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발달장애인 5명 중 1명은 경기도에 산다. 우리는 주로 비극으로 이들의 소식을 접한다. 도내 발달장애인 가족들은 각자의 집과 돌봄이 어우러진 지원책이야말로 비극을 막고 인간다운 삶의 토대가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발달장애 자녀 둘과 사는 김미하(59)씨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 없다. 지난해 8월, 유방암 4기 판정을 받았다. 눕지도 앉지도 못할 극심한 통증을 느껴 병원을 찾은 뒤였다. 의료진은 6개월에서 길어야 1년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암세포가 간을 시작으로 뼈 마디마디로 퍼져 있지만, 그는 자신의 삶과 죽음보다 두려운 게 있다고 했다.
자신이 떠나고도 이어질 두 발달장애 자녀의 삶에 대한 것이다. 그의 남편은 2021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고 없다. 의료진이 주변 정리할 시간을 가지라 했지만 그는 자신이 없다. "제가 죽고 나면 남은 아이들은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걸까요?"
간부터 뼈 마디마디 퍼진 암세포
남편도 2년전 심장마비로 눈 감아
두 남매 시설 적응 못할텐데 걱정
지난 5일 오후 의왕시 청계동의 그의 집을 찾았다. 그가 계속해서 경기도와 의왕시에 요구하는 것은 중증발달장애인을 위한 '지원주택제도'다. 이는 현행 제도에서 아이들 돌봄을 위해 해볼 건 다 해본 그가 경험칙으로 내린 결론이다.
서울시는 2019년부터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공공주택과 돌봄 서비스가 결합된 '서울시 지원주택'을 운영 중이다. 서울시 지원주택 수는 2020년 127호(이하 공급량)에서 2022년 240호로 늘어나는 등 사업은 확장 추세다. 본인 명의 집뿐 아니라, 주거 생활의 필요한 서비스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김씨는 자신이 떠나고 자녀 둘만 남은 자리는 결국 "시설 입소"라고 단언하며 인간다운 삶을 위해 도가 나설 것을 강조한다.
한 집 아래 자녀 둘의 특성이 다른 점도 그의 생각이 굳어진 배경이다. 첫째인 딸(28)은 "'텐션'이 높지만, 여러 사람이 있으면 금방 불안해지는 특성"을 가졌고, 아들(24)은 어디론가 자주 움직여야만 하는 기질을 타고났다고 했다.
보호자 입원 등 이유로 긴급돌봄지원을 받아 활동지원사들의 방문 시간이 늘었지만 이도 능사가 아니었다. 둘의 분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딸을 군포와 수원의 쉼터에 맡기기도 했다. 하지만 스트레스 탓에 원형 탈모가 생기고, 저온화상이 그대로 방치돼 상처를 키우는 등 온전한 생활을 하지 못했다.
그는 "항암으로 입원했을 때 활동지원사 2명과 다른 성별의 자녀 2명을 더해 총 4명이 20평 남짓한 집에서 생활했는데, 지원사분들이 3일도 채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셨다"고 했다.
변한건 없고 "알아보겠다" 답변만
道 "준비 단계… 지자체와 협의중"
김씨는 지난주 3주에 걸친 4차 항암치료를 마치고 나와 야윈 모습이었지만, 목소리 하나는 또렷했다. 경기도와 의왕시를 향해 "자녀의 개인별 자립 지원계획을 지난해 8월부터 요청해오고 있지만, 하나도 변한 게 없다"며 울분을 쏟았다. 지금껏 돌아온 답변 중 최선은 "더 알아보겠다"는 것이었다.
시한부 선고를 받고는 "머리가 새하얘졌다"던 그는 이내 마음을 다잡고 공공의 역할과 아이들이 비장애인처럼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권리를 되새겼다고 한다.
1월에는 전국장애인부모연대와 함께 도청 북부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5주 뒤 도청 회의실에서 장애인자립지원과 등의 도 관계자들을 만난 것도 아이들의 권리 확보를 위해서였다.
김씨와 도내 발달장애인 부모들의 이 같은 요구에 경기도 관계자는 "지원주택사업은 준비하는 단계"라며 "이에 앞서 전담인력을 통해 (김미하씨) 자녀의 홀로서기를 도울 수 있는 '자립생활 체험홈'(2인 생활)을 의왕시와 마련하기 위해 협의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수현기자 joeloac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