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소천한 조호정(1928~2022) 여사는 아버지 죽산 조봉암(1899~1959) 선생이 살았던 질곡의 삶, 그 궤적을 함께 지나간 '시대의 증인'이다.
죽산조봉암선생기념사업회가 최근 펴낸 조호정 여사 유고작 '바위에 새긴 눈물, 삶으로 다시 피어나다' 출판기념회가 지난 24일 인천 부평구 인천북부교육문화센터 소공연장에서 열렸다. 이날 조호정 여사를 회고한 주변 사람들은 그가 완성한 책을 끝내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며 안타까워했다.
조호정 여사가 20년 전 쓴 육필 원고와 인터뷰를 토대로 책을 정리한 이재영 작가는 "조봉암이라는 역사적 인물의 동지로서만 조명된 조호정이라는 사람의 인생을 제대로 다뤄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아픈 역사 속 인물의 자녀 이야기로만 읽지 않고, 현대사를 지나온 조호정 개인의 역사로 읽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죽산기념사업회, 원고·인터뷰 정리
"역사뿐 아니라 개인사로 읽히길"
조호정 여사는 1928년 조봉암 선생이 독립투사로 활동한 상하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조호정 여사가 12살 때부터 시작된다.
그가 만 5살이던 1934년 9월 조봉암 선생은 상하이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돼 신의주 감옥으로 압송됐고, 1939년 7월 출옥해서야 딸을 만났다. 조봉암 선생이 옥살이한 시기 친모 김이옥(1905~1933) 여사를 여의었다. 자신을 친딸처럼 키운 새어머니 김조이(1904~?) 여사는 6·25전쟁 때 납북돼 영영 이별했다.
조호정 여사는 박문여학교를 거쳐 이화여대를 졸업했다. 1951년 임시수도 부산에서 국회 부의장인 아버지의 비서로 일하며 정치적 동지가 된다. 조봉암 선생은 제2대, 제3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며 이승만 대통령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떠올랐으나, 1959년 '진보당 사건'으로 간첩 누명을 쓰고 사형당했다.
이때부터 조호정 여사는 평생을 아버지 명예 회복에 투신했다. 2011년 대법원은 재심을 통해 조봉암 선생의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독립유공자 서훈은 여전히 기약이 없다. 조호정 여사는 마지막 순간까지 이를 아쉬워했다.
이모세 죽산조봉암선생기념사업회장은 "책을 보면 여사님의 죽산 선생에 대한 애틋한 사랑과 그리움, 형용할 수 없는 분노, 외로움, 좌절감이 곳곳에 엿보인다"며 "애석하게도 조호정 여사가 그렇게 바라던 죽산 선생의 서훈과 완전한 복권을 보지 못한 채 소천해 대단히 송구하고 죄송하다"고 말했다.
조봉암 선생의 외손녀, 조호정 여사의 딸인 이성란씨는 이날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 이성란씨는 "어머니는 한 번도 힘들다는 말씀을 한 적이 없이 묵묵히 최선을 다해 살았다"며 "그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아버지를 다시 만나 아주 행복하게 웃는 모습을 그려본다"고 했다.
출판기념회가 열린 부평은 죽산 선생이 제헌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지역구(인천 을구)이기도 하다. 이날 도성훈 인천시교육감을 비롯해 많은 인천 지역 인사가 행사장을 찾았고, 기념사업회 측은 인천시민의 각별한 관심에 깊은 감사를 표했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