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로쇠 나무에 물방울이 맺혀 있다. /단월 고로쇠축제추진위원회 제공/클립아트코리아 |
통일신라 말기, 풍수학의 대가로 알려진 도선 국사는 광양 옥룡사에서 참선 중이었다. 오랜 수행 후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무릎이 펴지지 않았고, 옆에 있던 나뭇가지를 잡던 도중 가지가 부러지고 말았다. 부러진 나무에선 수액이 흘러나왔고 그것을 마신 도선은 신기하게도 무릎이 쉽게 펴지는 경험을 했다고 한다.
이후 수액을 '뼈에 이로운 물'이란 뜻의 '골리수(骨利水)'라 불렀고, 그 말이 변해서 '고로쇠'가 됐다.
고로쇠 추출 이미지. /양평군 제공 |
■ 자연이 허락한 나무의 선물
강원도 홍천군과 접경지역인 경기도 양평군 단월면. 이곳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기암괴석으로 '소금강'이라 불릴 만큼 빼어난 경관을 지닌 소리산이 있고 맑은 공기 가득한 숲, 약수터가 지천에 있는 청정지역이다.
봄이 되면 전국 최대 규모의 고로쇠 축제가 열리는 곳이기도 한데 소리산과 쾌일산, 보룡천 일대에서 채취한 고로쇠는 매년 10만명이 넘는 방문객의 목을 축여준다.
고로쇠 나무 수액은 1.8~2%의 당도에 각종 영양소가 다량 함유된 '건강한 단물'이지만 1년 내내 마실 수는 없다. 이른 초봄 2월 중순에서 4월 초순까지만 채취되는 고로쇠 수액은 나무 지름 10㎝가 넘어야 구멍 하나를 겨우 뚫을 수 있기 때문이다.
뼈에 이로운 물 '골리수'가 변한 말
1.8~2% 당도 각종 영양소 다량 함유
2월 중순~4월 초순 '이른 초봄' 채취
국유림관리소, 생산과정 위생 관리
항간엔 무턱대고 나무에 관을 꽂아 수액을 뽑는다는 낭설이 돌았으나 속사정을 알고 나면 고로쇠가 그렇게 귀할 수 없다. 고로쇠 수액의 생산 난이도는 다른 임산물에 비해 높은 편으로, 십 수년간 고로쇠를 채취한 작목반 사람들도 '자연이 허락해야만 조금씩 얻을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고로쇠가 수액을 내는 데엔 몇 가지 조건이 있으나,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적절한 온도 차다. 밤 기온이 내려갈 때 고로쇠 나무의 줄기 안쪽은 수축운동이 일어나며 땅속의 수분을 흡수해 줄기 안으로 빨아들인다. 밤사이 체액을 가득 채운 줄기는 낮에 햇볕을 받아 줄기가 팽창하는데 이때 나무 수피를 벌리면 고로쇠 수액이 나온다. 이외에도 황사가 오는 날엔 나무가 액을 출수하지 않는 등 채취 조건이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나무에서 고로쇠 수액 추출 이후 UV 추출기로 2차 정제 후 밀봉한다. /양평군 제공 |
■ 고로쇠 전통의 고장, 양평 단월
이렇다 보니 1년에 나무가 수액을 허락하는 날은 평균 20일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수액 채취에 이상적인 온도는 밤 영하 3~5도·낮 영상 8~13도로, 일교차가 크고 70% 이상이 임야인 단월면은 고로쇠 나무가 수액을 내뿜기에 최적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
단월 주민들의 구전에 따르면 이곳에서 고로쇠 수액을 마시는 전통은 시대를 거슬러 조선시대에까지 이른다고 한다. 주민들이 고로쇠 나무를 살피다 보면 이전에 수액을 받기 위해 낸 칼자국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성인이 두 팔로 안을 수 없을 만큼 커다란 나무에 난 칼자국은 그 수령을 짐작하는 것조차 어렵다.
즉, 단월의 고로쇠 나무는 대량 생산을 위해 심은 것이 아니라 자생한 나무들이란 의미다.
