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지엠 인천 부평 2공장 가동 중단 후 창원공장에 파견된 노동자들의 정신건강 상태는 예상보다 심각했다.
경인일보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가 지난 11~17일 창원공장 파견 노동자 362명(응답자 14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모바일 설문조사 결과는 이들의 극단적 선택 위험 징후를 보여준다. 심리 불안 상태가 계속되면서 몸 상태까지 나빠지고, 신체 건강 악화가 다시 불안·우울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양상이다. → 표 참조
362명 중 143명 응답 설문 결과
극단적 선택 계획 9명·시도 2명
89.5%고립감 … 92.3% 피로감
운동·취미 줄고 음주·흡연 늘어
심리상담 지원 등 긴급대책 필요
■ 5명 중 1명 '극단적 선택' 생각, 일반 정규직의 18배
설문에 응한 창원공장 파견 노동자 143명 가운데 '극단적 선택을 진지하게 생각한 적이 있다'고 답한 이는 26명(18.2%)으로 집계됐다. '극단적 선택을 위한 구체적 계획을 세운 적이 있다'는 응답은 9명(6.3%),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적이 있다'고 답한 이는 2명(1.4%)이다.
본인 의사에 반한 인사 발령으로 조사 대상자 다수가 불만을 품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도, 그 수치가 매우 높은 상황이다. 질병관리청 제8기(2019~2021년) 국민건강영양조사를 보면, '최근 1년간 심각하게 극단적 선택을 생각한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4.4%가 '그렇다'고 답했다. '극단적 선택을 계획한 적이 있다'는 응답은 1.3%, '시도한 적이 있다'는 응답은 0.5%였다.
노동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와 비교해도 마찬가지다.
고려대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연구진이 지난 2019년 발표한 '불안정 고용 근로자와 실직 근로자의 비교 가능한 자살 생각 위험 : 한국복지패널조사 자료, 2012-2017' 논문 결과를 보면, '극단적 선택을 진지하게 생각한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정규직 노동자의 1.1%, 비정규직 노동자의 3.0%, 실업자의 3.9%가 '그렇다'고 답했다.
이 연구 결과를 토대로 보면 창원공장 파견 노동자의 '극단적 선택 생각' 응답 비율(18.2%)은 일반 정규직 노동자보다 무려 18배가량 높게 형성돼 있음을 알 수 있다.
■ 고립감·피로도 높아지면서 일상 무너지는 악순환 반복
'창원 발령 이후 고립감이 높아졌다'는 질문에 대해 '그렇다'고 응답한 노동자는 128명으로, 전체 응답자의 89.5%를 차지했다.
실제 기획취재팀이 만난 창원공장 파견자 주철민(56·가명)씨는 "일을 마치고 퇴근하면 완전히 진이 빠진 채 아무것도 못 할 때가 대부분"이라며 "주말에 인천으로 돌아가 가족이나 친구라도 만나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다"고 자신의 처지를 설명했다.
그는 "건강이 좋지 않아 회사와 노동조합에 부서 이동을 요청했지만, 현재 인사권은 창원공장이 갖고 있어 도와줄 수 있는 게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며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쳤는데 어떻게 할 방법은 보이지 않아 막막하다"고 했다.
주씨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창원공장 파견 노동자의 고립감은 본인의 의사가 인사에 반영되지 않는 무력감, 타지에서 홀로 생활하는 고독감에서 비롯됐다. 고립감은 일상을 방해한다. 수면의 질을 떨어뜨려 다음 날 근무까지 영향을 미친다.
이 역시 설문 결과에 반영돼 있다. '창원 발령 이후 피로도가 높아졌다'에 132명(92.3%), '창원 발령 이후 근무 강도가 높아졌다'에 129명(90.2%)이 '그렇다'라고 답했다.
■ 운동·취미생활 줄고 음주·흡연 늘어… "심리 상담 지원 등 긴급 대책 필요"
파견 노동자들은 창원에서 살면서 이전보다 취미 생활은 적게 하고, 음주·흡연이 늘었다고 답했다. '창원 파견 후 음주 빈도 또는 양이 늘었는가'라는 질문에 83명(58.0%)이 '늘었다'고 했다. '흡연 빈도 또는 양이 늘었는가'라는 질문에는 흡연자 88명 중 66명이 '늘었다'고 답했다.
반면 '창원 파견 후 운동 등 취미생활 빈도나 양이 늘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줄었다'고 응답한 사람이 89명(62.2%)이었다.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활동이 크게 줄고, 음주와 흡연은 늘어 피로도가 더 쌓일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조사를 수행한 최민(직업환경전문의)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는 "심리적으로 위축된 상황에서 잠을 청하지 못하고, 생활 터전이 바뀌면서 사람을 만나는 것도 제한되니 고립감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이러한 상태가 계속되면 극단적 생각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당장 (부평공장 복귀 등) 근무 환경을 바꿀 수 없다면 심리 상담 지원 등 긴급 지원 대책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기획취재팀
※기획취재팀
취재 : 김명래 팀장, 한달수 기자
사진 : 김용국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