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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
 

청년들이 사라지고 있다. 농·어촌, 제조 산업단지 같은 곳은 말할 것도 없고 상대적으로 청년들의 선호도가 집중됐던 기업 현장, 공공기관 등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달 통계청이 발표한 8월 고용동향 자료에서 '그냥 쉬었다'는 청년이 40만명을 넘었다는 통계는 분야를 막론한 '청년 실종' 현상을 짐작케 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제조업만 해도 2018년 1분기엔 20·30대 종사자(일자리 수)가 195만7천명에 이르렀지만 5년 만인 올 1분기엔 171만3천명으로 24만명 이상이 감소했다. 전체적인 일자리 수가 5만개 이상 증가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제조업 현장은 더 고령화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숙박·음식점업, 정보통신업 등 일부 업종 외엔 대체로 청년이 귀해진 것은 대동소이하다. 그 많던 청년은 대체 어디로 갔을까.

청년들이 사라지는 이유는 다양하다. 직장 생활에서의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정말 좋아하는 일을 찾기 위해, 자신이 진정으로 나아갈 길을 모색하기 위해 청년들은 '실종'을 자처했다. 희망을 갖고 버티기엔 처우가 열악하고 금전적 보상이 크지 않아, 미래를 그리기 어렵다는 점도 한목소리로 말한다. 그나마 각 분야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청년들조차 "이해한다"는 반응이다.

청년을 찾아보기 힘들어진 산업현장에선 걱정이 가득하다. 단순히 일할 사람이 없어서만의 문제는 아니다. 청년은 곧 미래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산업은 어느새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불안감이 날이 갈수록 커진다. 창간 78주년을 맞은 경인일보는 앞으로의 100년을 준비하면서 경기·인천지역의 밝은 내일을 위해 지금의 청년실종사태를 진단했다. → 관련기사 6~8면
'그냥 쉬었다'는 청년들은 어떤 사연을 품고 있을까. 쉬는 20·30대 청년들이 늘어난다는 소식은 이제 더는 놀랍지 않다. 대학을 졸업하거나 첫 직장을 퇴직해 경제능력도 충분한 이들이다.

'쉬었음'이라는 짧은 답변에 대한 여러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들을 쉬게 만드는 배경과 사회의 책임은 무엇일지, 청년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회복하기 위해 쉼
김예린(가명·26)씨의 지난 1년8개월은 회복기였다. 주기적으로 정형외과와 정신과 진료를 다니고 있고, 깊은 무기력에 빠져 첫 두 달은 아무와도 교류하지 않고 집에서만 지냈다. 상태는 조금씩 나아졌지만, 3년여 전 졸업 직후 첫 직장을 얻기 전의 의욕과 흥미를 아직 되찾지는 못하고 있다.

첫 직장생활에서 쌓인 스트레스가 문제였다. 무급 실습기간 3개월여 동안 업무량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야근까지 나서며 채용 경쟁을 뚫고자 했던 예린씨다. 그렇게 정직원이 되면 만족할 줄 알았지만, 반전은 없었다. 이어지는 5개월 인턴 기간은 기본급의 70~80%만 지급돼 최저임금에도 밑돌았다. 생활비 유지는커녕 여전히 용돈을 받으면서 출퇴근을 이어갔다.

정직원 됐지만 수개월 최저임금 아래
불편 개선 요구이후 조직 시선 달라져

 

결국 터졌다. 허리통증으로 불편한 의자를 교체해 달라는 요구가 화근이었다. 매주 치료비를 내면서 다니는데도 '원래 의자 다 그렇다', '방석이나 깔아보라'는 반응이었다. 계속 교체를 요구하자 예린씨를 보는 조직의 시선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는 "인턴이 조직에서 당연히 감수할 것들이 있겠지만, 돈을 버려가면서 겪는 이 경험이 향후 어떤 의미로 남을지 회의감이 들었다"고 했다.

지난해 초 퇴사한 예린씨는 현재까지 회복에 전념하고 있다. 구직활동은 없었다. 그는 "한동안 신기할 정도로 아무런 의욕도 없는 상태로 지내다가, 최근 운동이나 '덕질' 같은 취미를 만들면서 차츰 회복하고 있다"면서 "다만 앞으로 직장은 내 생활을 지킬 수 있느냐가 최우선 기준이 될 것"이라고 했다.

흥미를 찾아 쉼
강서진(가명·25)씨의 지난 1년은 좋아했던 것을 기억해내는 과정이었다. 2019년 하반기, 4학년 마지막 학기를 다니던 서진씨는 이듬해를 통으로 해외 워킹홀리데이와 일본어 자격증 공부 등으로 보내려 계획하고 있었다. 그때 코로나가 퍼지기 시작했다. 모든 사회가 혼란에 빠졌고, 계획은 모조리 무산됐다. 대체할 다른 방법도 뚜렷하게 보이지 않았다.

곧바로 쫓기듯 취업 길로 나섰다. 공백기는 곧 뒤처짐이라는 판단에서다. 다행히 늦지 않게 한 방송사 제작팀에 자리를 잡았고, 일도 잘 맞아 나쁘지 않았다. 유일한 문제는 역시 사람이었다. 2년여 동안 부장급 상사들의 과중한 업무지시는 백번 이해해 왔지만, "아가씨" 소리를 들으며 다닐 이유는 없다고 판단했다.

과중 업무 견뎠지만 "아가씨" 소리에
퇴사 결심… 자기개발하며 적성 탐구

 

이미 비슷한 이유로 동기 2명이 나간 상태에서 서진씨는 결국 다음 순번을 자처했다. 현재 쉬는 시기에 대해 그는 "대학생과 취준생 시절과 달리 조바심은 없고, 마음이 아주 편하다"고 했다. 모았던 돈과 알바를 병행하며 밀렸던 여행과 하고 싶었던 자기계발 공부를 맘껏 누리고 있다.

