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사람은 고사하고 한국 사람 보는 게 어려워진지도 꽤 됐어요. 외국인 노동자들이나 충분히 고용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게 저희 바람이죠."
농어촌에서도, 제조업 산업단지에서도, 건설현장에서도 산업분야를 막론하고 청년은 매우 귀한 존재가 됐다. 이는 통계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8년 1분기 대비 올해 1분기 대부분의 산업분야에서 20·30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줄었다.
또래 청년들이 하나 둘 사라지는 동안, 각 분야에서 자리를 지키는 청년들은 "이해한다"는 반응이다. 분야를 막론하고 각 청년들은 "경기가 불황이고 발전 가능성이 크지 않아 중도에 그만 두는 분들이 많다"며 "여러 정책적 지원이 이뤄져도 청년들이 안착하는 게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 "청년의 실종은 곧 산업의 단절"
제조업의 경우 지난 2018년 1분기엔 전체 422만6천개의 일자리 중 20대 이하가 73만7천개, 30대가 122만개를 차지하고 있었다. 5년 만인 올해 1분기 제조업 일자리 수는 427만7천개로 오히려 5만개 이상 일자리가 늘었지만 20대 이하는 63만5천개, 30대는 107만8천개에 그쳤다. 건설업도 사정은 비슷하다. 2018년 1분기 건설업 일자리 수는 171만8천개였는데 20대 이하가 종사하는 일자리는 15만6천개, 30대는 31만2천개였다. → 그래프 참조
개발사업 활성화 등으로 올 1분기 건설업 일자리 수는 189만2천개로 크게 증가했지만 20대 이하의 일자리는 15만7천개로 거의 비슷하고 30대는 26만5천개로 오히려 줄었다. 숙박·음식점업, 정보통신업, 예술·스포츠·여가 관련 서비스업, 전문·과학·기술 서비스업 등 몇개 업종을 제외하면 산업 분야는 달라도 종사자의 고령화 추세는 대동소이하다.
제조·건설업 일자리 늘었지만 청년 급감
"급여 적고 열악 인식… 대졸 채용 포기"
"기술 중요한데… 오지 않으니 단절 걱정"
실제 현장에서 체감하는 청년 구인난은 더 심각하다.
한 전자제품 제조 관련 중소기업 대표는 "청년 구인난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벌써 십수년은 됐다. 우리 회사도 직원 10명이 모두 외국인 노동자다. 국내 대학 졸업생을 뽑는 건 아예 포기했다"며 "단순히 돈을 많이 안 줘서 청년들이 오지 않는 건 아닌 것 같다. '중소 제조업체는 돈 많이 안주고 열악하다'라는 인식이 굳어져버린 것 같다"고 말했다.
안산 반월국가산업단지 내 포장재 제조회사 레코의 김영수 대표는 "사내에 30여명이 근무하고 있는데 30% 가까이는 외국인 노동인력이다. 여기 산단 같은 경우엔 사실 접근성이나 환경, 복지 등이 청년들이 선호할 만 하진 않다. 그렇다 보니 어렵사리 채용한다고 해도 금방 나가곤 한다"고 했다.
비제조업체라고 사정이 다르진 않다. 한 여행사 대표는 "젊은 직원들을 구하는 건 매우 어렵다. 관광과 졸업생들을 채용하고 싶어서 대학교 교수들에게도 물어봤는데 회사에 들어가서 눈치 보면서 힘들게 일하는 것보다 아르바이트 두 개를 하는 게 낫다고 인식한다고 하더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산업 현장에서의 청년 실종은 곧 '단절'을 의미한다는 게 각 분야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한 지역 건설업계 관계자는 "건설현장의 전문 기술 인력은 고령층뿐이다. 산업의 고도화는 현장에서의 여러 전문 기술, 노하우에서 비롯되는데 이를 이어받을 청년층이 현장에 없다는 것은 산업 전반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 오히려 외국인 노동자들이 오랜기간 일하면서 기술을 쌓아가는 실정"이라며 "당장은 외국인 노동인력 수급에도 헉헉대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산업 발전의 측면에서 구조적인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김영수 대표는 "저희 업종뿐 아니라 모든 제조업이 꼭 있어야 할 업종이다. 포장 같은 경우는 온라인 유통이 활성화되면서 그 수요도 커진다. 경쟁력 있는 업종으로 성장해나가는 게 매우 필요한 시점인데도 청년 인력이 많이 유입되지 않고 있어 개인적으로도, 국가 전체적으로도 안타까운 일로 여겨진다"며 "오랜기간 축적된 기술, 노하우가 다음 세대로 이어지면 좋겠는데 인력 조달이 되지 않아 단절되고 회사 혹은 해당 업종을 영위하기가 어려우니 접어야겠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 상황이다. 이곳 산단의 다른 기업 대표들도 단절을 많이 걱정한다"고 밝혔다.
