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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사과의 TPO

입력 2023-08-24 19:12
지면 아이콘 지면 2023-08-25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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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한 경제부 기자
혼란한 세상이다. 올여름 유난히 사건·사고가 잦았다. 자고 일어나면 자살, 교통사고 등 누군가의 부고 소식이 들리고 흉기 난동, 영아 살해, 샤니 제빵공장 끼임사, 안성 공사장 붕괴, 잼버리 파행 등 잔혹한 범죄와 눈살 찌푸려지는 부정과 비리가 전해졌다. 하도 사건·사고가 많다 보니 지난 6월 영아 살해·유기 사건은 지난해 밝혀진 사건인 것처럼 까마득하다.

수많은 사건·사고 속에서 두 달여 동안 지속적으로 'LH 철근 누락 아파트'와 '카카오 공동체 단체 행동'을 취재했다. 경중을 매기자면 전자가 후자보다 무거운 사건으로 분류된다. 전국적인 반향과 파장 면에서 그렇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봤을 때 두 사건은 '사과'와 관련돼 있다는 점에서 통하는 구석이 있다. 전자는 사과를 할수록 일이 커지고, 후자는 사과를 하지 않아 일이 커지는 경우다.

LH는 여러 차례 사과에도 불구하고 점점 국민과 입주민들의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정확한 정보를 통해 사과하지 않은 게 패착이었다. LH는 지난달 30일 무량판 아파트 전수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철근 누락 아파트 사건에 대해 처음 사과했다. 당시 LH는 발주한 무량판 91개 아파트 단지 중 15곳에서 철근이 누락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열흘 뒤 무량판 아파트 단지 수를 101개로 수정하더니, 이틀 뒤엔 102개로 다시 정정하고 철근 누락 아파트 단지가 5개 더 있었다는 사실을 알렸다. 처음 전수조사 결과를 발표했을 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철근 누락 개수가 경미해 자의적으로 제외했다는 게 LH의 해명이었다. 철근 누락 아파트 단지 추가 사실을 알리는 기자회견에서 이한준 사장을 포함한 임직원은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고, 임원 4명은 사직서를 냈다.

이에 LH가 거듭 사과하며 부실 공사 대책, 전관 업체 근절 방안 등 재발 방지 대책을 발표해도 입주민들의 반응은 냉정하다. 계약 해지 건수가 늘어가고 있으며 몇몇 입주민협의회 측은 철근 누락 원인에 대한 진상 규명을 다시 요구하고 있다. 사과가 역효과를 본 셈이다.

반면, 카카오 공동체 단체 행동은 창업자인 김범수 카카오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의 사과를 받기 위해 시작됐다. 해당 행동은 연이은 매출 하락세를 보이는 카카오가 일부 계열사를 대상으로 구조조정에 나서자 반발하며 진행됐다. 이들은 카카오 임직원이 경영 실패를 사과하고 노동자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지난달 26일 열린 1차 행동엔 김범수 센터장에게 항의서한을 전달했다. 하지만 회사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고, 지난 17일 2차 행동이 진행됐다. 2차 행동은 구조조정 계열사 사옥을 순회하는 거리 행진을 하는 등 참여 인원도 늘며 규모가 더 커졌다. 내로라하는 인재들이 모인 판교 테크노밸리에서 진행하는 첫 거리 행진이라 취재진들도 더 많이 모였다. 행동에 참여한 직원들의 분노도 전보다 커졌다. 향후 노조 측은 회사에 임직원 감사안을 전달하며 계속 행동에 나설 예정이다. 나름대로 회사의 전략이 있겠지만 어째 오히려 일을 키우는 모양새다.

의복에 TPO가 있듯, 사과에도 TPO는 존재하겠다. 아무리 혼란한 세상일지라도 TPO가 제대로 갖춰진 사과는 일을 줄이면 줄였지 키우진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쯤 되면 브라이언(김범수)은 이제 직원들 앞에 나타나야 하지 않을까.

/김동한 경제부 기자 dong@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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