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talk)!세상

[톡(talk)!세상] 화물칸에 탈 순 없잖소

입력 2023-08-16 19:44
지면 아이콘 지면 2023-08-1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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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영 인문독서공동체 책고집 대표
전국 12개 노숙인 시설에서 동시에 진행하게 될 인문학 강좌를 기획하느라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와중에 지인으로부터 겸손하게 처신하라는 말을 연거푸 들었다. 처음엔 의아했지만 두 번째 듣고 나서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사람들 앞에 서서 일을 하게 되었으니 더욱더 겸손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나에게 하는 조언이면서 동시에 겸손이 사라진 세태에 대한 한탄이었다.

근래 들어 우리 사회에선 당최 겸양의 미덕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다. 거센 학부모에게 시달리다 생을 내려놓는 교사가 속출하는가 하면, 교육부의 모 사무관은 담임 교사에게 내 아이만 특별하게 대하라 주문하고, 그것도 모자라 자기 말을 듣지 않으면 교사 직위를 박탈하겠다는 협박까지 했다고 한다. 군사부일체라는 말이 무색해진 지는 오랜 일이지만 그렇기로 이건 도시 목불인견이 아닐 수 없다. 


요즘 우리사회 사라진 겸양의 미덕
학부모에 시달리다 생 마감한 교사
남탓 공방에만 열 올리는 정치권


겸손이라는 말을 무색하게 만들기로는 정치권이 뒤질 리 없다. 재판의 선고 내용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판사의 고교 시절 글까지 파헤쳐 판사의 성향이 어떻네, 정치 판사네 하는 공세를 퍼붓기도 한다. 민주주의의 근간인 3권분립의 원칙에 정면으로 맞서는 인사가 5선 국회의원에 국회부의장까지 지냈다니 그저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겸손, 요즘 사람들은 이런 말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것 같지만, 불과 한 세대 전까지만 해도 집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부모와 선생님, 상사나 선배에게서 귀에 못이 박일 만큼 들어왔던 말이다. 인생을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나를 내세우기보다 남을 먼저 생각할 줄 알아야 하고, 그게 바로 슬기롭게 사는 것이라는 설명과 함께. 남을 높이어 귀하게 대하고 자신을 낮추는 태도가 겸손이다. 매사 남 탓을 하기보다 궂은일 생기면 우선 '내 탓이오'하고 외치는 것이 또한 겸손이다.



폭염과 폭우가 교차하는 날씨에 지칠 대로 지친 몸과 마음 달랠 길 없건만 연일 터져 나오는 세상 소식이라니 어처구니없는 것들 투성이다. 정치권에선 매사 남 탓 공방에 열을 올린다. 교육 현장에선 '내 새끼 지상주의'가 판치고, 거리에선 '묻지마 폭행'이 연쇄적으로 일어난다. 겸손과 신뢰는 사라지고 그 자리를 대신해 대립과 반목, 불신이 진을 친 형국이다. 무참한 현실이다.

생때같은 젊은이들이 거리에서 압사되고, 수십 명의 시민이 폭우와 산사태로 떠내려가고, 그들을 구조하려던 군인마저 수마에 휩쓸려 생을 마감했어도, 누구 하나 자성의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150여 개국 4만3천여 청소년들을 모아놓고 지옥을 맛보게 했던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대회의 파행에 대한 책임소재를 밝히는 일 역시 난망해 보인다. 정쟁만 난무할 뿐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와중에 독박을 쓰는 이가 있긴 하다. 이른바, '전 정권'이다. 올해로 집권 7년 차를 맞은 전 씨는 궂은일이 있을 때마다 여지없이 소환된다. 이쯤 그만 놔줄 때가 됐건만.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겸손'
솔선하는 사람 많아야 세상이 발전


겸손의 외화가 솔선수범이다. 겸손하되 솔선수범하지 않는다면 진척되는 일은 없다. 겸손한 마음으로 솔선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세상은 조금씩이나 앞으로 나아간다. 겸손하고 솔선하면서도 재치와 유머를 잃지 않은 사람도 있다.

아프리카에서 헌신한 공로로 노벨상을 받게 된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가 덴마크로 가기 위해 파리를 경유하게 되었을 때의 일이다. 소식을 들은 기자들이 기차역으로 나가 그를 기다렸다. 당연히 1등 칸에 있을 줄 알았던 슈바이처 박사는 뜻밖에도 3등 칸에서 발견됐다. 한 기자가 왜 3등 칸에 계시느냐고 묻자 슈바이처가 담담하게 말했다. "화물칸에 탈 순 없잖소."

겸손이 몸에 밴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슈바이처의 겸손은 3등 칸 이용에 그치지 않는다.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재치 있게 꾸짖는다. 움베르토 에코가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을 알려줬지만, 슈바이처는 한 수 더 높은 경지를 보여줬다. 세상의 바보들에게 화내지 않고 웃으면서 그들의 어리석음을 일깨웠다.

/최준영 인문독서공동체 책고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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