한 금속·가구 제조업체 관계자도 "사업장 직원 중 외국인 비율이 높다. 제조업도 기술이 중요한데 국내 청년들이 업계로 오지 않으니 이를 전수할 수가 없어 기술 단절이 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 "저도 청년이지만, 이 일 말리고 싶어요."
각 영역에서 하나 둘 떠나는 또래들을 지켜보는 청년들의 생각은 어떨까. 건설업체를 운영 중인 김민호(37) 대표는 본인 역시 30대 청년이지만, 몸소 청년 구인난을 겪고 있다.
김 대표는 "제가 본격적으로 건설업에 몸 담은 게 2017년이다. 그 무렵만 하더라도 채용 공고를 올리면 20·30대 또래 친구들이 이력서를 많이 넣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확 힘들어졌다. 두달 전에 채용 공고를 냈는데 아직도 사람을 못 뽑았다. 건설업 일자리 자체는 줄어들지 않았는데 청년들이 건설 일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면서 "2017년과 비교하면 지금 건설업은 분위기 자체가 차이가 크다. 규제, 안전 감독이 심해졌고 자금도 경색됐다. 지금 건설사 대표들이 대부분 중·장년층인데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어하지 않는다. 상황은 힘든데 그만큼 돈을 많이 벌진 못한다. 저도 이렇게 스트레스 받으면서 일할 바엔 다른 일을 하라고 하고 싶다"고 했다.
우연히 선원 일을 경험했다가 회사원보다는 어부가 되는 게 더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했던 김모(28) 씨도 지금은 생각이 좀 다르다.
22세에 시작해 9년차 어부인 그는 "청년들을 위한 여러 귀어 정책이 있어도 일이 고되고 초기 투자 비용이 엄청난 게 큰 장벽이 된다. 호기심에 들어왔다가 빚만 쌓이는 구조"라며 "그나마 젊은 사람이 온다고 해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오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어업 경기도 불황이라 앞으로 종사하려는 사람은 더 없을 것 같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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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 차원의 각종 청년지원정책이 쏟아지고 있지만 정작 청년들에겐 체감도가 낮아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서울 출신이면서도 10대 시절 입시 경쟁을 겪으면서 지속가능한 삶에 대해 고민하다 농업에 뛰어들었다는 정모(28) 씨는 "혈혈단신 청년들이 도시에서 농촌으로 유입될 수가 없는 형국이다. 정부의 정책은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그는 "기반이 없으면 땅값도 못 버는 게 현실이다. 청년 창업농으로 선정되려고 해도 땅이 있어야 하는데 너무 비싸서 토지 매매는 꿈도 못 꾼다"며 "청년들이 농촌에 오지 않는 것은 우리 세대의 특성, 그리고 이 일의 특수성 때문이다. 지금 제 또래 세대는 대체로 개인주의이고 문화생활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농촌에선 이런 게 힘들다. 그리고 농업은 3D 업종인데, 힘들면 돈이라도 많이 벌어야 하지만 자칫 쪽박을 찰 수도 있다. 청년을 비롯해 귀농이 장려되려면 수익 구조부터 바로 잡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20대 후반 A씨와 구직자 천모(28) 씨도 중소기업 미스매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여러 정책에도 불구하고, 왜 중소기업에 청년들이 가려고 하지 않는지 몸소 느낀 이들이다.
"졸업과 동시에 코로나19 확산으로 채용이 대폭 줄어 2년을 백수로 지냈다. 뭐라도 해야할 것 같아서 중소기업에 취직했다"는 A씨는 "처우나 복지가 좋지 않은 편이다. 오후 6시 이후 잔업이 많은데 포괄임금제라 야근을 해도 수당이 안 나온다. 회사가 외진 데 있어서 주변에 인프라가 별로 없는데 저녁때 밥 먹을 식당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그렇다 보니 중도 퇴사자가 많아 회사 내에도 3~4년차 정도되는 직원이 없어 업무를 배우기가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천씨도 "중소기업은 사실 청년들이 일하기가 여러모로 어려운 구조다. 우선 대중교통 인프라가 좋지 않아 자가용 승용차가 있어야 하는데 당장 차를 살 돈이 없는 청년들은 난감하다. 또 중소기업들은 업무에 즉시 투입할 수 있는 경력직을 많이 채용하는데, 청년들은 경력이 없는 경우가 많아 오히려 지원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선 산업 현장에서도 공감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한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 관계자는 "인력난이 심해서 바로 현장에 투입할 사람이 필요한 건 사실이다. 초보자인 청년들을 뽑아서 꾸려나갈 환경이 못 된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받을 수 있는 최저 시급이나 공단 중소기업 임금이 거의 비슷하다 보니 청년들 입장에선 조금 더 편한 아르바이트를 선호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정책은 많은데 이런 문제를 개선할 실질적인 투자는 잘 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강기정·서승택·윤혜경·김동한기자 kanggj@kyeongin.com
→8면 ([창간 78주년] 청년 실종┃'제도·정책도 관심 밖' 은둔형 외톨이 해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