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월요논단] 강제 징용 협상에서 본 정치 현실

입력 2023-03-26 19:36
지면 아이콘 지면 2023-03-2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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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한일협상 과정은 무지와 맹목의 극치를 보여준다. 제3자 변제 방식 보상안이 엉터리라는 사실은 차치하고라도, 이 과정에서 한일 양국 정치는 그 어리석음에서 한편의 데칼코마니를 연출한다. 무능의 극치로 비난받는 한국 외교는 고사하고, 원하는 것을 얻었다고 희희낙락하는 일본 역시 몽매하기는 매일반이다. 한 사회는 개인의 삶과 존재를 어떻게 지켜내느냐에 따라 그 품격이 달라진다. 품격있는 사회와 한 줌의 이익에 매몰되어 삶을 망쳐가는 사회의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 독일 특파원을 지냈던 영국 기자 존 캠프너는 세계 대전 이후 독일 사회의 75년간 변화과정을 분석한다. 그것은 폐허와 추악함을 딛고 탁월한 모습으로 거듭나는 개혁과 성찰의 과정이었다. 2020년 출간한 '왜 독일은 잘 하는가'에서 그 계기를 캠프너는 나치즘의 만행과 야만을 철저히 반성하고 금지한 1949년의 '기본법'과 함께 권위주의적 전통문화를 전면적으로 변혁하려 했던 68혁명을 거론한다. 이후 1989년 동서독이 통일되면서 미래 사회를 향한 통일 독일의 결단이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의식이 구체적으로 나타난 결정적 사건으로 캠프너는 2015년 난민 수용 결정을 꼽는다. 


공동체 보호하지 않는 자본 자유
불평등 심각 사회 전체 파멸시켜
정치인 기득권 놓고 적대적 공생


전후 일본이 제국주의적 야만과 만행에 대해 전혀 반성하지 않음으로써 새로운 국가로 거듭날 기회를 놓쳤다는 분석은 타당하다. 그와 달리 독일이 국가사회주의의 추악한 과거를 철저히 반성하면서 이를 통해 사회 전체가 지향하는 공동체 정신을 회복했다는 사실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리 사회 역시 이점에서는 일본과 큰 차이가 없다. 추악한 제국주의적 만행과 권위주의적 사회를 철저히 반성하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독일은 불가능하다. 유학시절 나치즘의 과거를 끊임없이 분석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일상적으로 접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물론 이런 부끄러운 과거를 부정하거나 반성과 사죄는 충분하다는 분위기도 있지만 전체 사회는 여전히 이를 통해 야만의 고리를 끊으려 한다. 이 폭력과 야만을 방치하면 그것은 우리에게 되풀이될 것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계기라는 68혁명은 폐쇄적이며 권위적인 문화와 산업화 과정에서 자본의 논리가 팽배했던 60년대 후반의 사회를 비판적으로 고찰한 개혁운동이었다. 그들은 과거사 반성을 넘어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생긴 현재의 모순을 개혁하려는 치열한 노력을 감행했다. 이를 통해 독일은 노동개혁과 교육개혁은 물론, 이를 넘어 인간과 사회에 대한 철학적 관점까지 변화시켰다. 공동선을 지향하는 민주주의적 정치 체제와 함께 경제적 가치를 넘어 문화를 존중하고 시민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려는 거대한 변혁 없이 지금의 독일 사회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대학체제를 평준화하고 무상교육과 평생교육을 통해 모든 시민이 계몽의식을 소유할 수 있도록 했다. 우리 사회는 교육개혁을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고질적인 학벌 사회와 입시지옥은 70년 이상 반복되면서 그 병패가 심화될 뿐이다. 그들은 1976년 기업의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법을 재정해 노동자가 합법적으로 기업의 의사결정에 참여하도록 했다. 지금 이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개악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독일인 사회 공유·시민 의식 확고
이런 정신 외면 우리 미래 어떨지


공동체를 보호하는 정신과 공동선에 토대를 두지 않은 자본의 자유는 심각한 불평등을 낳고 결국은 사회 전체를 파멸시킬 것이다. 몇 백조원의 저출산 정책금이 허사인 까닭은 무엇인가. 이른바 3대 개혁이라 부르는 개악과정은 이런 해체를 부추길 뿐이다. 이익을 공유하기 위해 현실 정치를 독점하는 정치인들은 이런 현상을 개선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이들은 기득권을 둘러싸고 적대적 공생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독일인들이 특별히 우수할 리는 없지 않은가. 다만 한 사회가 공유하는 정신과 시민 의식이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기에 그들이 지닌 취약함과 어리석음이 제어될 뿐이다. 한 사회가 신뢰와 정의를 위한 시민정신과 공공성에 합의할 때 그 사회는 개인의 삶을 지켜낼 수 있다. 우리는 어떤 공동체성과 시민정신, 사회 지향성을 공유하는가. 지금 한 줌의 자본과 자기 이익에 매몰되어 이런 정신을 외면하는 우리에게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까?

/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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