서진씨는 "내가 좋아했던 게 뭔지 찾아가는 과정인 것 같고, 직무도 완전히 다른 쪽으로 생각 중"이라며 "앞으로도 이런 좋은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직장을 찾을 것 같다"고 했다.

방향을 찾아 쉼
이지호(가명·27)씨의 1년은 잠시 참는 시기였다. 첫 대학생활이 만족스럽지 못했던 그는 편입을 준비하면서 전공보다는 소위 '이름값'을 우선순위로 두 번째 대학을 결정했다. 그렇게 사범대학에 편입하게 됐는데, 교직은 지호씨 예상보다 자신과 안 맞는 듯했다.

지호씨는 편입 첫 학기를 마치고 막연히 1년 동안 휴학했다. 쉬면서 다른 방향도 고민해 봤으나, 이미 사회에 진출할 나이가 다가오고 있었다. 결국 교직으로 다잡은 그는 2년 전부터 임용고시 준비를 시작했다. 지난해 첫 시험 결과는 아쉬웠지만, 올해 1학기 기간제 교사로 지낸 뒤 하반기 두 번째 시험을 담담히 준비하고 있다.

여전히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편입과 휴학, 시험공부 기간을 거치면서 다른 진로를 둘러볼 여유는 없다. 지호씨는 "다른 진로로 바꾼들 최소한의 기준을 충족하며 살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면서 "하루하루 주어진 공부 일정을 소화하면서 잠시 참는 것이고, 다들 당연히 이런 시기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했다.
당연히 쉼이 필요한 청년들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 8월 고용동향에서 경제활동 없이 '그냥 쉬었다'고 응답한 청년(15~29세)은 40만4천명으로 나타났다. 두 달 연속 40만명 이상을 기록했고, 1년 전보다는 2만3천명이 늘었다. 코로나로 잠시 급증했던 20년과 21년을 제외하면 연도별로도 꾸준히 상승하는 추세다. 지난 2월에는 49만7천명으로 2003년 통계가 작성된 이래 가장 높은 수치였다. → 그래프 참조

쉬었다는 응답의 이유로는 '원하는 일자리를 찾기 어려워서'(18.1%)가 '몸이 좋지 않아서'(39.4%) 다음으로 높았다. 다만 전체 연령 대상 응답이기에, 청년층에 한정한다면 '원하는 일자리를 찾기 어려워서'의 비율은 이보다 높을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일자리·일거리가 없어서(7.8%)'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통계청 "그냥 쉬었다" 청년 40만여명
코로나 시기 제외 수년간 꾸준히 상승
첫 사회경험 실망감, 퇴사의 주요 원인
"쉽게 포기 인식, 구조적 문제 개인 탓"

 

취재진이 만난 청년들의 쉬는 이유는 대체로 첫 사회경험에서 겪은 실망감이 주요했다. 입시부터 학점관리, 대외활동까지 겪어온 데 비해 첫 직장에서의 처우나 조직 문화, 비전 등은 감수하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2년째 쉬고 있다는 김모(29)씨는 "직장생활 초반에 당연히 박봉에 부당한 대우를 겪더라도, 회사 전망이나 미래가 있다는 확신이 있으면 참겠는데 (첫 직장은) 그러지 못했다"면서 "조금이라도 젊을 때 여러 경험을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퇴사했다"고 했다.

실제로 '사람인'이 지난해 기업 1천124개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84.7%가 '1년 이내 조기퇴사'한 직원이 있다고 답했다. 기업들은 조기퇴사자가 이전보다 많아지는 이유로 '개인의 만족이 훨씬 중요한 세대라서', '평생직장 개념이 약한 환경에서 자라서', '호불호에 대한 자기표현이 분명해서', '시대의 변화에 조직문화가 못 따라가서', '참을성이 부족해서' 등으로 답했다.

이처럼 청년의 가치관과 조직문화의 간극이 벌어지면서 쉬는 시기는 점점 당연한 것이 되어간다는 게 청년들의 설명이다. 일과 별개로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서다. 서진씨는 "쉬는 동안 주변에 직장을 다니는 친구들이 많이들 부러워했고, 저를 따라 퇴사해 여행이나 취미활동을 같이 한 친구도 있다"고 했다.

박모(26)씨는 "재밌는 점은, 다들 쉬는 시기라고 하면서도 정작 뭔가를 따로 하면서 나름 열심히 살고 있다"면서 "쉰다는 게 아예 계획 없이 무기력에 빠져 쉬는 상태와는 다르게 이해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전문가는 변화한 청년들의 가치관을 탓하는 인식을 경계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연구 교수는 "미래를 꿈꿀만한 일자리가 많지 않다, 차라리 쉬어버리는 게 낫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을 청년들이 무언가를 쉽게 포기하는 성향 탓이라고 진단하는 건 사회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논리"라고 했다.

그러면서 정책적으로 청년 지원을 확대해 마중물이 되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 교수는 "청년 취업 문제는 늘 지적돼 왔지만, 근래 일자리가 양극화되고 노동시장이 경직되는 등의 구조적 문제로 인한 피해를 청년들이 가장 크게 받는 상황"이라며 "정책적 지원 규모를 늘려 청년들이 쉬는 것보다 가치 있게 느끼는 일자리가 확대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김산기자 mountain@kyeongin.com

 

→7면 ([창간 78주년] 청년 실종┃다음 세대가 사라진 산업 현장)

→8면 ([창간 78주년] 청년 실종┃'제도·정책도 관심 밖' 은둔형 외톨이 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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