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만원의 무제한 대중교통-베를린을 가다
[7만원의 무제한 대중교통-베를린을 가다·(中)] D-티켓 "지속가능해야" 한목소리… 예산은 안갯속
연방-16개주 15억유로씩 분담… 2025년이후 재정 구상은 '아직'
지난 4일 오후 3시(현지 시간) 독일 베를린 중앙역 승강장에 열차가 정차해 있다. 한국의 '서울역' 격인 베를린 중앙역은 고속열차뿐 아니라 수도권을 잇는 광역·간선전철, 시내 지하철, 버스·트램 등 대중교통 노선 집합지다. 2023.10.4 베를린/김명래기자 problema@kyeongin.com |
지난 5월 독일이 전격 시행한 월 49유로(약 7만원)짜리 대중교통 무제한 정기권 '도이칠란트 티켓'(D-티켓)은 국내외에서 주목받으며 일단은 성공을 거뒀다는 평가가 많다.
현재 독일에선 막대한 재원이 필요한 D-티켓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논쟁에 불이 붙었다. 그러나 독일 대중교통 체계를 D-티켓 시행 이전으로 되돌리기엔 시민들이 체감한 파급 효과가 너무 크다.
'지역화법' 제정 광역기구가 운용
운영비 지원으로 단기적 영향 미미
운송업계, 연방정부 재원 확대 촉구
시민 "요금 인상 차단 '49유로 티켓'"
■ 제도 기반은 '튼튼'
파격적 할인 혜택의 D-티켓 시행에 따른 대중교통 운영 회사·기관의 손실보전금은 독일 연방정부와 16개 주정부가 각각 15억유로씩 총 30억유로(약 4조2천696억원)를 해마다 분담하는 구조다.
독일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D-티켓 재원 분담 계획은 올해부터 2025년까지만 수립됐다. 독일은 영향평가 등을 거쳐 2025년 이후 D-티켓을 어떻게 운영할지 정책 방향을 결정할 방침인데, 이와 관련한 토론이 한창이다.
독일 연방의회 상·하원은 지난 4월 대중교통 서비스에 관한 '근거리 대중교통의 지역화에 관한 법'(RegG·지역화법)을 개정해 전국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D-티켓 도입을 법률로 규정했다.
지역화법은 연방정부·주정부 또는 담당 기관에서 재정적 손실을 보상한다고 규정하고, 교통 서비스를 위한 기존 연방정부 '지역화기금'에 D-티켓 예산 15억유로를 투입했다. 지역화기금 내 D-티켓 예산은 각 주정부 규모에 따라 배분했다. → 표 참조
독일은 주정부 간 행정권을 뛰어넘는 광역교통행정기구를 설립해 통합된 대중교통 체계를 운용하고 있다. 베를린은 인근 브란덴부르크주와 묶인 VBB(Verkehrsverbund Berlin-Brandenburg·베를린-브란덴부르크 교통조합)가 있다.
VBB가 베를린과 브란덴부르크 등 수도권 대중교통 운영 회사를 관리·감독하고, 환승요금 체계 등 서비스 계획을 수립한다. 베를린과 브란덴부르크 대중교통 운영 회사·기관은 VBB로부터 운영비를 받기 때문에 단기적으론 요금 수입 감소 영향이 적다.
■ 재정 계획은 '안갯속'
독일 통일기념일인 지난 3일 오전 베를린 중앙역 밖에 있는 트램 정류장에서 베를린 장벽 기념관 방면으로 향하는 트램(M10)이 정차하고 있다. 2023.10.3 베를린/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
2025년 이후 재정 계획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D-티켓 운영에 따른 장기적 수입 감소 우려는 크다. 독일 일부 주정부는 D-티켓 정책을 지속하기 위한 추가 자금 지원 의지를 밝히고 있으나, 연방정부는 아직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VDV(Verband Deutscher Verkehrsunternhmen·독일운송회사협회) 전략·커뮤니케이션 책임자 라스 바그너(Lars Wagner)는 "D-티켓 제도가 어떻게 지속할지 알아야 교통수단이나 인력을 더 확충할지 결정할 수 있다"며 "현재는 1년 단위 단기 계획만 나오고 있는데, 그 계획조차 명확하지 않다"고 말했다.
VDV 등 독일 운송업계는 애초 월 49유로가 아닌 월 69유로(약 9만8천300원)짜리 D-티켓을 제안한 바 있다. 독일 대중교통 운영 회사·기관들은 D-티켓 시행 전 운송 수입 70%, 정부 지원금 30%로 수익 비율을 유지했는데, 이 비율을 계산한 가격이다. D-티켓 도입 이후 운영 기관 수익 비율은 운송 수입 50%, 정부 지원금 50%로 바뀌었다.
VDV 등 운송업계는 지난 13일 'D-티켓의 미래에 관한 공동 성명'을 통해 "독일 총리와 장관들에게 D-티켓의 미래에 대해 강력하고 단결된 결정을 내리도록 요청한다"며 연방정부의 재원 확대를 촉구했다.
■ D-티켓은 "지속돼야"
베를린 전철역에 있는 티켓 판매기. 지난 5월부터 디지털 방식의 대중교통 무제한 정기권 '도이칠란트 티켓'(D-티켓)이 전면 도입되면서 거의 쓰이지 않고 있다. 먹통이 된 판매기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베를린/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
지난 2~6일(현지 시간) 베를린에서 만난 시민 대다수는 연방정부와 주정부가 D-티켓 정책을 유지해야 하며, 티켓 가격을 더 낮춰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D-티켓이란 명칭에 대해서도 부정적이었다.
3년째 베를린에 사는 알렉산더 파니에(Alexander Pannier·30)는 "D-티켓은 '49유로 티켓'으로 불러야 한다"며 "D-티켓이란 이름은 정부가 '우리는 49유로라고 한 적이 없다. 가격을 올릴 수 있다'고 주장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독일이 지향할 정책 방향은 2020년 3월 '대중교통 전면 무료화'를 시행한 룩셈부르크 사례라고 주장하는 베를린 시민도 여럿이었다. D-티켓 도입 취지인 물가 상승으로 인한 가계 부담 완화, 대중교통 이용 증가에 따른 에너지 절약과 기후변화 대응 등 정책 효과가 커지려면 티켓 가격을 낮추는 등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환경단체인 독일환경지원(DUH·Deutsch Umwelthlife) 활동가 한나 하인(Hanna Rhein)은 "연방정부가 교통 부문 예산이나 기후변화 대응 예산을 D-티켓 제도에 더 많이 투입해야 한다"며 "도심 자전거길을 개선하거나 대도시가 아닌 지방의 대중교통망을 촘촘히 만드는 등 대중교통을 타고 싶게 만드는 투자가 있어야 D-티켓이 지속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베를린/김명래·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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