 가지로 나뉜다. 이 이야기는 자연사가 아닌 사고사, 그 중 재해로 인한 사망을 다룬다. 더 정확히는 사망이 남기고 간 흔적, 재해 중엔 중대한 재해가 대상이다.
지난해 1월 27일 시행된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은 중대재해를 '중대산업재해'와 '중대시민재해'로 나누고 가·나·다, 1·2·3 항목을 들어 사고를 분류했다.
이 법이 가리키는 죽음의 갈래는 여럿인데 남은 가족에게 죽음은 '사랑하는 자의 영구한 부재(不在)', 단 하나다. 부재는 너무나 뚜렷해 잊을 수가 없는데 '처벌'은 온데간데없다. 중대재해처벌법에서 처벌이 사라지고 재해만 남은 형국이다.
이 법의 시행 1년을 맞아 흩어진 부재의 흔적을 좇았다. → 편집자 주
스물셋에 떠난 자식 눈앞에 있는듯
"절대로 아빠를 용서말라" 눈시울
돼지국밥 뚝배기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뿌연 김 사이로 9살 선호가 앉아 있다. 깍두기를 올려 밥을 먹으니 순식간에 그릇 바닥이 보였다. "원 녀석아 천천히 좀 먹어라. 누가 안 쫓아와." 말이 목젖까지 차올랐지만 내뱉지 못했다.
안개처럼 김이 사라지자 앞자리는 부재였다. 그렇다, 선호는 없다. 스물 셋 이선호는 스물 넷이 되지 못했다. 그의 시간은 2021년 4월 22일 오후 4시 10분 평택항에 멈췄다.
이재훈(60)씨는 사고가 난 22일 직후에 현장을 두 번 찾았다. 사고 이튿날엔 현장에 흩어진 선호 유품을 찾았다. 사흘 뒤엔 문득 발걸음이 이끄는 대로 그냥 선호랑 점심 먹던 구내식당에 갔다. 선호는 식판을 앞에 두고 휴대전화를 만지며 점심을 먹곤 했다.
자기는 바람 부는 항만에서 몸 쓰며 일해도 저 밖에서 또래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을 테다. 구내식당 주인은 "아버지랑 같이 일하고 아들 참 착하다"며 늘 선호에게 분홍색 캔음료를 줬다.
이씨는 선호가 없는 구내식당에서 선호가 먹지 못할 분홍색 캔음료를 두고 말했다. "선호야 절대로 아빠 용서하지 마라." 그 모습을 본 식당주인이 같이 울었다.
이씨는 돼지국밥을 비우고 자리를 일어났다. 선호는 없지만 살아야 한다. 서른 다섯이 된 선호 누이가 집에 있으니. 선호가 누이보다 먼저 갈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2020년 말 누이는 유방암 판정을 받았다. 6차까지 항암을 받고 민머리로 겨우 회복하나 싶던 시기, 선호가 세상을 떴다. 선호는 없지만 누이의 항암치료는 이어진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1971년부터 운영한 이곳 부산진구 마산국밥을 선호는 참 좋아했지. 옆동네 동구 수정동 목욕탕에서 물장구를 치며 놀던 어린 선호도 눈에 선하지. 선호가 죽고 평택 떠나 부산에 왔는데 어찌 된 게 여기엔 선호 흔적이 더 많다. → 3면에 계속([중처법 1년, 부재의 흔적을 좇다·(上)] 죽은 이들이 만든, 사람을 살리는 법)
/배재흥·이시은·유혜연·김산기자 mountain@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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