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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이름을 붙일 수 없는 공연

입력 2023-05-18 19:45
지면 아이콘 지면 2023-05-19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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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중 소설가
이 세상에는 대단치는 않지만 이상한 일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일은 우리가 알던 세상을 잠시나마 뒤흔들어 놓는다. 지난주 수요일에 내가 겪은 것처럼.

자주 가는 카페가 생겼다. 두 면이 유리 통창으로 되어 실내에 밝은 햇살이 들어오고, 젊은 주인 부부의 바지런한 손길이 구석구석에서 느껴지는 곳이다. 무엇보다 필터 커피가 너무나 맛있어서 원고 마감이 있는 기간에는 출근도장을 찍다시피 드나들었다.

그런데 그날은 들어서는 순간부터 실내의 공기가 다르게 느껴졌다. 긴장되고 어수선한 분위기가 팽배한 것이다. 엉거주춤 서 있는 손님들도 그렇고, 카페 주인은 주문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말을 더듬는다. 그들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원인을 알 수 있었다. 새 한 마리가 카페 안에 들어와 높은 곳에 앉아있는 것이 아닌가.  

 

단골 카페에 새 한마리 들어와
한시간 휘젓고 날아… 소동 끝에
젊은 남자 손님에게 잡혀 방생


이 카페는 천장에서 육십 센티미터쯤 내려온 곳에 가늘고 긴 주광색 조명을 인테리어 삼아 매달아 놓았는데, 새의 입장에서는 영락없이 나뭇가지처럼 보인 모양이다. 참새도 비둘기도 아닌 새의 정체는 모르겠으나, 당황하는 사람들과 달리 느긋해 보였다. 새는 두 군데의 문이 활짝 열려있지만 도통 나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문 쪽으로 쫓으려 하면 푸르르 날아 다른 쪽 조명에 앉아버리고, 다시 쫓으면 반대쪽 주방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그렇게 모두가 보는 앞에서 카페 안을 휘젓고 다니던 새는 내가 처음 봤던 위치로 돌아가 앉았다. '날개 달린 짐승의 유리함은 대단하구나' 속으로 감탄했다. '아래에서 털 없는 원숭이들이 꺅꺅거리며 잡으려고 애를 써도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하고 여유롭게 따돌리니 말이야'.



이 와중에도 새로운 손님들은 들어오고, 구경꾼은 늘어난다. 급기야 옆의 식물가게 사장님이 잠자리채를 들고 포획에 나섰다. 그물 달린 막대기가 추격하자 새도 밖으로 나가려고 하지만 이럴 수가, 유리창에 부딪치고 만다. 연거푸 두 번이나. 그리고 날기를 포기한다. 우리 모두는 그제야 저 새가 자력으로 나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투명한 유리창을 이해할 수 없는 새는 자신이 왜 자꾸 벽에 부딪치는지 모르는 것 같다.

안타까운 대치 상황은 한참 후 싱겁게 종료됐는데, 새가 의자 쪽에 내려온 사이 젊은 남자 손님 하나가 맨손으로 덥석 잡은 것이다. 새도 혼란스러운 가운데 경계심이 떨어진 모양이고, 남자손님은 충동적으로 팔을 뻗은 것 같은데 얼떨결에 붙잡고 말았다. 모두의 주목 속에서 손님은 밖으로 나가 새를 방생하듯 높이 날려주었고, 카페 안에서는 박수가 터졌다. 그는 잠깐 영웅이 되었다.

다음 순간 카페 안의 압력은 탁 터져서 편안하고 느긋해졌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커피, 대화, 책 속으로 돌아갔다. 주인은 간단한 다과를 손님들에게 돌리고 나도 맘 편하게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 박수치며 잠시나마 응집
새의 '틈새 선물'에 행복한 오후였다


돌이켜보니 이 잠깐의 소동이 공간에 활력을 준 것 같다. 카페는 공적이면서도 사적인 느낌을 주는 공간이다. 그런 곳에 예상치 못한 소동이 생겨났고, 제각각인 사람들은 잠시나마 구경꾼으로 응집시켰다. 우리 모두 한마음으로 새가 무사히 나가기를, 더 이상 유리창에 부딪치지 않고 원래의 하늘로 돌아가기를 바랐던 것이다. 박수가 터진 것은 좀 뻘쭘하면서도 웃겼지만, 한 시간도 넘게 질질 끈 문제가 해결되자 모두들 후련했는지 저절로 손뼉을 치게 되었다. 한편으로 그것은 '이름을 붙일 수 없는 공연'에 대한 갈채였다. 브라보! 새는 날아가고 우리는 홀가분하게 커피를 마신다.

보통의 일상은 흰 건반으로 친 음처럼 안정적이다. 그런데 검은 건반 하나가 울리면, 예를 들어 '파'에서 '피'음이 된다면, 우리는 플랫 하나만큼의 까치발을 들고 몰랐던 세상을 살짝 들여다보게 된다. 알던 세계와 완전히 다르지는 않지만 약간 다른 곳. 잠깐 생겼다 사라진 이 '틈새'를 볼 수 있는 건 선물 같은 일이 아닐까. 선물은 내가 한 것이 없어도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새의 선물'을 받은 오후에 우리는 모두 행복했던 것 같다.

/김성중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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