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분단의 기억

[전쟁과 분단의 기억·(12)] 경원선 끝자락, 연천 신망리·대광리·신탄리역

뒤틀린 역사의 궤도… 북녘의 철마는 언제 여기 닿을까
입력 2023-07-10 20:22
지면 아이콘 지면 2023-07-11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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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행이 중단된 경원선 철로 모습. /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

피난민 정착지 'New Hope Town'
'신망리역' 명칭 기원… 1956년부터 운영
마을내 '구호주택' 2018년까지 존재

1912년 문 연 '대광리역' 과거모습 간직
일대 한때 연천 이북 역중 가장 번화
콘크리트 건물의 역사, 건설 연도 미상

백마고지역 이전 철도종단점 '신탄리역'
'철마는 달리고 싶다' 명소로 각광도
남북관계 경색… 경원선 복원 기약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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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원선 경기도 구간 최북단 3개역인 신망리역의 역사 전경. /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

■ 상리 131-1 '신망리역'


수원시 효원로 299 경인일보 본사에서 120㎞를 달려 연천군 경원선 신망리역에 도착했다. 여기서 고작 20㎞를 더 북쪽으로 가면 북한이다. 달려온 길의 6분의 1만 가면 도달할 수 있는 고지를 목전에 두고 경원선 열차는 백마고지역에서 멈춘다.

경기도를 지나는 경원선 열차의 최북단인 연천 신망리역·대광리역·신탄리역을 차례로 훑었다. 1910년대 완공된 경원선은 서울에서 연천·철원을 지나 원산까지 닿았다. 2000년대 들어 남북한이 평화 대화에 나서며 복원이 논의됐으나 남북관계 경색으로 중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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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원선 신망리역 표 파는 곳 모습. /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

역 이름으로 붙은 신망리(新望里)라는 명칭이 재밌다. 신망리는 마을 자체가 미군이 만든 정착지다. 1954년 5월 미군 제7사단이 피난민을 위해 조성했는데 새로운 희망을 품으라는 의미, 즉 'New Hope Town'이라는 뜻에서 신망리가 됐다.

처음엔 100호 정도 선착순으로 피난민이 정착했다고 전해진다. 이곳은 신망리란 이름이 붙기 전 '웃골'이라고 불렸고 일제강점기엔 이를 한자어로 읽어 '상리'라고 불렀다. 웃골, 상리, 신망리에는 지금 중국음식점과 부동산과 같은 몇 개의 상점만 존재한다.

1956년 8월 21일 역무역을 두지 않는 무인역으로 영업을 개시했는데, 1면 1선로로 승강장과 역사가 좁다는 특징을 보인다. 간이역이기에 정식역인 대광리·신탄리역에 비해 좁은 것이다.

뉴 호프 타운 신망리의 역사는 신망리역사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지금은 쓰이지 않는 신망리역사 안으로 들어가니 과거 처음 지붕을 지었던 자재가 전시돼 있다. 전시된 나무 널빤지엔 영어와 숫자가 어지럽게 적혀 있다. 신망리역은 주민들이 손수 지은 역이다. 신망리역을 건설할 때 미군의 탄약 상자를 재료로 삼아 주민들이 지붕을 엮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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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원선 신망리역 지붕을 만든 재료. 미군 탄약통에서 재료를 찾아와 널빤지에 영어와 숫자가 적혀 있다. /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

1956년 문을 열었고 마을이 번성한 1964년엔 역원이 배치되었으나 또 다시 쇠퇴를 겪으며 1973년 다시 무인역이 됐다. 신망리엔 2018년까지 '구호주택'이라 불린 집들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구호주택은 한국정부와 유엔군 등에 의해 전국에 각기 다른 형태로 지어진 주택이다.

1951년부터 1953년 수복지역에 간이주택 형태로 건설됐고 1954년부터 1956년까진 정착용으로 건설됐다. 신망리는 1954년 조성됐기 때문에 이곳의 구호주택은 정착용으로 봐야 한다. 모두 100호를 지었고 지어진 순서에 따라 '일호집', '이호집', '삼호집' 등으로 불렸다.

