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분단의 기억

[전쟁과 분단의 기억·(9)] 갈등과 평화 사이 '공동경비구역 JSA'

세상에서 가장 먼 한 걸음… 70년간 넘지 못한 분단의 문턱
입력 2023-05-29 20:26 수정 2023-05-29 20:27
지면 아이콘 지면 2023-05-30 11면

'전쟁과 분단의 기억'은 존재하나 잊힌 유산을 다뤘다. 용치, 폐철교, 노르매시 야전병원, 가평·남양·고양고, 파주 장곡리 움집, 오산감리교회·이천양정교회, 동두천 샬롬하우스, 의정부 뺏벌마을은 기억해야 할 유산이다.

아홉 번째로 찾은 유산은 너무나도 유명해 기억할 수밖에 없는, 한국인이라면 모를 수 없는 기억의 장소다. 바로 공동경비구역 JSA다. 1980년대생인 기자에게 공동경비구역 JSA의 기억은 동명 영화로 각인됐다. 2000년 개봉한 영화감독 박찬욱의 출세작이자 이병헌, 송강호, 이영애, 신하균이라는 걸출한 배우의 열연으로도 주목을 모은 작품이다.

1963년생인 박 감독에겐 1976년 일어난 '판문점 도끼 만행'이 잊을 수 없는 기억일 것이다. 예술가의 유년기에 깊게 박힌 경험은 30여년 세월 후에 반세기가 지나도 여전히 회자될 영화로 탄생했다. 또래가 2000년대에 입대한 우리 세대에게 JSA 근무는 좋은 안줏거리가 됐다.



JSA에서 군 생활을 한 동기가 휴가를 나오면 삼삼오오 모여 정말 영화처럼 남북한 군인이 마주 보고 경계 근무를 하는지 이야기도 하고 침도 뱉고 그런 게 정말 가능한지 묻는 게 이야깃거리였다. 1960년대생에게 JSA가 판문점 도끼 만행으로, 1980년대생에겐 동명 영화로 기억된다면 2000년대생에게 JSA는 2018년 남북정상회담이 아닐까.

동서 800m·남북 400m… 1953년 정전협정후 형성
남측 지휘통제권 유엔사 보유… 경비 임무는 국군
서울 기점 남쪽 목포·북쪽 의주 잇는 '의주로' 선상
'역사적 사건' 주무대… 1976년 북한군 '도끼만행'
2000년 '박찬욱 영화' 흥행… 2017년 인민군 귀순
2018년 남북 정상 만남… 이듬해 트럼프 포함 회동


2018 남북정상회담
2018년, 남북정상회담.

2018년 4월 27일 대통령 문재인과 북한 국무위원장 김정은이 JSA, 그러니까 판문점에서 만날 때 기자는 고양 일산 킨텍스 프레스센터에 있었다. 이날 회담은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이뤄졌는데 평소엔 전시회가 열리던 거대한 공간을 3천명 가량 취재진이 가득 채웠다.

공식 기록으론 내신 176개사 2천127명, 외신 196개사 924명이 취재 등록을 했다고 한다. 새벽부터 킨텍스 주차장을 전국 각지의 언론사 차량이 메웠다. 주차장에서 프레스센터로 걸어가는 길에 걸린 '평화, 새로운 시작'이란 대형 걸개를 보고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이날 백미는 오전 9시 30분 판문각 문을 열고 등장한 김정은이 그 유명한 JSA 경계석을 넘어오는 모습이었다. 프레스센터 커다란 전광판 위에 김정은의 모습이 드러나자 약속한듯 장내에 긴 탄성이 쏟아졌다. 역사적인 장면이라고 평가할 수도, 평화 위장 쇼라고 비판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빅 이벤트였다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정주영 회장 소떼 방북
1998년, 정주영 회장 소떼 방북.

남북 정상이 악수한 공동경비구역JSA는 이 시점으로부터 65년 전인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정전 협정 후 형성됐다. 한국전쟁 휴전 관련 사항을 관리하는 군사정전위원회는 1953년 10월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유엔군 측과 공산군 측의 공동경비 구역을 설정했다.

