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선감학원 추모문화제] 피해자 합창에 목놓은 관객… 가슴 에이는 '소년의 악몽'

7일 '제8회 선감학원 추모문화제' 경기창작센터서 개최
입력 2023-10-09 15:09 수정 2023-10-09 21:33
지면 아이콘 지면 2023-10-10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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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경기창작센터에서 열린 '제8회 선감학원 추모문화제'에서 선감학원 피해자 협의회 합창단이 공연하고 있다. 2023.10.7 /김동한기자 dong@kyeongin.com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 노래에 /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섬집아기')

단조로운 화음에 특별한 기교도 없었지만, 한 음 한 음 정직하게 부르는 선감학원 피해자 협의회 합창단의 노래에 추모객들은 귀를 기울였다. "다 못 찬 굴바구니 머리에 이고 /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 옵니다"라는 구절로 노래가 끝나자 합창단도, 관객도 눈물을 훔쳤다.

동요 속 가사와 달리 가족 없이 선감학원에서 소년 시절을 보낸 피해자들. 그런 피해자들이 받았던 고통과 폭력, 억압을 떠올리며 공감한 추모객들. 노래는 주체와 객체 사이의 벽을 허물고 공감의 싹을 틔우는 매개 역할을 했다.



국가 폭력이 자행됐던 아동 강제 수용소 선감학원의 피해자들을 추모하고 기억하기 위한 '제8회 선감학원 추모문화제'가 지난 7일 경기창작센터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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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경기창작센터에서 열린 '제8회 선감학원 추모문화제' 모습. 선감학원 피해자와 가족, 시민추모객 등 참석자들이 써클댄스를 추고 있다. 2023.10.7 /김동한기자 dong@kyeongin.com

작년 경기도 지원 약속후 첫 행사
위령제 중심서 공연 등 형식 변화

이번 추모 문화제는 '치유와 희망', '인식과 공감'을 주제 의식으로 삼아 ▲선감학원 희생자 위령제 ▲옛 선감길을 따라가는 역사문화탐방 ▲추모문화공연 ▲체험 프로그램으로 구성했다. 경기문화재단과 선감학원아동피해대책협의회가 주최·주관을 맡았다. 선감학원 피해자와 가족, 경기도 및 안산시 관계자, 시민 추모객 등 모두 300여명이 참석했다.

지난 추모 문화제가 위령제 중심으로 진행되면서 비교적 엄숙한 분위기였다면 올해는 공연, 부대행사 등 피해자들이 직접 참여하고 즐기는 형식으로 바뀌면서 활기를 띠었다. 문화제에 참석한 피해자들은 50~60여년 만에 원생 시절 같은 기숙사를 썼던 동창을 만나 추억을 나눴다. 현재는 민간 주택이 된 옛 선감학원 시설들을 둘러보면서 원생 시절을 떠올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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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경기창작센터에서 열린 '제8회 선감학원 추모문화제' 모습. 선감학원아동피해대책협의회과 4.16합창단이 합창 공연을 했다. 2023.10.7 /김동한기자 dong@kyeongin.com

피해자들이 석달 동안 4.16합창단과 연습해 선보인 합창 공연이 행사의 대미를 장식했다. 피해자들은 가족과 시민 추모객들의 손을 잡고 써클댄스를 추기도 했다.

11살 나이로 선감학원에 끌려 갔던 이규문(73) 씨는 "이번 추모 문화제 때 피해자들이 직접 공연을 해보면 좋겠다는 얘기가 나와 합창 공연을 준비했다. 나이가 많아 가사를 외우는데 애를 먹었지만 4.16합창단과 지휘자 선생님께서 많이 도와주셨다"며 "많은 분들이 노래를 들어주고 박수를 쳐줘서 감사했다. 피해자들을 공감해주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 자존감도 올라가는 것 같다"고 소감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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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제8회 선감학원 추모문화제'에서 진행된 옛선감길 역사문화탐방 모습. 2023.10.7 /김동한기자 dong@kyeongin.com

가족과 함께한 참석자 늘어 눈길
"정부 공식사과·특별법 제정" 촉구

이번 추모 문화제와 관련, 피해대책협의회 측은 가족과 함께 참석한 피해자들이 늘어난 점을 가장 큰 변화로 꼽았다. 그동안 피해자들 상당수가 원생 시절 트라우마에 시달리면서 가족에게까지 피해 사실을 숨겨오곤 했다. 이에 피해자 신고 건수도 크게 늘지 않아 진상 규명에 애를 먹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유해 발굴 작업과 경기도 차원의 사과 및 보상이 이뤄지면서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고백할 수 있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형성된 게 변화의 계기가 됐다.

피해자 박영섭(75) 씨와 함께 참석한 아들 박모씨는 "아버지가 엄하고 무서워서 부자간 거의 대화를 하지 않으며 살아왔다"며 "아버지가 선감학원에서 겪은 일들을 지난해에 좀 자세히 알게 됐다. 상담사분께 아버지의 심리와 상태를 들은 이후부터 아버지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고 대화도 많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전국 각지에서 모인 피해자들은 한목소리로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와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전국 모든 피해자에게 지원과 보상이 이뤄지려면 정부 차원의 사과와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재는 경기도 거주 피해자에게만 위로금 지급과 심리 치료·의료서비스 지원 등이 이뤄지고 있다.

김영배 경기도 선감학원아동피해대책협의회장은 "고령의 피해자들이 돌아가시는 상황이다. 하루 빨리 모든 피해자들을 지원하고 유해 발굴 작업이 진행되려면 결국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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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제8회 선감학원 추모문화제'에서 진행된 희생자 위령제 모습. 2023.10.7 /김동한기자 dong@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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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제8회 선감학원 추모문화제'에서 참석자들이 헌화하는 모습. 2023.10.7 /김동한기자 dong@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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