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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문규 대원의 쌍둥이 아들이 집에 보관 중인 아빠의 제복을 어루만지고 있다. 김포/김우성기자 wskim@kyeongin.com

한결같았다… 결혼은 저런 사람이랑 하는 건가 싶었다
-아내 조샛별씨

 2012년 2월의 추운 아침이었다.  김포시 고촌읍 동물병원에 체육복 차림의 사내가 강아지 한 마리를 안고 들어왔다. 강아지는 당뇨병을 앓고 있었고, 아침저녁으로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하는 상태였다.


동물병원에서 일하던 조샛별(33)씨는 그때부터 1년 넘게 직원과 고객으로 그를 대면했다. 출근할 때 강아지를 데려와서는 퇴근할 때 데리고 가는 일상이 반복됐다.

단 하루도 빠진 적이 없었다. 비가 오면 비를 맞은 채 강아지를 안고 왔다. 웃는 인상이 서글서글했지만 그는 감정표현에 서툰 마산 사나이였다. 시답잖은 농담 한 번 하는 법이 없었다. 그런 사내를 동물병원 사람들 모두가 좋아했다.

조씨는 "아프거나 일이 바쁘면 못 올 수도 있을 텐데 사람이 한결같았다"며 "당시에는 내가 어릴 때라 그냥 문득문득 '아 결혼은 저런 사람이랑 하는 건가' 싶었다"고 회상했다.

 2013년 11월 어느 날.  조씨는 독감을 심하게 앓았다. 어디에도 내색한 적이 없었는데 그가 쌍화탕과 감기약을 사들고 나타났다. 조씨는 "그걸 건네기까지 고민이 많았을 거라 생각하니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고 돌이켰다.

그해 크리스마스에 두 사람은 함께 영화를 봤다. 직장인 김포소방서 수난구조대가 바라다보이는 한적한 거리에서 사내는 자신을 한 번 만나보지 않겠느냐고 고백했다. 조씨는 행복한 미소로 답을 대신했다. 첫 데이트에 돼지갈비집으로 안내한 투박함이 싫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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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문규 대원의 가족사진 이미지. /조샛별씨 제공

(소방관) 그만두기에는 늦었다
- 심문규 대원

고(故) 심문규 대원과 조씨는 2015년 5월 결혼해 2017년 아들 쌍둥이를 낳았다. 심 대원은 슈퍼맨 같은 남편이었다. 청소며 빨래며 정리정돈이며 뭐든 열심히 하고 2교대 격무 속에서도 아내의 아침 식사까지 챙겨놓고 출근했다.

 

더워도 덥다고 추워도 춥다고 표현하지 않았다. 나지막한 경상도 사투리로 '괜찮다. 괜찮다'는 말을 자주 했다. 오래전 동물병원 직원들 먹으라며 커피 잔뜩 사왔던 게 나 때문이었느냐고 궁금해하는 아내에게 '그런 걸 와 물어보노'라며 쑥스러워하던 남편이었다.

조씨는 "오빠는 글로는 다 표현이 안 되는 사람이다. 지인들에게 오빠 얘길 해주면 '그런 사람이 어딨느냐'며 안 믿었다"면서 "소방관이 아니더라도 어떻게든 우리를 먹여 살리고 행복하게 해줬을 사람"이라고 기억을 떠올렸다.

여러 사고소식을 접하면서 조씨는 남편에게 소방관을 그만두라고도 해봤다. 그럴 때마다 심 대원은 "그만두기에는 늦었다"며 멋쩍게 웃어넘겼다.

격무에도 아내 아침밥 차리고 출근
천성 선해 소방의 인재 될 거라 격려
비번일때도 힘든 고민 들어줬던 형
"같이 일할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

심 대원은 아들 쌍둥이를 끔찍이 사랑했다. 아이들이 태어난 후 웃음이 부쩍 많아졌다. 고된 일을 마치고 와서도 아이들 보는 걸 너무 행복해하던 사람이었다. 조씨는 "아이들 걸음마가 늦는 것 아니냐고 걱정했더니 오빠는 '애들은 안 아프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며 "오빠라면 아이들에게 공부는 바라지 않고 인성 바르게, 그저 건강하게 자라길 바랐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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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문규 대원이 생전에 아들 쌍둥이에게 처음 신발을 신긴 날, 김포한강야생조류생태공원에서 걸음마 연습을 시키고 있다. /조샛별씨 제공

반드시 소방의 인재가 될 거라고… 사고 소식 듣고 자책감이 들었다
-임종만 김포소방서 재난예방과장

심 대원의 젊은 날은 평탄치 않았다. 어머니의 병환이 깊어 집안 형편이 어려웠다. 병간호를 책임졌던 그는 단국대학교 건축공학과에 재학 중일 때 원양어선을 탔다. 장남의 무게감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심 대원은 운동을 놓지 않았다. 달리기와 자전거, 복싱을 좋아했다. 특히 복싱은 프로라이선스를 따고 대회에 출전한 실력이었다.

