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분단의 기억

[전쟁과 분단의 기억·(4)] 전쟁 속 피어난 희망, 가평고·남양고·고양고

폐허 위에서 울린 학교종… 배움은 재건의 시작이었다
입력 2023-03-20 20:48 수정 2023-03-20 20:49
지면 아이콘 지면 2023-03-21 11면

포격이 쏟아지는 한국전쟁, 그들은 내일을 준비했다. 학교가 문을 닫고 건물이 무너졌어도 천막 안에 옹기종기 모여 글을 배우던 열정은 꺾이지 않았다. 이를 본 주민들이, 군인들이 학교를 세우는 데 힘을 보탰고 그곳에서 희망이 시작됐다.

美 40사단 장병 2불씩 모아 '가평 가이사 중·고'
가평고로 이름 바꿔 현재까지… '역사관' 조성
지금도 졸업식 참석·장학금 전달 등 교류 지속

마을 사람들 흙·벽돌 날라 세운 '화성 남양고'
옛 건물 행정동으로 사용… 곳곳에 과거 흔적
보존은 잘 됐지만 설명 표지판 등 부재 아쉬움

학생들 돌 나르고 美 공병대가 토대 '고양고'
세월 지나 대강당만 남아… 市상징물로 지정
"한국전 이후 교육시설 상황 확인 가치 높아"


근대문화유산특집 가평고(정치부) (2)
가평고등학교 역사관에 국기·사진 등 미 40사단과의 인연을 나타내는 기념물이 전시돼 있다. /신현정기자 god@kyeongin.com

■ '2달러의 기적', 가평고




박상예 가평고 교장은 1980년대 가평중, 가평고를 졸업했다. 지난해 자신이 졸업한 모교의 교장으로 부임했는데, 신입생이 들어오면 꼭 '역사관'을 데려간다. "과거를 알아야 미래를 꿈꿀 수 있다"는 것이 박 교장의 철학이기 때문이다.

한반도 정중앙에 위치해 한국전쟁 당시 가평군은 전략적 요충지로 꼽혔다. 그런 곳에 있던 가평중학원은 전쟁이 발발하자 무기한 휴교를 택했다. 그렇게 4년이 흐르고 가평중학원은 피난 천막 4개를 빌려 다시 문을 열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학생들은 공부를 놓지 않았고 이를 본 미 40사단 조셉 프링글 크릴랜드는 학교를 세우겠다고 결정한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미 40사단 군인들이 2달러씩 모았고 그렇게 '가평 가이사 중학교, 고등학교'가 세워졌다. 건립 당시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미 40사단 장병 중 최초 전사자였던 케네스 카이사 주니어의 이름을 딴 것이다.

지금은 이름 또한 가평고로 바뀌고 당시 세워졌던 건물 대신 다른 건물이 세워졌지만, 이 같은 역사를 가평고 '역사관'은 담고 있다.

가평고 설립 당시 사진부터 현재까지 이어가고 있는 미 40사단과의 인연이 쌓여 있으며 한 졸업생은 최초 전사자였던 케네스 카이사 주니어 사진에 '당신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이 있습니다. 영원히 사랑합니다'라는 감사한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근대문화유산특집 가평고(정치부) (1)
가평고 기념비에 한국전쟁 당시 미 40사단 최초 전사자인 케네스 카이사 주니어와 설립자 조셉 프링글 크릴랜드의 초상화가 새겨져 있다. /신현정기자 god@kyeongin.com

박 교장은 "학교에 다닐 때 우리 학교가 어떻게 세워졌는지 알고 있었다. 졸업식 때면 미 40사단과 참전용사가 방문했다"며 "모교에 교장으로 부임하면서 직접 진로교육시간을 활용해 역사관에 신입생들을 데려간다. 이 학교가 어떻게 지어졌는지, 어떠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 알려준다. 가평고 역사를 이어나갈 후배들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가평고와 미 40사단의 교류는 현재 진행형이다. 미 40사단은 매년 가평고 졸업식에 참석하고 있다. 참전용사들도 이 자리에 함께하며 학생들이 계속 공부할 수 있도록 장학금도 전달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로 참석이 어려웠던 지난 2년 동안에도 자필 편지와 함께 장학금을 보내왔다.

