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분단의 기억

[전쟁과 분단의 기억·(16)] 파주·의정부 '주한미군한국인노동조합' 건물

기지촌 경제로 먹고산 사람들… 그들의 권리 지켜준 노동운동 구심점
입력 2023-09-04 20:22
지면 아이콘 지면 2023-09-05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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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장파리 '럭키바'(8월 22일자 11면 보도)처럼 '블루문홀', '메트로홀' 역시 장파리에서 자취를 감춘 문화유산이다.

블루문홀(파평면 장파리 370-94)과 메트로홀(파평면 장파리 437-5)은 미군 주둔이 시작된 1950년대 조성돼 특정할 수 없는 시기에 사라져 현재는 멸실 상태다. 미군 기지촌 장파리의 이야기, 그곳에 종사했던 여성들의 이야기도 사라진 문화재와 함께 대부분 소멸했다.

장파리 '장마루 극장' 현재는 사라져
1959년 흥행 '장마루촌 이발사' 촬영
당시 번영했던 일대의 분위기 보여줘

장마루촌 이발사
1959년 개봉한 장마루촌 이발사. 그해 흥행 7위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였다. /한국영상자료원 자료

블루문홀, 메트로홀 인근 장파리 349-4 일대에는 '장마루극장'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장마루극장 역시 1950년대 들어선 것으로 알려졌는데 파주 지역에서 두 번째로 생긴 극장으로 추정된다. 장마루극장도 멸실 상태지만, 장마루극장에서 촬영된 '장마루촌의 이발사'가 기록으로 남아 있다.

장마루촌 마을 청년 동순은 여대생 순영과 사랑하는 사이인데 한국전쟁으로 북한군에게 잡혀간다. 구사일생으로 탈출해 군에 입대했지만 전쟁 중 성 불구가 되고 만다. 순영은 그런 동순을 이해하고 함께 장마루촌의 재건을 돕는다는 줄거리를 가진 영화다.



한국영상자료원에 따르면 장마루촌의 이발사는 1959년 9만5천82명의 관객을 동원해 그 해 흥행 7위를 기록했다. 큰 인기를 끈 장마루촌의 이발사는 10년 뒤인 1969년 신성일·김지미 주연으로 리메이크 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장파리 일대가 번영했던 시기로 미군 주둔 파주지역이 당대에 한국전쟁을 상징하는 지역이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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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주한미군한국인노동조합 파주지부. /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

'주한미군 한국인노동조합 파주지부'
1958년 '자유노조'란 이름으로 결성
한국노총의 출범보다 2년이나 앞서
파주서 미군철수뒤 사무실 방치 상태


장파리의 미군 클럽이 주둔 미군, 종사 여성, 관련 상인들이 얽힌 장소라면 미군과 관련한 노동을 한 사람들의 흔적이 남겨진 유산이 근처에 있다. '전국주한미군 한국인노동조합 파주지부'다.

전국주한미군 한국인노동조합 파주지부는 1958년 자유노조라는 이름으로 창립됐다. 이듬해인 1959년 11월 또 다른 미군 주둔 지역인 서울, 동두천, 부평, 인천, 부산 등 5개 지부와 미군 노조 산하 노합원들로 전국미군종업원노조연맹을 구성한다.

한국전쟁 이후 많은 미군기지가 파주에 조성됐고 일부 미군 기지는 철수했지만 파주 문산은 군인들에게 번화가의 거점 역할을 했던 지역으로 남았다. 장이 서는 목 좋은 땅이었던데다가 수도권까지 운행하는 전철이 다닌다는 점이 번성의 배경이었다.

파주지부 건물은 경의선과 나란한 1번 국도의 서측편, 문산읍 중심가로인 문향로의 북쪽 끝 부분 골목 안에 자리 잡고 있다. 현재 문산역 앞에는 오래된 주거지역과 상업지역이 있고 역주변과 거리가 있는 파주지부 주변은 쇠락한 분위기가 역력했다. 사무실 위쪽 문산3리 일대 구릉지 주거지역은 낙후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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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주한미군한국인노동조합 파주지부. /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

시기는 알 수 없지만 파주 미군 철수 영향으로 사무실이 방치된 지 오래돼 보였다. 내부에 집기와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었고 건물도 오랜 기간 보수하지 않은 상태였다.

