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만원의 무제한 대중교통-베를린을 가다

[7만원의 무제한 대중교통-베를린을 가다·(下)] '동백패스' '행복버스' 그리고 수도권 과제

'첫 주자' 부산 두달새 20만 가입… 취약지역 달리는 버스 필요
입력 2023-10-17 20:41 수정 2024-10-16 19:28
지면 아이콘 지면 2023-10-18 3면

부산동백패스
지난달 18일 부산 연제구의 한 버스정류장. 부산시가 국내에서 처음 도입한 대중교통 통합 할인제 '동백패스'를 홍보하는 포스터가 걸려있다. 2023.9.18 부산/유진주기자 yoopearl@kyeongin.com

서울·인천·경기 등 수도권에서 독일의 월 49유로(약 7만원)짜리 '도이칠란트 티켓'(D-티켓)을 본뜬 대중교통 무제한 정기권 도입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광역시 단위 도시 중 부산시가 지난 8월 국내 첫 대중교통 통합 할인 제도 '동백패스'를 시행했다. 부산시는 동백패스 도입 불과 2개월 만에 대중교통 통행량이 점차 늘어나는 효과를 보고 있다. 수도권 지자체들이 부산시 사례를 면밀하게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다.

도농 복합의 인천시·경기도는 철도는 물론 시내버스조차 제대로 오가지 않는 대중교통 소외 지역이 많다. 수요응답형(DRT·Demand Responsive Transport) 교통수단으로 취약 지역을 보완하는 충남 당진시 '행복버스' 사례를 수도권 통합 정기권에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초과액 최대 4만5천원 동백전 환급
승객 증가땐 재정지원 감소 기대
김해·양산 왕래 적어 '부산만 적용'

당진 수요응답버스 '8년째' 운행
'산골주민의 발' 버스요금과 동일
정기권과 거리먼 인천 강화 '대안'


■ 두 달 만에 20만명 가입 '동백패스'

부산시 동백패스는 부산 내에서 월 4만5천원 이상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그 초과 금액을 최대 4만5천원까지 환급하는 제도다. 동백패스 기능이 있는 후불 체크카드(교통카드)를 쓰면 되고, 환급금은 부산시 전자식 지역화폐 '동백전'으로 들어온다. 대중교통비 할인과 역내 소비 증진을 연계한 게 동백패스 특징이다.



지난달 18일 부산에서 만난 이현경(30)씨는 "매달 6만~7만원을 대중교통비로 지출하는데, 동백패스를 처음 쓴 지난달 1만5천원을 동백전으로 돌려받았다"며 "동백전을 자주 쓰는 사람에겐 더 유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시가 동백패스를 도입한 가장 큰 이유는 대중교통 수송분담률 향상이다. 부산시는 수십 년째 40%대에 머물고 있는 대중교통 수송분담률을 동백패스로 60%대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다. 실제로 동백패스 가입자는 9월 말 기준 20만명을 넘어섰다. 올해 가입 목표는 30만명인데, 2개월 만에 목표치 3분의 2를 달성했다. 부산시가 올해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마련한 동백패스 환급액은 338억원이다.

부산시가 동백패스 시행 전후 대중교통 통행량을 분석한 결과, 지난달 통행 건수는 6천100만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5천800만건보다 5.5% 증가했다.

부산시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인해 대중교통 승객이 대폭 줄어들면서 시내버스 준공영제와 도시철도 등 대중교통 분야에 투입되는 재정지원금이 늘어난 상황"이라며 "시민들이 자가용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환경을 만들어 대중교통 이용객이 증가한다면 재정지원금을 감소하고, 예산 부담이 상쇄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동백패스는 부산시 안에서만 쓸 수 있다는 점에서 광역 단위로 대중교통 환승 체계가 움직이는 수도권 통합 정기권 구상과는 다르다.

