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을 쓸 당시 생텍쥐페리는 작가이자 군인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의 지휘하에 있었던 2-33 폭격기부대에 소속된 조종사였던 것이다. 전투기 조종사로 복무하던 생텍쥐페리가 1943년 4월 뉴욕에서 영어로 작품을 썼는데, 영어 구사가 자유롭지 않아 단순하고 쉬운 작품을 쓸 수밖에 없었고 이것이 오히려 '어린 왕자'를 신화적 작품으로 만드는 계기가 됐다.
이 작품이 불어로 출판된 것은 작가가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 후 몇 해가 지난 1946년이었다. '어린 왕자' 불어본을 낸 갈리마르는 최고의 권위를 가진 출판사로 지금도 콩쿠르상 등 주요 문학상 수상 작품들은 거의 다 독점 출판하다시피 한다.
27개 이야기로 구성 세계독자들 사랑 받아
어른과 어린이 보는 세상 다르다는 메시지
'어린 왕자'는 모두 27개의 이야기로 이뤄져 있다. 작품은 비행기 고장으로 사막에 불시착한 조종사가 어린 왕자를 만났다가 헤어지는 일주일 동안의 이야기다. 평이하고 단순한 스토리와 내용을 가지고 있으나 세계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베스트셀러가 됐다. 10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 출간됐고 국내만 해도 300종이 넘는 다양한 판본이 있는 명실상부한 스테디셀러다. 동화의 이 압도적 대중성은 작품 자체의 내용 때문이기도 하지만, 공교롭게도 작가가 비행기 조종사였다가 사막 한 가운데 추락하여 사망했다는 극적인 상황과 맞물리고 여기에 작가가 손수 그린 삽화 같은 파라텍스트들도 흥행에 한몫했다. 파라텍스트란 제목·서문 등처럼 작품은 아니지만 작품을 이루는 주변적 요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27개의 이야기들은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과 어른과 어린이가 보고 생각하는 세계가 다르다는 메시지를 통해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우리에게 세상과 사물을 새롭게 보고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어린 왕자는 한때는 모두 어린 왕자였을 우리들에게 우리 자신이 세파에 찌들어 어느새 순수성을 잃은 기성세대와 같은 인간이 되었음을 조용히 일깨워준다. 예컨대 분명히 중절모를 그린 그림으로 보이는데, 작가는 시치미를 뚝 떼고 이것은 모자가 아니라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의 불룩해진 모양이라는 기발한 해석으로 우리의 의표를 찌른다. 현실적이고 단선적 사고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이 같은 동화적 상상력과 목소리는 우리 안에 잠자고 있는 내적 어린이(inner child)와 만나 대화하고 현재 내 자신의 생각과 삶을 다시 돌아보고 그런 생각들을 다시 생각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므로 '어린 왕자'를 현실의 논리에 갇혀 있는 우리가 우리 내면의 어린이 내지 순수한 자아와 다시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힐링 동화라 해도 무방할 듯하다. 그리고 이런 점들이야말로 세대를 뛰어넘어 '어린 왕자'를 읽고 또 읽게 만드는 이유들일 것이다.
'고정관념'의 우리에게 새로움 느끼게 해줘
내면의 순수한 자아 재회 돕는 '힐링 동화'
어느 작품이든 절대적 해석이란 없다. 우리가 경험으로 알 수 있듯 작품의 의미와 그에 대한 해석은 결정돼있는 것이 아니라 보고 읽는 모든 이들에게 주어져 있다. 그런데 살아가면서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해석의 권한과 자유로운 사고를 스스로 제한하며 살고 있다. 우리의 생각과 감정의 주인은 우리 자신이다. 누가 괴롭히고 강요하고 얽어맨 것이 아니다.
예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어린 왕자'를 읽었으나 최근 소장 도서를 확인해 보니 한국의 대표적 문학평론가로 문학과 연구에 큰 발자취를 남긴 고 김현 서울대 불문과 교수의 번역본이다. 내 책은 1975년 문예출판사에서 펴낸 재판본이다. 평론가 김현 선생이 '어린 왕자'를 번역했다는 것도 놀랍고 신선했지만, 무엇보다 읽는 맛이 그만인 최고의 판본이다. 참고로 이 책의 초판은 1973년에 나왔다. 모처럼 이 추억의 동화로 인해 여러 가지로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