이로 인해 동서 800m·남북 400m 규모의 공동경비구역이 만들어졌다. 2004년 이후 공동경비구역 경비 임무가 대한민국 국군에 이양됐고 지휘통제권은 여전히 유엔사령부가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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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 건물 배치도.

공동경비구역JSA는 '의주로'에서 서쪽 사천(沙川)을 경계로 북동쪽에 장방형 방향으로 설정된 구역이다. 의주로는 서울(한양)부터 의주를 연결한 도로로 조선시대 주요 간선도로 중 하나였다고 한다. 한양-고양-파주-장단-개성-금천-평산-서흥-봉산-황주-중화-평양-순안-숙천-안주-가산-정주-의주까지 연결된 도로였다.

중국에서 조선으로 향하는 무역로로 이 도로를 통해 무역이 이뤄지며 평양이 상업도시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의주로의 남쪽 부분은 지금도 1번 국도로 존재한다. 서울을 기점으로 북쪽으로는 의주까지 이어지고 남으로는 목포까지 연결되는 도로다.

끊긴 의주로 북쪽에 형성된 공동경비구역은 정전협상부터 사람 접근이 금지되며 자연 식생이 고스란히 보존돼 있다. 평지, 물길, 구릉이 있고 구릉에선 북한 지역을 조망할 수 있다.

JSA 안의 대부분 시설이 신축·증축을 반복했는데 군사분계선을 기준으로 남과 북의 건축물 디자인도 차이를 보인다. 같은 혈통을 공유하는 서로 다른 나라가 전쟁 이후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보여주는 모습이다.

북한으로 송환되는 포로들
1953년, 북한으로 송환되는 포로들.

이곳에 스며든 굵직한 기억, 역사적 사건만 여럿이다.

1953년 4월 이 지역을 통해 '리틀 스위치' 작전이 시행됐다. 한국전쟁 포로를 교환(송환)한 리틀 스위치 작전으로 아프거나 부상을 당한 상병포로가 교환됐다. 북한군·중공군 6천670명, 한국군·미군 684명이 교환됐는데 8만명 규모 포로 교환이 이뤄진 '빅 스위치'와 대비해 리틀 스위치 작전이라고 명명했다.

판문점 도끼 만행
1976년,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1976년 8월 18일엔 상술한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이 일어났다.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하던 미군장교 2명이 북한군에게 도끼로 살해당한 것이다. 1998년 6월 16일 현대그룹 창업주이자 실향민 정주영 회장이 소 1천1마리를 이끌고 이곳을 통해 북한으로 향했다. 이 일은 이른바 '소떼방북'으로 불린다.

2017년 11월 13일엔 조선인민군 오청성 하전사가 공동경비구역을 통해 귀순했다. 총상 5발을 입은 그는 내장에 심각한 손상을 입은 채로 수원 아주대병원으로 후송돼 외상수술 권위자인 이국종 교수로부터 치료를 받고 생존했다. 취재 열기도 뜨거웠다. 오청성이 외상센터에서 수술을 받고 중환자실로 옮긴 것을 확인하기 위해 경인일보 취재기자가 병원 복도를 기어들어가 폐쇄된 병실을 확인하기도 했다.

남북미 회동
2019년, 남북미 정상 회동.

2018년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2019년엔 남북미가 이곳에 모였다.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까지 참여한 회동은 정전협정 이후 남북미가 처음으로 북미 대표가 판문점에서 만난 사례가 됐다. 이후 상황은 우리가 아는 바와 같다. 남북·남북미의 만남은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고 공동경비구역JSA는 지금도 긴장에 싸여 있다.

영화 '공동경비구역JSA'의 이수혁(이병헌 분) 병장은 말한다. "형이고 뭐고 다 필요 없어. 결국 우린 적이야."

전쟁과 분단의 유산 공동경비구역JSA는 어떤 결말로 남을까. 2020년대생은 JSA를 어떻게 기억할까.

/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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