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분단의 기억

[전쟁과 분단의 기억·(7)] 옛 미군 거리의 쉼터 '동두천 샬롬하우스'

지친 아메리칸 드림의 안식처… 그을리고 무너진 약속
입력 2023-05-01 20:03
지면 아이콘 지면 2023-05-02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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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

"DDC&ME, 아직 슬픔에 잠겨있는 거리. DDC&ME 밤마다 뛰쳐나왔던 길거리. 힘들게 자랐어 동두천이 뿌리"(폴로다레드·DDC&ME/Going Up)

래퍼 폴로다레드는 동두천 출신이다. 그래서 랩에 동두천을 주제로 한 가사가 많다. DDC로 약칭한 동두천은 생활에 쪼들렸던 어린 시절을 상징하면서 래퍼로 성공가도를 달려 이제는 벗어난 고향, 높은 곳으로 향하는(Going Up) 출발점이다.

높은 곳과 반대인 낮은 지점, 밑바닥으로 DDC가 등장하면 묘한 설득력을 지닌다. 왜일까.



동두천 형성과 역사에 미군을 빼놓을 수 없다. 미군 주둔 시점은 현대 한국사에 가장 초라한 장면이다. 고향 마을에 밀려 들어온 이방인, 이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기지촌, 음식과 복식으로 낯선 외래문화가 퍼져가는 현상.

뉴욕에 브롱스가 있다면 서울엔 이태원과 해방촌, 경기도엔 동두천이 있는 것이다. 이들 지역은 유사한 문화 상징 자본을 공유한다.

정한아 소설 '리틀 시카고' 배경 장소
한국전후 미군 주둔… 1969년 지어져
선교·영어교육… 2019년 화재로 폐허

미군이 평택으로 떠나며 일대 '유령화'
인적 끊기고 기지 환경정화 문제 남아
50년간 이곳 아이들 아픈 꿈 꾸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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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두천 생연동 샬롬하우스는 선교 목적으로 세워져 미군이 인근 주민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학원으로 쓰였다. 1969년 세워져 건물이 현존하고 있으나 지난 2019년 화재 이후 복구되지 않은 채 방치된 상태다. /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

문학에서도 동두천은 같은 상징으로 쓰인다. 정한아의 소설 '리틀 시카고'(문학동네·2012년)는 미군이 드나드는 동두천 골목의 레스토랑·클럽·세탁소·교회·양복점·슈퍼 그리고 '샬롬하우스'를 다룬다. 그렇다. 샬롬하우스는 소설에 등장하는 가상의 배경이 아니라 실재했던 장소다.

샬롬하우스는 동두천시 생연동 510-2번지에 1969년 4월 10일 지어졌다. 동두천에는 한국전쟁 휴전 무렵부터 미군이 주둔했다. 그들이 평택으로 대량 이주하기 전까지 동두천은 말 그대로 미군도시였다. 실존하는 건물 샬롬하우스와 소설 '리틀 시카고'는 모두 미군이 만든 동두천과 미군이 떠난 동두천을 보여준다.

샬롬하우스는 선교와 영어교육을 하는 기관으로 쓰였다. 붉은 벽돌 조적조로 4층짜리 건물인데 증·개축이 이어지며 2층과 4층 건물이 이어진 구조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2019년 내부에서 불이 나며 현재는 사용되지 않는다.

선교와 영어교육 기관이라는 것만으로 샬롬하우스의 면모와 의미를 짐작하기는 어렵다. '리틀 시카고'는 샬롬하우스를 이렇게 묘사한다.

"샬롬하우스는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쉼터로, 미군들이 버리고 간 고아들과 클럽에서 일하는 여자들의 아이를 하루 종일 돌봐주는 곳이었다 … 당시 클럽에는 러시아 여자들이 많았다. 필리핀 여자들이 다람쥐 같다면, 러시아 여자들은 암표범 같았다. 댄서 비자로 들어온 러시아 여자들은 눈도 크고 키도 크고 가슴도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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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하우스는 동두천 골목의 쉼터였고, 그곳에는 클럽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머물렀다. 클럽에는 러시아·필리핀 등에서 온 접대부가 머물렀다. 월급날이면 동두천 골목골목은 미군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고 하는데, 그곳 여자들에겐 대목이었다.