단층 조적조 형태 건물에 박공형 지붕이 얹힌 모양이다. 전면은 사각형을 강조한 입면으로 구성해 주 출입구 상부에 간이 처마를 달고 그 위에 '전국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조합 파주지부' 간판을 부착했다. 내부엔 실이 구분된 칸막이 목조틀이 남아 있어 사무실로 사용했던 당시 모습을 짐작할 수 있었다.

주한미군한국인노동조합의 의미는 무엇일까. 한국노총이 출범한 게 1960년 11월이다. 그보다 2년 전 이미 1958년 전신인 자유노조가 구성됐던 것으로 파주지부가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조합의 산실이었다는 것을 방증한다.

의정부 'KSC 노동회관' 1964년 건립
3층 옥탑부 형태 건물 지금도 사용중


미군 소속 파주 노동자들은 미군 제2사단장을 상대로 노동운동을 전개해 파주지역 최초의 노동운동본부로서의 의의도 지닌다. 파주지부 건물은 전국미군종업원노조연맹 결성 시기인 1950년대 말에서 한국노총 출범 시기인 1960년대 초반 사이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경기도 지역 지부인 송탄지부는 이후인 1964년 건물을 매입했다는 기록이 있고, 의정부 지부의 의정부KSC노동회관 역시 1964년 건립댔다.

파주 지부는 단층인 평범한 건축물이지만 건물 색상은 미군기지 시설이 주로 사용하는 황토색을 썼다는 게 특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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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주한미군한국인노동조합 파주지부. /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

상술한대로 의정부동 201-4 일대엔 의정부동 전국주한미군한국인노동조합 건물이 온전히 보존돼 있다. 의정부동 전국주한미군한국인노동조합 건물은 한국전쟁 발발 이후 미군이 주둔하면서 주변에 미군의 주둔지들이 생기고, 이후 이 미군기지에 종사하는 한국인들이 설립한 노동조합 건물이다. 1964년 주한미군한국인노동조합(USFK Korean Employees Union)으로 지어졌다.

3층 옥탑부 형태의 건물인데 현재도 상가와 사무실 등의 용도로 쓰인다. 의정부 중앙교차로에서 평화로 방향에 있으며 반경 500m 이내에 의정부역과 의정부중앙역이 있는 중심 지역이다.

현재 1층은 오토바이 전문점으로, 2층은 주한미군한국인노동조합 사무실로 쓰인다. 3층은 예술단체에 임대했는데 상태를 보아 2~3층은 상시 쓰이는 장소는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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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동 전국주한미군한국인노동조합. /경기관광공사 자료

경기 북부지역의 파주, 의정부 전국주한미군한국인노동조합 건물은 한국전쟁 이후 미군 주둔에 따라 한국인들이 미군기지에서 근무하는 여건이 조성되며 활발한 활동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유산이다. 주한미군 주둔과 함께 지역민의 삶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엿볼 수 있으며 한국인 노동자가 미군기지 안에서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인 노동자, 미군기지내 상당 역할
사는 모습 우리네 보통 마을과 닮아


미군 기지촌의 풍경은 다채롭다. 피부색이 다르며 군복을 입고 달러를 쓰는 미군이 있고, 밤마다 주말마다 불이 꺼지지 않는 화려한 클럽이 즐비하다. 클럽 주변에는 클럽 상주 여성 종업원이 거주하는 건물과 사람이 오가는 버스정류장, 이들이 먹고 마실 식당이 들어선다.

파주 일대 미군 클럽은 한국 대중문화가 태동한 장소이면서 지금은 쳐다보지 않는 버려진 거리다. 그들만 미군 기지촌을 형성했던 게 아니다. 미군기지 내에서 청소, 식사, 운전을 담당했던 한국인들이 있고 이들이 권리를 지키기 위해 만든 노동조합과 노동조합의 건물이 있다.

미군 기지촌은 전쟁이 남긴 흔적, 미군 주둔이라는 외부 요인이 만들어 낸 것이다. 하지만 먹고 즐기고 사는 모습이 우리네 보통 마을과 다르지 않았다.

/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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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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