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しゃぶ-しゃぶ(샤부샤부) おいしい うどん(오이시이 우동)…"
일본의 한 거리를 연상케 하는 간판으로 즐비한 이곳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수원 화성이 소재한 행궁동이다. MZ세대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SNS 유명 관광지로 부상한 행궁동에 일본풍 가게가 범람하고 있다.
관광객이 많이 찾는 행궁동은 화성 행궁의 북쪽·방화수류정 서쪽 지역이다. 유명 카페를 비롯해 맛집이 밀집해 있어 시민들로부터 큰 관심을 끌고 있다.
경인일보 취재진이 지난 14일 행궁동 일대에서 확인한 간판 문구를 일본어로 표기한 일식당은 8곳, 공방도 1곳이나 된다. 엔저로 일본 관광이 부상한 최근 들어 일본 음식점이 연쇄적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좁은 구식 건물들 '일식' 적합
"비빔밥 먹고 싶은데 못 찾아"
서울 인사동 '한글간판' 대조
정조의 계획도시인 수원 화성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수많은 내외국인이 찾는 명소다. 지정 이후 낡은 집을 개조해 문화예술을 위한 공간으로 바꾸어내는 등 마을 주민들의 적극적인 노력과 수원시의 도시재생 뉴딜사업이 맞물려 이른바 '행리단길'이라 불리는 대표 관광 상품을 탄생시켰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그해 우리는'·'경이로운 소문' 등 유명 드라마의 로케 장소로도 각광받을 정도로 고즈넉한 정취와 한국의 문화가 깃든 골목골목이 주목받은 곳이었지만 어느샌가 일본풍 가게들이 곳곳에 들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이상함을 감지한 건, 한국인보다는 외국인들이다. 잼버리로 이곳을 찾은 잉글랜드 출신 대원 윈시(Wynsee·17)는 "그룹활동으로 행궁동에 왔는데, 한식보다는 일식이 많다"며 의아해 했다. 일주일째 한국 여행 중이라는 필리핀 여성 레이첼(24)씨도 "서울 명동에 있는데 수원을 일부러 찾았다. 비빔밥을 먹고 싶은데 식당을 못 찾겠다"며 난감해 했다.
일본 음식의 인기 외에 행궁동에 일본 음식점이 많이 들어서는 이유는 따로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개발이 어렵기 때문에 좁은 구식 건물을 개조해 음식점으로 만들 수밖에 없고, 상대적으로 적은 공간을 필요로 하는 일본식 식당이 적합한 것이다.
일본 음식점은 전형적 구조인 '다찌 형태'(조리하는 곳과 손님석이 마주보고 있는 형태)가 많다는 특징을 보인다. 이런 이유들로 일본 음식점이 범람하고 있지만, 비슷한 상황에 처한 인접 지자체는 고유문화를 지키기 위한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 상반되는 모습을 보인다.
서울시의 경우, 외국인 관광객 명소인 인사동 거리에 '한글 간판'을 지키기 위해 역사문화지구로 지정하고 있다. '인사동 문화지구에서 금지하는 영업 또는 시설의 종류'를 따로 규정해 관리하며 외래 문화가 스며드는 현상을 막기 위해 애쓰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관찰한 시민 강모(35)씨는 "수원에서 나고 자란 사람으로서 한국 문화를 상징하는 화성 행궁 근처가 일본풍으로 물들어 간다는 게 아쉽다. 돈을 버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음식은 문화에 중요한 부분 아니냐"며 "한국을 찾을 외국인을 생각해 한국 문화를 잘 소개하고 관리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