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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행정복지센터 민원실의 불이 꺼져 있는 모습. /경인일보DB
 

A씨가 의정부시청 민원실에 출근 도장을 찍기 시작한 것은 족히 10년도 더 된 일이다. 시청뿐 아니라 동사무소 곳곳, 나아가 이웃 지역인 양주시청 민원실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때로는 경기도 북부청사 민원실에서도 A씨를 만날 수 있다. 그야말로 신출귀몰(?)하다.


시청 민원실을 마치 단골 식당처럼 꾸준히 드나드는 민원인은 A씨 외에도 2~3명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A씨는 가장 피로도가 높은 민원인으로 꼽힌다. 거의 매일 같이 나타나 길게는 몇 시간씩 머무르는데 장소는 비단 민원실에 그치지 않는다.

부서 곳곳을 다니면서 "화분 위치가 마음에 들지 않으니 옮겨라" "신문 가판대 위치를 바꿔달라" 등부터 "불법 건축물 내역을 보고하라" "노점상 단속 대책은 무엇인가" 등 행정사무감사를 방불케 하는 내용까지 요구도 다양하다.

욕설을 하거나 소리를 지르지는 않지만 A씨의 특별함은 '끈질김'에 있다. 민원실에서 요구 사항이 해결되지 않으면 해당 부서를 찾아 일선 주무관부터 담당 과장까지 차례차례 면담하는 것은 예사다. 성에 찰 때까지 민원을 넣고 또 넣는데, 지난해 말에 제기한 민원 사항을 8개월째 반복적으로 내고 있다. 


의정부시청·북부청사 '출근' A씨
10년간 '꾸준' 수개월 같은 요구도
상담 담당자 "삶의 낙이 된 듯…"


공무원들 사이에서 '유명인'이 된 A씨의 심리는 무엇일까. 최근 A씨와 이 문제를 두고 장시간 이야기를 나눈 한 민원 담당자에 따르면 "민원을 넣는 게 삶의 낙이자 자부심"이라는 게 A씨 설명이다. A씨는 "예전에 민원을 넣었는데 경기도청에서 직접 처리해 문제가 개선됐다. 그 이후로 문제라고 생각하는 일에 대해선 개선이 될 때까지 계속 민원을 제기한다"고 했다.

"민원을 넣어 문제를 열심히 개선해 나중엔 도지사 상 같은 것도 받고 싶다"는 바람마저 내비쳤다. 뚜렷한 목적의식 앞에 업무 방해 등에 대한 고려는 뒷전이 된 것으로 보인다.



A씨와 장시간 상담했던 해당 담당자는 "민원 제기는 시민의 권리이기 때문에 이를 정당하게 행사하는 것이고 원하는 만큼 개선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A씨처럼 상습 민원으로 업무 방해를 야기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반복적인 민원(컴플레인)이 더 효과를 낸다고 여기는 경향은 비교적 적지 않다.

민원 제기에 대한 일반인들의 생각을 묻기 위해 경인일보가 지난 4일부터 7일까지 나흘간 SNS를 통해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원(컴플레인)을 제기한 경험이 있다고 한 응답자 중 동일 사안에 대해 2회 이상 민원을 제기한 경우는 38.6%였다. 세 차례 이상 반복적으로 민원을 넣은 응답자도 11.7%였다.

이들은 '제기했던 문제 외 추가적인 문제가 발생했다'(17.9%), '민원 응대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15.9%), '민원 내용에 대한 보상이 충분치 않다고 느꼈다'(12.4%)는 등의 이유로 민원을 반복 제기했다. 반복 제기의 효과가 더 크다는 평가(37.3%)가 그렇지 않다는 응답(33.1%)보다 약간 우세했다. → 홈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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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한 권리 인식" 목적의식 뚜렷
37.3%가 '반복 제기 효과 더 크다'

소비자단체에선 상습·악성 컴플레인을 제기하는 '블랙 컨슈머'의 행동을 권리를 남용해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한 것으로 풀이한다.

경기도소비자단체협의회와 안산소비자시민모임 등의 관계자들은 "블랙 컨슈머들은 컴플레인 제기가 소비자가 행할 수 있는 당연한 권리임을 알고 있고 요구 사항이 분명하다. 인터넷에서 여러 정보를 쉽게 구할 수 있다 보니, 보통 각종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원하는 바가 뚜렷해진다. 원하는 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감정을 이기지 못해 폭언을 한다"면서 "법으로 보장된 소비자의 권리 행사는 정당한 것이지만 블랙 컨슈머의 행동은 소비자 전체에 피해를 줄 수 있는 행동"이라고 강조했다. → 관련기사 3면([악성민원, 일상의 공포가 되다·(中)] 전문가들의 진단은)

/김도란·강기정·김동한기자 kanggj@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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