부산연구원 이원규 도시환경연구실 선임연구위원은 "부산은 경남 김해·양산과 하나의 생활권으로 엮이긴 하지만, 부산~김해·양산 간 대중교통 왕래는 많지 않은 편"이라며 "도시 내부 통행뿐 아니라 서울 등 외부 통행량이 많은 인천시·경기도의 경우 개별 지자체가 대중교통 할인 정책을 도입하면 혜택이 적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인천 등 수도권 대중교통 할인 정책이 온전한 효과를 보려면 광역 간 협의를 이루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 산골 마을 주민의 발 '행복버스'


충남 당진시는 2015년 전국 처음으로 교통 취약 지역에서 운행하는 수요응답형 대중교통 '행복버스'를 도입했다. 현재 7인승 승합차 3대가 당진 대호지면 전 지역과 정미면 대조리·수당리를 대상으로 운행하고 있다. 이들 지역은 열 가구 안팎이 사는 산골이 많다. 주민 대다수가 고령인 데다 버스정류장이 멀어 시내버스를 타는 데만 1~2시간씩 걸린다고 한다.

행복버스 운행 방식은 단순하다. 행복버스를 이용하고 싶은 주민이 지정된 전화번호로 연락하면 버스 기사에게 연결돼 탑승지로 찾아가고, 인근 시내버스 정류장에 내려주는 방식이다. 행복버스 요금은 시내버스와 동일한 1천600원이다.

운행 8년째인 행복버스는 당진 산골 마을 주민들에게 없어선 안 될 교통수단이 됐다.

지난달 26일 당진 대호지면을 찾아 행복버스를 타고 운행 지역 곳곳을 둘러봤다. 행복버스가 꼬불꼬불하고 좁은 산길을 곡예 운전하듯 지나자 듬성듬성 민가가 보였다. 고령층 7~8가구가 모여 사는 '안말'이란 마을인데, 행복버스가 하루 한 번은 꼭 들르는 동네라고 한다.

이날 동행한 행복버스 기사 김명호씨는 "승객 대다수가 고령이고, 많게는 90세 어르신도 있다"며 "애초 취지는 버스정류장까지 태우는 것이었는데, 지금은 어르신들을 농협, 병원, 면사무소 등 원하는 곳까지 모신다"고 말했다. 또 "마을 어르신이 혈압약을 처방받으러 시내로 나가려면 하루를 꼬박 썼어야 했는데, 이젠 행복버스를 부르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당진시는 수요가 적은 시내버스 노선에 손실보전금을 지원하는 준공영제 성격의 '노선형' 행복버스도 운영하고 있다. 당진시 307개 시내버스 노선 가운데 61개(19.5%) 노선이 해당 방식으로 운영된다. 올해 당진시 행복버스 운영·지원 예산은 9억1천만원이다.

당진시 관계자는 "여객선 운항이 중단된 섬에서 연도교를 건너 다른 섬 선착장으로 이어주는 방식의 행복버스도 있다"며 "농어촌 특성에 맞는 대중교통 운영 방식을 발굴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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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오후 충남 당진시 대호지면 면사무소 인근에서 교통 소외 지역 주민들이 이용하는 '행복버스' 기사 김명호 씨가 승객을 기다리고 있다. 2023.9.26 당진/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 수도권 도입 위해 머리 맞대야

수도권은 서울을 중심으로 철도망과 광역·시내버스 노선이 얽혀 있지만, 2009년 완성된 '통합환승할인제도' 이외엔 광역자치단체마다 대중교통 시스템과 정책 방향이 다르다. 대중교통 무제한 정기권 도입을 위해선 수도권 3개 시도 협의가 우선 과제다.

수도권 3개 시도는 서울시의 월 6만5천원 '기후동행카드' 추진 논의를 위한 실무협의체를 구성했다. 그러나 서울시는 내년부터 우선 시범 사업을 추진한다는 계획이고, 인천시와 경기도는 갑작스럽게 동참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17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경기도 주민이 전국에서 쓴 대중교통비를 일부 환급하는 'the 경기패스' 추진 구상을 밝혔다.

인천시 전체 면적(1천67㎢)의 약 40%를 차지하는 강화군(411㎢) 등 수도권 대중교통 소외 지역은 D-티켓처럼 도심 지역에서 유리한 정기권 혜택을 누리기 어렵다. 대중교통 수요가 적은 지역을 중심으로 행복버스 같은 수요응답형 교통수단을 도입해 통합 정기권을 적용하면 도심과 농어촌 간 형평을 맞출 수 있다.

김진유 경기대학교 도시교통과 교수는 "통합 정기권은 시작할 때부터 수도권 전역에서 시행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수도권의 대중교통 수입과 비용을 통합해 관리하고, 행정적 부분까지 묶는 시스템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부산·당진/박경호·유진주기자, 이영지 수습기자 pkh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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