"단장을 끝낸 언니들은 마른 빵을 한두 개 집어먹고 홀로 내려갔다. 배꼽이나 허벅지를 드러낸 옷을 입고, 마치 무대 위에서 포즈를 잡듯이 몇 명은 당구대 옆으로, 몇 명은 출입문 앞으로 또 몇 명은 길가로 나갔다 … 설탕이 절반인 가루를 물에 타서 만드는 '주스'는 한 잔에 십 달러였고, 그 중 일 달러가 언니들에게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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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두천 생연동 샬롬하우스는 선교 목적으로 세워져 미군이 인근 주민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학원으로 쓰였다. 1969년 세워져 건물이 현존하고 있으나 지난 2019년 화재 이후 복구되지 않은 채 방치된 상태다. /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

동두천 골목의 생태계는 미군이 만들었고, 미군들에 의해 망가졌다. 샬롬하우스는 그런 골목의 상징이다. 다시 '리틀 시카고'로 돌아가보자. "내가 아는 샬롬하우스 아이들은 전부 그런 일을 겪었다. 골목에서 낳은 아이를 미국으로 데리고 가는 미군은 거의 드물었다. 그들은 아이들에게 미국에 대해 이야기하고, 미국을 꿈꾸게 하고, 어느 날 홀연히 자취를 감춰버렸다. 핑계도 방법도 가지각색이었다."

고로 샬롬하우스는 남겨진 자들의 거주지였고 의탁할 장소였다. 1일 찾아간 샬롬하우스에는 햇살이 가득했다. 두 쪽으로 나뉘어 여닫는 노란 철문이 있었는데, 한 쪽 문의 경칩이 떨어져 바닥에 주저앉았다.

마당 오른편에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미끄럼틀이 있었다. 불은 건물 안에서 발생한 듯했다. 방범창이 설치된 1층 창문은 비교적 온전했는데 2층 창문은 모두 깨졌고 안쪽에 검게 그을린 벽이 노출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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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하우스 내부에 방치된 놀이시설. /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

샬롬하우스는 더 이상 쓰이지 않는 건물이 됐다. 어느 날 홀연히 자취를 감춘 미군 아버지처럼 1969년부터 2019년까지 반세기 동안 쓰인 샬롬하우스는 그렇게 망가졌다. 샬롬하우스가 남아 있는 형상은 '리틀 시카고' 속 동두천 골목이 쇠락해가는 모습과 닮았다. 미군 평택 이전이 결정되자 골목은 급히 망했다.

"골목에는 인적이 뚝 끊겼다. 얼마 전까지 네온사인이 번쩍거리고, 음악이 쿵쾅대고,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것이 모두 거짓말 같았다. 미군들이 다 떠난 기지 쪽으로 날마다 수십 대의 차량이 드나들었다. 미군기지 환경정화 때문이었다 … 미군기지 땅속에는 폐유 저장탱크가 그대로 묻혀 있고, 사격장에는 불발탄도 제대로 처리되지 않은 상태라고 했다 … 필리핀에서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고 했다. 게다가 환경정화 문제로 기지 반환 시기가 늦춰지면서, 주변이 전부 유령마을이 되어버렸다고도 했다."

동두천 골목이 유령마을이 됐듯, 샬롬하우스도 유령건물로 남았다. 샬롬하우스는 미군이 떠난 뒤 남긴 유산이다. 그들이 난 자리가 초토화된 것처럼 샬롬하우스도 폐허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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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하우스의 입구. /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

샬롬하우스에 머문 아이들은 어떤 꿈을 꾸었을까. 아이들에게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이 글에서 마지막으로 인용하는 '리틀 시카고' 구절이다. "꿈에 대해 물을 건 단 하나뿐이란다. 그것이 나를 얼마나 아프게 하는가. 얼마나 많이, 아프게 하는가."

50년 동안 샬롬하우스에서 많은 아이들이 아프게 꿈을 꾸었을 것이다. 그 꿈의 모습도, 실현됐는지 미완으로 그쳤는지도 모두 미제다. 동두천 골목이 유령마을이 됐기 때문이고 샬롬하우스가 유령건물이 됐기 때문이다.

전쟁과 분단의 기억은 이처럼 잊힌 건물·구조물, 그 속의 의미를 되짚는다. 전쟁 중에, 전쟁 후에 누군가가 아프게 꾸었을 꿈을 그려보는 것이다. 속이 온통 검게 그을린 샬롬하우스 앞에서 아픈 꿈을 꾸었다.

/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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