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신고는 아이의 존재를 공적으로 인정하고 아이가 한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존엄성과 권리를 보장하는 '최소한의 권리를 위한 권리'라고 할 수 있다. 국가는 아이가 기록된 순간부터 생존 등을 위한 제도적 지원을 한다. 문제는 '모든 아이가 당연하게 기록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현행법상 부모가 출생 신고를 하지 않으면 아동은 법적·행정적으로 보호하기 어렵다. 뒤늦게나마 의료기관의 출생 신고를 의무화하는 '출생통보제'가 국회 문턱을 넘었지만, 여전히 빈틈은 존재한다.
출생 신고는 '최소한의 권리를 위한 권리'
의료기관 신고 의무화 생겼지만 빈틈 여전
앞선 2021년 8월, 시흥시에서는 전국 최초로 주민이 주도하는 '시흥시 출생확인증 작성 및 발급에 관한 조례' 제정 운동이 펼쳐졌다. 부모가 혼인 중이 아니거나 한국 국적이 없는 등 출생 신고가 어려운 경우에 시흥시가 임시로 출생확인서를 발급하자는 내용이다. 이주 아동 등 정부의 출생통보제가 품지 못한 사각지대 아이들을 시민의 힘으로 지켜내려는 의지와 바람이 담겼다는 점에서 대단히 의미가 크다. 그러나 국가 사무인 출생 등록을 지방정부가 시행하는 것이 상위법 위반이라는 법적 논란이 일면서 시의회 부결 등 한차례 부침을 겪었다. 다행히 시민과 시의원, 전문가, 공무원 등이 함께 보완한 수정 조례안이 시흥시의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지난 9일 경기도 심의를 거쳐 공표됐다. 이제 시흥시에서 태어난 아이라면 누구나 시흥시장 명의의 출생확인증을 통해 각종 의료 혜택과 보육 지원, 의무 교육 등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출생 후 즉시 등록될 권리'는 아동의 '생애 첫 권리'에 불과하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은 아동이 생존, 보호, 발달, 참여 등 다양한 기본권을 지니고 있으며 성인과 동등하게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만 18세 미만 아동이 전체 인구의 20%를 차지하는 시흥시는 지방정부 차원에서 아동권리협약을 실천하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아동친화도시 회장도시로서 아동 권리 향상을 위한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시흥시, 임시 출생확인서 발급 조례안 공표
아동 관련 주거권·놀 권리·학대조사 강화
국내에서는 여전히 생소한 '아동 주거권' 역시 시흥시가 주도적으로 공론화하고 있다. 주거 환경이 아동에게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지만, 아동 주거복지에 주목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시흥시는 아이들이 집다운 집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경기도 주거기본조례에 '아동주거빈곤' 개념을 명시하고, 전국 최초 시흥형 아동 주거비 지원, 집수리·가구·이사비 지원, 다자녀가구 공공주택 공급 등 아동 주거권 향상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더불어 '아동의 놀 권리' 확대를 목표로 2018년 문을 연 국내 최초 공공형 실내 놀이 공간 '숨 쉬는 놀이터'가 3호까지 개장했고, 놀이와 학습이 균형 잡힌 권역별 아동친화공간 조성에도 앞장서고 있다. 2020년에는 경기도 최초로 아동보호팀을 신설해 아동 학대 조사와 아동 보호에 대한 공적 책임을 강화하고 있다. 아동의 모든 권리가 생존과 맞닿아 있는 만큼 단 하나의 권리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어른들은 누구나 처음에는 어린이였지만, 이것을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다'던 소설 '어린 왕자'의 한 구절을 떠올려 본다. 아동 인권은 결국 우리 모두의 인권이다. 존중받고 자란 아이가 존중받는 어른이 되고 모든 인권이 존중되는 사회를 만들 것이다. 기적 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시흥시 모든 아동에게 생애 첫 권리를 찾아준 평범한 시민처럼 지금, 함께 한 걸음씩 내디딘다면 반드시 이룰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임병택 시흥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