지난 2018년 제19회 단월 고로쇠 축제 당시 방문객이 고로쇠 수액 판매 부스에서 고로쇠를 구매하고 있다. /양평군 제공 |
고로쇠 축제도 25년 전 단월면 석산1리 고로쇠 마을에서부터 마을 사람들이 작은 규모로 시작했다. 고로쇠나무에 칼집을 내서 쪽대에 이파리를 연결해 항아리를 대고 받아마시는 전통 방식으로 이웃끼리 삼삼오오 모여 마시던 것을 지역의 특산물로 만들어 단월고로쇠축제를 개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고로쇠는 채취 및 관리규정도 상당히 까다로운 편이다. 단월 고로쇠는 고로쇠 나무 1그루씩 국유림관리소의 허가번호를 부여받아 관리하고 있으며 천공과 채취부터 집하·병입 과정 모두 철저한 위생처리를 통해 생산한다. 생산자는 관할 지자체를 통해 수액 채취 허가를 받은 후 채취 기술과 사후관리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나무 한 그루에는 나무의 가슴 높이 지름을 기준으로 10~19㎝는 구멍 1개, 20~29㎝는 2개, 30㎝ 이상은 3개까지 뚫을 수 있다. 또한 나무 보호를 위해 한 해 채취한 나무는 휴식년을 두어 채취를 제한한다.
■ '물로 하는 보양' 고로쇠 축제, 3년 만에 돌아온다
고로쇠 수액에는 염산이온과 황산이온, 마그네슘, 칼륨, 칼슘 등 미네랄 성분이 보통 물에 비해 40배 이상 함유돼 있다. 에너지 공급원인 과당과 비타민, 철분, 망간 등의 무기질 또한 들어있어 '보양'을 선호하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높다.
단월 고로쇠 축제 방문객 연령대는 40~70대 등 7080세대에게 인기가 많으며 축제현장도 방문객이 추억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로 채웠다.
내달 18~19일 3년 만에 열리는 축제
즐길거리 다채… 전통 막걸리 '백미'
그간 코로나19로 인해 2020년부터 축제를 열지 못했으나 오는 3월 18~19일, 3년 만에 '제24회 양평 단월 고로쇠 축제'가 개최될 예정이다. 축제는 주최 측 추산 코로나19 이전 매년 10만명이 몰리는 전국 최대 규모의 고로쇠 행사로, 회를 거듭할수록 길이가 늘어나는 24m 김밥말이, 전통줄타기, 음악회 및 노래자랑, 송어잡기, 추억의 7080 여행 등 다양한 즐길 거리가 가득하다.
특히 축제기간에만 맛볼 수 있는 '고로쇠 막걸리'는 행사의 백미다. 고로쇠 특유의 달짝지근한 맛에 걸쭉하게 뽑은 전통식 막걸리로 방문객들에게 매년 인기가 높다. 판매용 고로쇠는 UV정제기로 살균해 맛과 위생을 모두 잡았다. 생산량은 고로쇠나무 특성상 매년 일정치 않아 어느 해는 행사 첫날 고로쇠가 모두 동나기도 한다.
■ 여용수 고로쇠축제추진위원장 "경기동부 작은 시골 단월… '봄의 축제' 명소 됐으면"
단월 고로쇠축제가 올해로 24해째를 맞았다.
여용수(사진) 단월 고로쇠축제추진위원장은 올해로 16년째 고로쇠 축제를 주민들과 이끌고 있다. 그는 "단월 고로쇠를 경기도의 명물을 넘어 전 세계의 명물로 만드는 게 꿈"이라며 "25년 전 방에서 삼삼오오 마시던 고로쇠가 단월의 축제로 만들어진 이후 9회 본격적인 축제가 시작되고 지금껏 위원장을 맡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 위원장은 "단월면은 경기도 동부지역 끝 작은 시골이다. 현재 고로쇠 작목반 인원은 10명 남짓밖에 남지 않았는데, 이 중 40대 2명을 제외하면 모두 70~80대"라며 "단풍나무인 고로쇠를 이용해 단월을 봄엔 고로쇠 축제, 가을엔 단풍구경의 명소로 만들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고로쇠는 사람이 막 뽑는다고 뽑아지는 게 아니라 나무가 필요한 만큼만 채우고 넉넉한 것을 사람에게 내어주는 것"이라며 "전통막걸리 항아리 양조장에서 빚은 고로쇠 막걸리가 별미니 행사에 오셔서 꼭 드셔보시라"고 말했다.
양평/장태복기자 jkb@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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