 2008년 따뜻한 봄날.  임종만(51) 김포소방서 재난예방과장은 용인 단국대 근처 체육관에서 청년 심문규를 처음 만났다. 임 과장은 하남소방서 소방관, 심 대원은 5년여 어선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복학생이었다. 둘은 스파링을 거듭하며 친분을 쌓았다. 심 대원은 종종 체육관에서 신세를 지며 청소도 하고 수련생을 가르쳤다.

졸업할 무렵 심 대원은 소방관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다. 임 과장은 항해사 자격이 있는 그에게 수난구조대 응시를 권유했다. 2010년에 서울 쪽 수난구조대에 도전했다가 발목이 접질리는 부상으로 포기해야 했던 그는 이듬해 경기도 소방공무원에 합격, 2012년 김포소방서에 임용된 뒤 2013년 1월 새로 개청한 수난구조대에 배치됐다.

 

임 과장은 "심 프로는 천성이 착했다. 그러니까 소방에 들어오라고 권했던 것"이라며 "반드시 소방의 인재가 될 거라고 격려도 많이 했었는데 사고 소식을 듣고 자책감이 들었다"고 회한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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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소방서 119수난구조대 활동 당시의 심문규(오른쪽에서 두 번째) 대원. 심 대원은 김포 수난구조대 개청 때부터 자리를 지켰다. /김포소방서 제공

자기 힘든 얘기는 일절 안 하고 내 고민만 들어줬다
- 김포소방서 수난구조대 개청 멤버 김관철 대원
김포소방서 수난구조대 개청 멤버인 이영구(40)·김관철(38) 대원도 비슷한 기억을 공유한다.

이 대원은 "문규형은 조용하고 듬직한 사람이었다. 동생들에게 싫은 소리 한 번 안 하고, 뭐 좀 하자면 다 오케이 해주던 형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참 좋은 사람이었다는 걸 더 절실히 느낀다"고 했다.

김 대원은 "내가 지방에서 올라와 적응 못 하고 힘들어할 때 형이 비번일 때도 일부러 시간을 내주며 좋은 말을 해주고 곁을 지켜줬다. 자기 힘든 얘기는 일절 안 하고 내 고민만 들어줬다"며 "문규형과 같이 일할 수 있었던 건 큰 행운이었다"고 추억을 더듬었다.

 2018년 8월12일.  심문규(37·당시 나이) 대원은 동기 오동진(37) 대원과 함께 한강에 표류 중인 민간인 보트가 위험하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가 돌아오지 못했다.

김포생활체육관에서 거행된 이들의 영결식에는 전국 각지에서 1천명 이상의 동료 소방관이 찾아와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옥조근정훈장이 추서된 두 대원은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소방영결식(메인)
2018년 김포생활체육관에서 거행된 심문규·오동진 대원의 영결식에는 전국 각지에서 1천명 이상의 동료 소방관이 찾아와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경인일보DB

한강 표류 보트 구조하다 먼길 떠나
신곡수중보 순직사고 일어난지 5년
위험 사고현장으로 뛰어드는 사람들
그 사이에 '심문규 소방관'이 있었다

 2023년 8월8일.  김포 모처에서 아내 조씨를 만났다. 사고대책본부가 차려진 백마도에 늦게까지 남아 취재하면서 심 대원의 생환을 간절히 기다리는 조씨를 본 적이 있었다.

조씨는 "오빠가 아이들 일곱 살 되면 복싱도 가르치고 운동도 많이 시킬 거라 했는데 벌써 일곱 살이 됐다"며 "오빠가 약과와 가래떡을 무척 좋아했는데 아이들이 마트에 가면 약과를 집어온다. 아이들 보고 있으면 오빠를 보는 것 같아 신기하다"고 했다.

조씨는 영결식장에서 '난 괜찮다'는 남편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었다. 이후로 들린 적은 없었고 그때만 그랬다. 심 대원이 지금 무슨 말을 해줄 것 같으냐고 물었다.

잘하고 있어
오빠는 딱 그 말을 하고 있을 것 같아요
특유의 차분한 억양으로

신곡수중보 소방관 순직사고가 일어난 지 정확히 5년이 흘렀다. 이후에도 2019년 10월, 가천대 길병원에서 응급구조사로 재직한 적이 있는 중앙119구조본부 소속 박단비(29) 소방관과 김종필(46)·서정용(45)·이종후(39)·배혁(31) 소방관이 독도 응급환자를 이송하던 중 헬기 추락으로 순직했다.


2021년 6월 이천 물류센터 화재현장에서 잔류 인원을 수색하던 광주소방서 김동식(52) 소방관이 동료들을 먼저 대피시키고 건물을 빠져나오지 못해 순직했다. 2022년 1월 평택 냉동창고 신축공사장 화재현장에서 송탄소방서 이형석(51)·박수동(32)·조우찬(26) 소방관이 구조물 붕괴로 순직했다.

뜨거운 화염 속으로 당연하게 뛰어드는 사람들, 세찬 물살로 당연하게 몸을 던지는 사람들, 위험천만한 사고현장으로 가장 먼저 들어가 가장 마지막에 나오는 사람들이 그렇게 대한민국의 일상에 시시각각 존재했다.

 

그중에 '심문규'라는 소방관이 있었다.

김포/김우성기자 wskim@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