안전 등의 이유로 당시 건물은 남아있지 않지만, 그때의 역사와 가치를 이어가려는 이들이 한국, 미국에 여전히 남아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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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당시 마을 사람들에 의해 지어져 현재까지 모습을 유지하는 화성시 남양고등학교 행정동 전경.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 지역사회 염원이 담긴 화성 남양고


한국전쟁 당시 마을 사람들이 모여 흙과 벽돌을 날라 세운 화성 남양고를 찾았다. 마치 레고처럼 세워진 조립식 건물 앞에 오랜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저마다 다른 돌 모양이 쌓인 단층 건물이었다. 각기 다른 돌의 크기는 물론 줄눈도 일정하지 않았고 거친 돌의 표면도 그대로였다. 건물을 바라보고 왼편에 19개, 오른편에 14개의 비슷한 거리를 유지한 창문이 있었고 출입문 위에도 작은 창문이 있었다.

누수방지를 위해 줄눈을 여러 차례 덧대 바른 흔적, 건물 뒤편의 작은 하얀색 출입문 위로 무언가를 떼어낸 흔적 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 지금은 지붕도 교체되고 외형 일부를 둔 나머지는 보수가 이뤄졌지만, 과거의 흔적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경기문화재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전쟁 당시 지어져 현재는 행정동으로 쓰이는 해당 건물의 연면적은 990.05㎡다. 1950년 당시 면장이었던 정영덕씨가 학교를 짓고자 했지만, 열악한 상황에 건물은 세우지 못하고 '남양고고등공민학교'라는 이름만 가지고 있었다.

전쟁이 끝난 이후 공부할 수 있는 학교를 지어야 한다는 지역사회 염원이 모여 마을 사람들이 흙과 벽돌을 손수 날라 지었다. 그렇게 남양고의 역사가 시작됐다. 개교 첫해 1학년 120명을 포함해 많은 학생이 공부하기 위해 남양고에 입학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건물은 점점 나이가 들어갔다. 행정동 건물 내부에는 화장실조차 없고 도서관과 행정실, 교장실 등 6개 공간이 전부다. 이후에 지어진 학교 건물 가운데 동관 건물은 안전진단에서 낮은 등급을 받아 현재는 모듈러 교실을 이용해 증·개축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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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고등학교 행정동에 전시된 남양고등학교 건립 당시 모습을 기록한 그림.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학교의 역사를 담고 있는 행정동 역시 마찬가지다. 경기도 내 전쟁 당시 지어진 건물을 보존하고 있는 곳이지만, 이곳이 어떻게 설립됐는지를 설명하거나 알려주는 표지판은 없었다. 초기 건립 당시 어떤 모습이었는지도 행정동 입구에 걸린 사진으로만 확인할 수 있었다.

학교와 학부모, 동문회 등에서도 비슷한 고민을 시작하면서. 학교의 역사를 보여주는 이 건물을 어떻게 할 것인지 논의가 시작됐다.

■ 상징건축물 지정, 고양고 대강당


고양시 덕양구 삼송동에 있는 고양고는 1954년 건립됐다. 한국전쟁 직후, 건축 자재가 부족했던 시기에 고양고를 세우기 위해 학생들과 군인들이 모였다. 학생들은 송추 골짜기 사기막골에서 직접 모은 돌을 날랐고, 미군 공병대가 이를 운반해 학교 건물의 토대를 마련했다.

경기문화재연구원은 당시 건립된 건물이 대강당뿐만 아니라, 사무실과 교실건물도 있었는데 현재는 대강당을 제외하고는 새로운 건물이 대체됐다고 설명했다. 반세기를 넘긴 세월을 버티다, 안전 등의 이유로 새로운 건물이 들어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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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미군과 학생들이 지은 고양고등학교 대강당의 모습. /경기문화재연구원 제공

대강당도 현재는 사용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많은 시간이 흐르면서 창문, 지붕, 벽체 등에 대해 보수를 거듭했지만, 안전상 이유로 사용이 더는 불가능해진 것이다.

하지만 대강당은 한국전쟁 직후 학교를 지으려고 했던 상황을 담아 역사적 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2021년에는 고양시 상징건축물로도 지정됐는데, 일부 보수를 제외하고는 전체적인 규모와 외관에서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

경기문화재연구원은 "학교 부지와 1950년대 건축된 석조 대강당이 남아 있어 한국전쟁 직후 교육시설 건축 상황들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로 가치가 높다"면서 "문화재 등록을 추진해 원형 복원과 학교 기념시설로 사용하기 위해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현정기자 god@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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