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근, 초가집
박수근 '초가집'. /박수근연구소 제공

1914년 강원도 양구군에서 태어난 박수근은 가난한 형편으로 중학교 진학이 어려워 보통학교 졸업 후 독학으로 미술 공부를 이어 나갔다. 1932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며 본격적인 화가의 삶을 살게 된 그는 1958년 이후 국내외 미술전에 여러 차례 참가했고, 강원도 양구군에는 그의 이름을 딴 미술관이 건립됐다.

강원 양구서 가난한 환경의 박수근
소박한 감각으로 한국적 주제 담아


박수근은 프랑스 농민 화가인 밀레의 작품 '만종'을 보고 깊이 감동해 밀레와 같은 화가가 되길 기도했다. 곤궁한 생활에도 가난한 서민들의 소박한 삶을 그리는 화가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던 그의 작품은 회백색을 주조로 한 단조로운 화면 속에 소박하고 서민적인 감각으로 한국적인 주제를 충실히 다뤘다.

작가의 고향인 양구는 나무, 일하는 여인, 나물 캐는 아낙, 빨래터 풍경을 수없이 스케치했던 그의 작업에 대한 열정이 시작되었던 장소다. 절구질하는 여인, 광주리를 이고 가는 여인, 길가의 행상들, 아기를 업은 소녀, 할아버지와 손자 등 그가 그린 서민들과 김장철 마른 가지의 고목들은 박수근이 주관적인 감정으로 파악한 모습이 아닌, 개인의 감정에서 독립된 완전한 객체로서 표현됐다.
 

박수근, 절구질하는 여인
박수근 '절구질하는 여인'. /박수근연구소 제공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는 '절구질하는 여인'은 1936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수채화로 출품해 입선한 '일하는 여인'의 소재를 반복해 그린 것으로, 아기를 등에 업고 절구질 하는 여인의 고단한 생활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박수근 특유의 색감과 투박하고 우둘투둘한 마티에르(화면의 질감)가 완성도 있게 구사됐다. 이와 함께 기법의 변주가 엿보이는 '초가집'(1963년 作)과 1960년대 그려진 '농촌풍경'을 만날 수 있다.

야수파·표현주의 양식 익힌 윤중식
목가적 풍경으로 실향민 아픔 표현


윤중식은 평양 숭실중학교 재학시절 '녹향회 회원전'과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입선해 일찍이 주목받았다. 1936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 윤중식은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의 학풍 속에서 마티스의 제자였던 나카가와 키겐의 영향을 받아 야수파, 표현주의 등의 양식을 익혔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대담한 요약과 강렬한 색채의 구사 등을 특징으로 하는 자신의 화풍을 만들어 나갔다.

평안북도 선천의 보성여고에서 미술교사로 근무하던 윤중식은 한국전쟁 발발 후 월남해 정착했고, 1963년부터 서울 성북동에 거주하며 향토적 전원미가 담긴 풍경화를 지속해서 발표한다. 작가의 작품에는 실향민으로서 겪었던 아픔,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담은 목가적 풍경들이 녹아있다.

윤중식, 작품
윤중식 '작품'.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특히 그는 석양 풍경을 자주 다뤘는데, '석양의 화가'라는 별칭을 얻게 된 이유이다. 이번에 전시되는 '작품'은 삼면으로 분할된 화면에 각각 여인들과 조각상, 테이블 위에 놓인 과일이 배치돼 있다. 서로 관련 없어 보이는 이 소재들은 그의 마음속에 내재하는 대상들의 조합으로 보인다. 화면 중앙의 테라스 너머로 뜬 달빛에서 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검푸른 색조가 화면 전체를 지배하며 밤의 고요한 분위기와 감정을 잘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다.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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