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경기도미술관에서 이건희컬렉션을 중심으로 한 한국근현대미술특별전이 열린다. 이번에 경기도미술관에서 선보일 이건희컬렉션은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1천488점의 작품 중 순회전을 위해 구성된 작품 모음 중 일부를 기반으로 한다. 여기에 경기도미술관의 소장품과 외부 미술전문기관 소장품 대여 등으로 작가별 대표 작품들을 추가해 풍성한 전시를 선보일 예정이다. 김환기, 이중섭, 박수근, 장욱진 등 192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근현대미술사에서 손꼽히는 작가들의 대표작들을 조명해 보는 이번 전시는 경기도미술관 만의 시선과 해석으로 깊이를 더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경인일보는 경기도미술관의 도움을 받아 이번 특별전을 관람객들이 다채롭게 즐길 수 있도록 8편에 걸쳐 전시 출품 작가와 작품들을 엮어 소개하는 기획을 준비했다. 전시장에서 마주하게 될 한국근현대미술의 빛나는 사계(四季)를 많은 경기도민이 함께 만끽할 수 있길 기대하며. <편집자 주>
이중섭, 강점기·한국전쟁속 작품 활동
소박하지만 대담한 필치, 해학 넘쳐
담뱃갑 은박지·엽서 독특한 재료·기법
한국 근현대미술사를 대표하는 작가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중섭은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시대적 상황에서도 소박하지만 대담한 필치로 '소'와 '가족'의 이미지를 그려내며 상징적인 입지를 구축했다. 이중섭은 평안남도 평원군에서 태어나 오산보통학교에 진학해 당시 미술교사였던 임용련의 지도를 받았다. 이후 일본으로 유학해 분카가쿠인 미술과를 졸업했는데, 이때 만난 야마모토 마사코와 부부의 연을 맺는다. 한국전쟁 발발로 아내와 두 아들을 일본으로 떠나보내고 홀로 지낼 수밖에 없었던 이중섭은 가족에 대한 사랑이 각별했는데, 지금 전해지는 대부분 작품이 이 시기에 제작됐다.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는 '판잣집 화실'은 어슴푸레 깔린 어둠을 배경으로 서있는 판잣집에 줄 세운 술병이 보인다. 벌겋게 달아오른 남성은 연신 곰방대를 피우고, 가까이에 놓인 화구와 붓들 사이로 게와 벌레가 기어간다. 그가 가진 전부는 비록 방 한 칸이지만, 피어오르는 굴뚝 연기에서 보이는 것처럼 방에는 가족을 향한 온기가 넘친다.
함께 전시되는 '오줌싸개와 닭과 개구리'는 피란길에 제작한 작품으로 이중섭 특유의 천진난만함과 해학이 넘친다. 은지화와 엽서화도 눈여겨보자. 이중섭은 담뱃갑 속 은박지를 주워 그곳에 철필이나 못으로 그림을 그리고 물감이나 먹물 등으로 색을 입혔다. 구겨지거나 찢긴 은지 상태는 화면의 우연성이 강하게 드러나며, 이중섭만의 독특한 재료와 기법을 볼 수 있다. 엽서화는 마사코 여사와 연애시절 그녀에게 보낸 엽서에 그려진 그림으로 어쩌면 내밀하게 느껴질 수 있는 작품들이다.
장욱진, 1960년 남양주 덕소에 작업실
한국미와 전통 관심… 도가적 풍류
묽은 안료로 수묵화 느낌 생활상 표현
장욱진은 1938년 양정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전조선학생미술전람회'에서 '공기놀이'를 출품해 최고상을 받고 1939년 제국미술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해 수학했다. 해방 후 2년여간 국립박물관에 재직하며 한국적 미와 전통에 관심을 두게 된 그의 화업은 1960년 남양주 덕소로 작업실을 옮기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사물과의 거리에 의한 비례를 고려하지 않고 사물들을 선조로만 담백하게 그려낸 장욱진의 작품들은 화가 자신의 소박하고 단순한 생활을 그대로 담아낸 듯하다. 대체로 10호 미만의 크기로 제작된 그의 작품들은 해와 달, 동산과 나무, 아이와 가축 등 인간세계를 축약해놓은 것 같은 소재들을 화면 안에 밀도 있게 구축했다. 얼핏 흔한 삶의 풍경을 그린 것 같지만, 특정한 대상을 그렸다기보다 그가 추구했던 도가적 풍류의 미학을 반복적으로 그린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는 '까치', '나무', '세그루 나무'는 수안보에서 작업하던 시절에 그려진 작품들로 장욱진미술관 소장품인 '무제' 등과 함께 직관적이고 표현적인 후기 화풍을 보여준다. 캔버스의 직조가 드러날 정도로 안료를 묽게 사용해 마치 수묵화와 같은 느낌을 주며, 전형적인 삼단 구도에 집과 가축, 나무그룹, 까치 등의 전통적 소재들이 간략하게 표현돼 있다.
전뢰진, 인간·자연 순수함과 본질 조망
평화로운 세계 찾아 석조 조각 집중
대리석 사용해 원초적 생명 찬미 담아
전뢰진은 서울대학교에 입학했으나 한국전쟁 발발로 학업을 중단하고 충남지역에서 미술 과목 강사를 하며 미술에 경험을 이어갔다. 이후 그는 홍익대 조소과로 편입해 조각을 배우며 석조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그의 조각 수업은 1954년부터 1961년에 집중됐고, 여러 공모전에서 수상하며 홍익대 조각과에 재직하게 된다. 1990년부터 지금까지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활약하며 화관문화훈장을 수상했다.
그의 작품은 인간과 자연의 순수함과 본질을 바라보려고 한다. 이를 위해 가장 평화로운 세계를 찾아 평생을 석조 조각에 집중한 전뢰진은 전통적인 조각의 우아함과 선을 되살려 '동심적 조형'이라는 그만의 독보적인 형상을 구현했다. 그의 모든 작품은 대리석이라는 재료에 충실했고 한국 근대조각사에서 이러한 작가는 전뢰진이 처음이었다.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 석조예술에서 많은 감명을 받았다고 이야기한 전뢰진의 작품은 형태와 재료뿐만 아니라 한국인의 정서를 섬세하게 반영했다.
인간과 인간, 혹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애정 어린 눈으로 봐 온 그의 작품에는 원초적인 생명에 대한 찬미와 긍정이 드러나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1975년 작품 '한가한 어느날'을 만날 수 있다. 작품은 식물 덩굴로 가장자리를 둘러싼 제한된 공간 속에서 마치 햇빛을 피해 나무 그늘에 앉아 있는 평화로운 삶의 한순간이 표현돼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