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지나온 50년, 앞으로의 100년·(1)] 경기도에서 움튼 K-반도체

입력 2023-10-09 21:45 수정 2024-02-06 15:54
지면 아이콘 지면 2023-10-1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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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준공된 삼성전자 기흥캠퍼스(당시 삼성반도체통신㈜ VLSI 공장) 모습. /삼성전자 제공

1974년 1월. 지금은 한국 경제를 떠받드는 산업이 된 첫 반도체 공장이 경기도 부천시 도당동에 조성된 때다. 삼성반도체의 전신인 한국반도체의 뿌리는 경기도에 내렸다. 부천에서 출발한 반도체 산업은 용인, 화성, 평택, 이천 등 경기도 전역으로 뻗어 나갔다.

세계 반도체 산업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중심엔 단연 경기도가 있다. 국내 첫 반도체 공장 설립 50주년을 앞둔 지금, 경인일보는 경기도가 중심이 된 지난 50년간의 반도체 산업 성장기와 앞으로 다가올 100년을 조명한다. → 편집자 주

1974년 美 군사 기밀 최첨단 기술
이건희 前 회장 부천공장 지분인수
이병철 직접 기흥 부지 헬기 점검
1992년 세계 최초 64M D램 개발


1974년 1월 한국반도체주식회사를 설립한 강기동 박사는 한국 반도체의 아버지로 불린다. 미국 유학과 모토로라 근무 등을 거치며 반도체 부문의 최고 전문가로 거듭난 그는 국내에도 자신이 보유한 선진 반도체 기술을 보급하기 위해 연달아 미국과 한국에 반도체 공장을 설립했다. 국내 공장은 부천시 도당동에 조성됐다. 투자자였던 김규한 켐코 대표가 소유하고 있던 땅이었다.

이전엔 단순히 반도체를 조립하는 회사들만 있었다면, 반도체를 자체 개발해 대량 생산한 회사는 한국반도체가 처음이었다. 당시 강기동 박사가 보유하고 있던 C-MOS 기술은 미국에선 군사 기밀로 분류됐을 정도로 최첨단 제조 기술이었다. 세계를 주름잡는 K-반도체가 경기도 부천시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이 당시 전 세계 경제는 제1차 오일쇼크로 크게 뒤흔들렸다. 한국반도체도 이를 피해가진 못했다. 반도체 제조를 위해 여러 설비를 갖춰야 하는 등 막대한 비용이 필요했지만, 경기 침체로 투자를 받고 자금을 조달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공장이 정식으로 가동되기도 전, 자금난을 겪던 한국반도체에 주목했던 것은 고(故) 이건희 전 삼성전자 회장이었다. 이 전 회장의 지분 인수를 시작으로 삼성에도 반도체 시대가 열렸다.

1989년 출간된 '삼성반도체통신 10년사'에는 당시 삼성의 반도체 산업 도전과 한국반도체 인수에 대해 '1969년 삼성전자(주)의 설립으로 전자산업에 진출한 삼성그룹은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전자공업을 그룹의 주력사업으로 육성키 위한 방향 전환을 모색하게 됐다. (중략) 1973년의 오일쇼크는 당시 대외의존도가 높았던 국내 전자업계에 심각한 타격을 줬는데 원자재 가격의 폭등은 물론, 원자재 구입 자체마저도 힘들어 정상적인 생산 활동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중략) 이에 따라 전자사업을 그룹의 주력사업으로 육성키로 한 삼성으로선 전자공업의 핵심부품인 반도체 산업의 진출이 절대 필요함을 인식하고 극심한 경영난에 허덕이던 한국반도체를 인수했던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이후 한국반도체는 삼성반도체로 간판을 고쳐 달았고, 삼성반도체는 1980년 삼성전자로 흡수된 후 삼성반도체통신이 됐다.

삼성의 일원이 된 이후에도 한국반도체의 부천공장은 이후 한국 반도체 제조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소였다. 1983년 우리나라에선 최초, 전세계에선 세 번째로 만들어진 64K D램의 시제품도 부천공장에서 탄생했다. 당시로선 전세계적으로 6개사만 제조할 수 있었던 최첨단 반도체였다.

이는 그해 2월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의 이른바 '도쿄 선언' 이후 이뤄낸 쾌거였다. 앞서 64K D램을 개발했던 미국, 일본과 10년 이상 벌어져 있던 기술 격차를 4년 정도로 좁힌 것으로 평가받았다.

64K D램 개발 성공을 바탕으로 삼성전자는 계속 국내 반도체 산업의 역사를 써내려갔다. 현재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의 핵심 거점인 기흥캠퍼스 조성도 이 무렵 이뤄졌다. 세계 반도체 산업을 선도할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해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리려면 부천공장만으로는 부족하다는 판단에서였다.

보다 크고, 최첨단 시설과 장비를 갖춘 공장이 필요했다. '도쿄 선언' 실현을 위한 자체 분석 결과, 서울시내에서 1시간 이내에 위치한 66만㎡(20만평) 부지에 24만7천500㎡(7만5천평) 규모의 공장 6개가 필요하다는 결론도 도출됐다.

'삼성반도체통신 10년사'에 따르면 당시 실무진들은 공업용수가 풍부하고 고급 인력 확보를 위해 서울에서 1시간 이내에 위치한 곳, 원자재 수입과 완제품 수출에 편리한 곳, 공사비가 저렴한 곳 등을 염두에 두고 부지를 물색했다.

이병철 회장이 직접 헬리콥터를 타고 후보지를 살펴볼 정도였다. 그 결과 용인 기흥면 농서리 일대가 낙점됐다. 이병철 회장이 직접 진두지휘해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6개월 만에 건설된 기흥공장은 64K D램, 그리고 이듬해인 1984년 256K D램을 개발하는 주요 거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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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삼성전자 기흥캠퍼스(당시 삼성반도체통신 VLSI공장) 준공식에서 발언하는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 /경인일보DB

삼성전자 기흥캠퍼스는 그 이후로도 삼성전자, 그리고 한국반도체가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의 선두주자로 거듭나게 하는 핵심 기지 역할을 했다. 1992년 세계 최초로 64M D램을 개발하면서 삼성전자가 그 해 세계 D램 시장에서 1위를 달성한 게 대표적이다.

이를 토대로 삼성전자는 1993년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 점유율 1위에 올랐다. 그리고 이는 30년째 흔들리지 않고 있다. 전 세계 처음으로 64M D램을 만들면서 써내려가기 시작한 '최초'의 기록 역시 계속 이어지고 있다.

삼성전자 등의 국내 주요 반도체 생산은 그 이후에도 화성 동탄신도시(삼성전자 화성캠퍼스), 평택 고덕국제화계획지구(삼성전자 평택캠퍼스) 등 꾸준히 경기도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반도체 소재·부품·장비기업 등 관련 산업체들 역시 반도체 산업 발전이 집중된 경기 남부권에 밀집하면서 경기도엔 반도체 생태계가 형성됐다. 부천에서 뿌리내려 용인에서 본격화된 경기도의 반도체 생태계는 향후 경기 남부권 일대에 조성될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로 더욱 공고해질 전망이다.

/황성규·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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