온돌 구들에 시멘트 모르타르로 마감을 하고 슬레이트 지붕을 엮은 형태의 구호주택 설계도가 2020년 복원됐다. 복원설계도를 보면 온돌구들은 370㎜, 기둥은 1천910㎜로 하고 슬레이트 지붕은 860㎜로 건물의 수직면은 3천180㎜로, 수평면은 1만1천745㎜로 설정해 당시 구호주택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크지 않고 겨우 사람이 살만한 그런 주택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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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원선 경기도 구간 최북단 3개역인 대광리역의 역사 전경. /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

■ 도신리 285-1 '대광리역'


대광리역은 신망리역보다 40년 앞선 1912년 문을 열었다. 경원선 보통역으로 시작해 2015년 무인역이 됐다. 본래 대광산 아래 대광골·대광곡이라 불리던 지역으로 일대는 철원군에 속했지만 1953년 경기도로 편입됐다.

연천 이북 철도역 중 가장 번화한 곳이었던 게 바로 대광리역 일대다. 현재도 역 앞에 다수의 상점이 자리 잡고 있어 과거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역사는 1912년이 아니라 이후에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추정하기만 할 뿐 정확한 건설연도는 알 수 없다.

역무실·표 파는 곳·남녀 화장실 등 내부 배치가 신탄리역과 동일하다. 콘크리트 건물에 지붕이 가려져 있지만 속은 목조 트러스로 추측된다. 구조는 같지만 신탄리역은 조적조(돌을 쌓아 만든 구조)인데 반해 대광리역은 콘크리트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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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원선 경기도 구간 최북단 3개역인 신탄리역의 역사 전경. /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

■ 대광리 169-2 '신탄리역'


대광리역에서 한 정거장 북쪽에 자리 잡은 신탄리역으로 이동한다. 대광리역과 달리 신탄리역은 1961년 현재 역사가 건축됐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역의 역사는 대광리역보다 짧고 신망리역보다는 길다.

신탄리역은 1942년 12월 1일 경원선의 보통역으로 시작했다. 1945년 해방과 동시에 이북 지역에 속하게 됐고, 1951년 9월 서울 수복으로 탈환됐다. 1955년 7월 1일 보통역으로 다시 영업을 시작했으며 1961년 12월 30일 역사가 준공됐고 1971년 11월 3일 철도 종단점 표지판이 설치됐다.

2012년 철도 종단점 표지판이 철원 백마고지역으로 옮겨가기 전까지 신탄리역은 한국의 가장 북쪽 마지막 철도가 닿는 지역이었다. 신탄리(新炭里)는 우리말로 '새숯막', 새로운 숯을 만드는 마을이다. 고대산의 숯이 유명했던 마을이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조선 영조 때 편찬한 '여지도서'에도 이곳을 '신탄'이라 일컫는 구절이 나온다고 한다. 신탄리는 경원선 철도가 부설된 뒤로 숯가공이 더욱 활발해졌다. 지명 유래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도 있다. 대광리와 철원 사이에 주막거리가 새로 생겼다고 해서 '새술막'으로 불렸다는 것이다. 새숯막이든 새술막이든 신탄리가 흥성한 마을이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신탄리는 근래까지 멈춘 경원선의 상징이자 차갑게 얼어붙은, 다시 회복될 수 없는 남북관계의 상징처럼 쓰였다. 백마고지역으로 철도 종단점이 옮겨가기 전까지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문구와 함께 신문지상의 통일 염원 사진 명소로도 각광받았다.

앞서 2018년 남북화해무드가 한창일 때, 신탄리역을 거쳐 백마고지역을 방문했었다. 경원선 복원 논의가 활발하던 때로 경원선 복원 철도를 현장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요맘때쯤, 경기 북부 지자체는 너나 할 것 없이 경원선·경의선 복원을 정부에 요구했다.

2012년까지 경원선 종착역이었던 신탄리역엔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글귀가 녹슨 철판 위에 새겨져 있었다. 끊어진 철길과 총탄 흔적은 한국이 냉전 중이라는 사실을 차갑게 웅변했다. 신탄리역을 거쳐 북쪽으로 올라갔다. 백마고지역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

"철마는 달리고 싶어서 오랜 세월 멈춰 섰던 연천 신탄리역으로부터 한 걸음 더 기적같이 통일을 향해 내디뎠다."

결국 고작 한 걸음을 내디뎠을 뿐인 철마는 어쩌면 영원히 백마고지에 머물고 있다. 신망리에 깃든 희망도 대광리의 번성도 신탄리의 흥성도 과거가 됐다. 철마는 달릴 수 있을까. 남쪽에서 출발한 열차가 신망리·대광리·신탄리를 지나 원산에 닿고, 다시 중국·러시아를 거쳐 유럽 땅에 닿는 그런 날이 올까. 연천에서 바라본 기약 없는 희망은 2018년보다 2023년 더 어두워 보였다.

/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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