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빈집인가 싶었다. 깨진 창문에 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그 빈틈으로 들여다본 집 안에는 헌 옷가지가 잔뜩 쌓여 있었다.
현관문 앞 낡은 유모차엔 누군가 버린 걸 주워왔을 종이상자, 우산, 신발 등 잡동사니가 놓여 있었다. 지난 13일 오후 2시20분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 한 상가주택. 집 안팎이 쓰레기 더미로 가득했다. 연세가 많은 할머니가 혼자 사는 집이다. 전형적인 '저장 강박' 의심 가구였다.
악취 "다 쓰는 물건" 도움 거부
"관계망 축소·고립에 증상 분출"
인천 의심가구 74곳… 파악 더뎌
옆집 이웃 송인주(60·가명)씨에게 이 할머니에 대해 물어보자 기다렸다는 듯 불만을 쏟아냈다. 그는 할머니 집에 쌓인 쓰레기 더미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쥐와 바퀴벌레가 꼬이고, 코를 찌르는 악취에 시달리고 있다.
송씨가 "보여줄 게 있다"며 자기 집 옥상으로 이끌었다. 거기서 내려다본 할머니네 옥탑방 주변 광경에 입이 쩍 벌어졌다. 냄비, 프라이팬 등 온갖 주방 도구들이 '산더미'를 이루고 있었다. 할머니는 어디선가 주워왔을 이 고철들을 차곡차곡 쌓아 놓았다.
현관문을 두드리자 허리가 휜 할머니가 느린 걸음으로 나왔다. 남편과 별거 후 10여 년 전부터 빈 병이나 파지 등을 모아왔다는 할머니는 "철물점(고물상)에 내다 팔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팔지 못할 것 같은 물건들에 대해선 "색연필 케이스 뚜껑은 예뻐서…, 어린이 피아노 장난감은 소리가 나는 것이 신기해서…"라고 했다.
이름이나 가족 등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이내 유모차를 끌고 또 물건을 주우러 가는 할머니를 따라 나섰다. 10분 정도를 걸어 근처 빌라 쓰레기 수거장에서 무언가 뒤지는 할머니를 이웃 주민들은 익숙한 듯 눈을 흘기며 바라봤다.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전용호 교수는 "저장 강박 의심 가구는 사회적 관계망이 축소되고 고립으로 결핍을 느끼면, 자신만의 방식으로 증상을 분출하는 것"이라며 "저소득층, 노인 가구 등에서 이런 증상들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 표 참조
'쓰레기 집'이란 소문이 동네에 퍼지자 몰래 쓰레기를 갖다 버리는 사람들까지 생겨났다. 송씨는 "여름이면 코를 찌르는 악취가 진동해 고통스럽다"며 "할머니집과 우리집 사이에 난 좁은 통로에 구더기로 뒤덮인 쥐 사체가 떨어지기도 한다"고 하소연했다.
송씨 등 이웃들의 간곡한 부탁에도 할머니는 "다 쓰는 물건"이라며 역정을 내기 일쑤란다. 쓰레기를 치우자는 구청 행정복지센터 사회복지공무원들의 거듭된 설득에도 할머니는 꿈적하지 않았다. 행정복지센터 관계자는 "본인이 완강하게 거부 의사를 밝혀 인근에 사는 형제에게 도움도 요청해 봤지만, 결국 설득하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저장 강박 의심 가구는 최근까지 인천에서 파악된 것만 해도 74가구(남동구 13가구, 중구 4가구, 미추홀구 57가구)에 이른다. 해당 군·구청들이 '저장 강박 의심 가구 지원 조례'를 잇따라 제정하고 있는 이유다. 하지만 집주인의 동의 없인 쓰레기를 치울 방법이 없다. 다른 군·구청에선 이런 가구가 얼마나 되는지 알지도 못한다.
전용호 교수는 "특히 코로나19로 사회적 단절과 고립을 겪은 취약계층이 단기간에 늘었는데 지금은 그 결과들이 나타나는 시기라고 볼 수 있다"며 "1인 가구 증가 등 전반적인 삶의 방식이 개별화되고 있는 만큼 강박을 가지는 가구가 늘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백효은기자, 정선아 수습기자 100@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