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 시민단체가 정부를 상대로 낸 부평 미군기지 '캠프 마켓' 내 조병창(일본군 군수공장) 병원 건물 철거 중지 가처분 신청(4월25일자 3면 보도=조병창 건물 존치 갈등… 법원 '현장검증' 마지막 변수)과 관련해, 법원이 민사소송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법원은 조병창 병원 건물이 역사적·문화적 가치가 큰 건축물로 보인다며, 보호 여부는 행정소송에서 추가로 다툴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법리상 시민단체가 낸 철거 중지 신청은 각하하지만, 건물 자체는 특별한 가치를 지닌다는 의미여서 추후 행정소송에서 '오염 정화'와 '문화유산 보존'이란 상반된 가치가 다시 충돌할 것으로 보인다.
인천지법 제21민사부(부장판사·우라옥)는 지난 14일 시민단체 '일본육군조병창 역사문화생태공원 추진협의회'가 정부를 상대로 낸 '부평 캠프 마켓 1780호 조병창 병원 건물 철거 중지 가처분' 신청을 각하했다.
재판부는 "채무자(정부)의 건물 철거 행위는 인천 부평구청의 건축물 해체 허가에 따른 것"이라며 "행정 처분의 효력이나 집행 혹은 절차 속행 등의 정지를 구하는 신청은 행정소송법상 집행정지 신청으로만 가능할 뿐 민사소송법상 가처분으로 철거 금지를 구하는 것은 부적법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이 건물은 우리나라의 역사를 담고 있는 현장으로, 역사적·문화적 가치가 매우 크다. 유네스코에서 정하는 역사상·민족학상 특별한 가치를 가지는 '건축물'에 해당한다"며 조병창 병원 건물을 사실상 문화재로 봤다.
"부평구청 해체 허가 부적법 판단"
역사·문화 가치 사실상 문화재 인정
'오염정화 vs 유산보존' 재충돌 예고
재판부 판사들은 지난 5월19일 캠프 마켓을 찾아 조병창 건물에 대한 현장 검증을 했다. 이때 시민단체는 일제강점기 일본군의 대규모 군수공장에서 미군기지로 이어진 캠프 마켓 80년 역사를 재판부에 설명했다. 토양 오염 정화사업을 하는 국방부도 현장 검증에서 건물을 철거할 때 일부 벽면을 남기겠다는 입장을 재판부에 전했다.
재판부는 "문화재는 공공적 성격을 가지는 국민적 재산이자 역사의 징표이며 미래를 향하는 현재의 기반이 된다"며 "이러한 문화재가 일단 파괴되거나 변형되면 다시는 회복될 수 없게 그 고유의 가치를 상실하게 되므로, 문화재 보존의 당위성은 어떠한 이유로든 간과돼선 안 된다"고 했다.
이어 "이러한 관점에서 대한민국 헌법은 문화재 보호의 정신과 가치가 담겨 있는 규정들을 두고 있다"며 "보호 가치 여부는 행정사건에서 추가로 심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시민단체는 가처분 신청과 별도로 조병창 병원 건물 철거를 허가한 부평구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행정소송에선 오염 정화와 문화유산 보존 가치 중 무엇을 우선할지 판가름날 전망이다. 시민단체는 행정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건물 철거를 미뤄달라는 집행정지도 신청하기로 했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법원에 건물 철거 집행정지를 신청할 예정으로, 가처분 신청 각하 결정에 대해서는 항고했다"며 "행정소송에서는 건물을 존치한 상태에서 오염된 토양을 정화하는 방안을 설명하겠다"고 했다.
국방부와 인천시는 서로 책임 소재를 미루는 모양새다. 국방부 관계자는 "인천시가 오염 정화 업무를 책임지고 조병창 병원 건물 존치를 요구한다면 철거를 중단하겠다"고 말했다.
인천시 관계자는 "안전한 환경 조성을 위해 오염 정화가 우선 이뤄져야 한다는 방침"이라며 "건물 철거를 포함한 캠프 마켓 관련 업무는 전적으로 국방부가 결정하고 책임지는 사항"이라고 했다.
/박경호·박현주기자 ph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