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인수 칼럼

[윤인수 칼럼] 해바라기와 볼라드와 지방자치

입력 2023-10-09 19:19 수정 2024-02-06 15:59
지면 아이콘 지면 2023-10-1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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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수 주필
최근에 김동근 의정부 시장을 만났다. 그날 모임의 좌장이 시장직 할만하냐 물었다. 신나게 일한다고 했다. 두 발로 의정부 시내를 걷다보면 해결하고 바꿀 것 투성인데, 시장이라 해결하고 바꿀 수 있어 신난단다. 쓰레기산을 해바라기 정원으로 바꾸었다. 건설폐기물 26만t이 산처럼 쌓여 도심의 흉물이던 시유지 3만평. 쓰레기를 치운 자리에 국제테니스장 조성 등 시청의 계획이 무성했다. 걷기 마니아인 김동근은 아침 저녁으로 시민들을 만나 의견을 모은 뒤 해바라기 씨를 뿌렸다. 황금빛으로 가득찬 해바라기 정원 3만평, 시민 전체가 즐기기에 족하다.

의정부 시내 도로에 설치된 볼라드를 1천개나 넘게 뽑아버렸다. 날마다 시내를 걷던 김동근에게 시민들, 특히 장애인들의 통행을 방해하는 볼라드가 너무 많았다. 공무원에게 확인하니 예산이 원흉이었다. 이미 설치된 볼라드를 유지할 시예산이 해마다 편성됐다. 예산을 세우고 집행하려면 볼라드는 자기 자리를 지켜야했다. 시민 편의 보다 신성한 예산과 예산집행이다. 뽑으라 했다. 시장이라 해결이 가능했다. 


부활 30년 지방자치, 폐쇄적 권력 카르텔로
시민 배제·브로커 활개에 부정·회의적 시선들


한국 지방자치는 1949년 공포된 지방자치법에 따라 전쟁 중인 1952년 지방의회 선거로 시작했다. 박정희의 군사혁명위원회가 1961년 민심의 분열, 금품선거, 지방행정의 비효율을 명분으로 중단시켰다. 김대중이 1990년 13일 단식으로 30년 만에 부활시킨 지방자치가 1995년 완전체로 시행된 지 또한 30년이 다 됐다. 많은 국민들이 지방자치에 부정적이고 회의적이다. 이유는 놀랍게도 지방자치를 중단시킨 박정희 정권의 명분과 판박이다.

부활 30년 지방자치는 폐쇄적인 권력 카르텔로 추락했다. 소수의 연고 집단이 30년 세월 동안 지방권력 카르텔을 형성해 장벽을 세우고 자치 주역인 시민들의 진입을 차단했다. 그들만의 자치 리그에서 지방권력과 예산을 농단한다. 중앙 정치권력은 지방권력을 집권의 도구로 계열화하고 후원한다. 자치 시민이 배제된 폐쇄적인 자치 구조다.



열악한 재정도 자치의 숨통을 막는다. 자치 예산 대부분이 국고 지원이다. 교부세와 보조금 확보가 자치의 목적이 됐다. 중앙 정치권력은 국고로 자치를 희롱한다. 국회의원들이 예산을 쥐고 단체장의 충성심을 시험하고, 지방의원들을 종으로 부린다. 자치는 정치의 하수인과 마름으로 전락했다. 자치 경계에서 분단된 민심은 반목한다.

권력의 피라미드에 갇힌 자치 제도에서 주민을 위한 자치행정이 발휘될 리 없다. 자치단체 마다 토건 브로커들이 활개친다. 자치단체장들이 감시 없이 행사하는 인허가권을 토건 브로커들이 거래한다. 지난 30년 동안 개발비리로 감옥에 간 단체장과 지방의원들로 교도소 하나는 채우고 남을 테다. 대장동, 백현동은 비리 규모의 정점일 뿐 결코 비리의 끝이 아니다.


김동근 의정부시장 쓰레기산 정원 만드는 등
도시 바꿔… 이런분 계속 만나면 생각 바뀔지도


무보수 명예직이던 지방의원들은 2006년부터 세비 받는 선출직이 됐다. 4천 명에 육박하는 지방의원들이 이젠 5천만원 안팎의 혈세를 받는다. 지난 18년 동안 수 조원의 혈세를 쓴 지방의원들에게 자치의회는 생계가 보장된 권력의 꿀단지다. 지방자치는 권력의 승강기로 변했다. 중앙선거 때마다 신분 상승을 노리는 자치권력들은 자치행정 보다 민심을 사는데 예산을 쓴다.

자치단체 마다 눈부신 자치행정 청사들을 지으면서 폐기물소각장 건설은 다음 단체장과 의회에 미룬다. 비행기 없는 국제공항이 호남이라는 이유만으로 들어섰고, 이번엔 영남 순서라고 국제공항 건설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매표로 당선된 단체장들이 대를 이어 구속되는 자치단체들도 있다. 역사적 맥락과 문화적 배경 없이 이식된 제도는 필연적으로 부작용을 낳는다. 민주주의가 한국 국회와 정치에서 망가졌듯이, 지방자치도 그렇다.

30년 지방자치 결과에 비관적인 사람이다. 신나게 일한다는 김동근 시장이 낯설었다. 해바라기와 볼라드 얘기를 듣다 보니, 두 발로 시민과 소통하는 시장 한 사람이 도시와 시민의 삶을 바꿀 수 있겠다 싶다. 그래도 도시를 망치는 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이 대부분이라는 생각은 여전하다. 김동근 같은 사람 열 명 스무 명 만나면 생각이 바뀔지도 모르겠다.

/윤인수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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