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경기도 내 기초 지자체들이 편성했다가 쓰지 않고 불용 처리하는 '재난재해 예비비'가 시·군별로 많게는 수백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만약에 대비하는" 예산이라 어쩔 도리가 없다는 게 지자체들 입장이지만 남는 예산이 이듬해 다른 일반 사업에도 쓸 수 있는 잉여 자금으로 넘어가, '여유자금 비축용'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4일 행정안전부가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2년도 일반회계에 재난재해 예비비를 편성한 경기도 내 23곳 지자체(미편성 지자체 6곳 등 제외) 중 편성 금액의 10%도 사용하지 않은 지자체가 10곳(성남, 고양, 남양주, 평택, 광명, 이천, 오산, 구리, 포천, 가평)에 달한다.
이는 이듬해 발생할 수 있는 재난재해 관련 각종 피해지원금 등에 투입하기 위해 미리 해당연도 본예산에 편성할 수 있는 예산이다. 편성 상한액이나 관련 세부기준이 없어 각 지자체가 시기와 여건 등을 임의로 고려한 금액만큼 편성한다.
도내 지자체 10곳 10% 미만 사용
"만약 대비" 해명속 악용 우려도
이렇다 보니 편성액이 천차만별인 건 물론 일부 지자체는 700억원 넘는 예산을 세워놓고 1%도 쓰지 않은 채 내년 잉여 자금으로 넘기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기준 광명시는 재난재해 예비비로 773억여원을 편성했으나 7억8천900만여원(약 1%)만 쓰고 나머진 불용 처리했다. 불용 처리되면 다음 해 세입 예산으로 잡혀 이후 추경 절차를 통해 다른 사업 예산으로도 쓸 수 있다.
같은 기간 가평군(51억원 중 8% 사용), 포천시(180억여원 중 9% 〃), 남양주(201억여원 중 약 8% 〃), 평택시(20억여원 중 8% 〃), 이천시(654억여원 중 약 3% 〃), 성남시(250억여원 중 약 2% 〃), 고양시(153억여원 중 2% 〃), 오산시(15억여원 중 1% 〃)도 10% 이하의 예산만 썼다. 구리시는 지난 2021~2022년 각 261억여원, 99억여원을 편성해놓고 한 푼도 사용하지 않았다.
용혜인 의원은 "많은 지자체가 쓰지 않거나 과소 사용하게 될 걸 알면서 재난 예비비를 과다 편성한 뒤 불용된 예비비를 결산상 잉여금으로 잡아 여유자금으로 비축하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의심했다.
이에 한 지자체 예산부서 관계자는 "예비비는 말 그대로 최후 예비 자금이라 관련 기금을 먼저 소진하기도 하고 재난재해 예비비로 지원 안 되는 부분을 일반 예비비로 채우는 경우도 있다"며 "또 열악한 재정 상황 탓에 재난재해 예비비를 편성 못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김준석기자 joonsk@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