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와 인천이 풀지 못하는 난제 중의 하나가 바로 '교통'이다. 애초에 서울을 중심으로 경기도와 인천의 교통망이 구성되는 측면이 강한데다, 날이 갈수록 경기도와 인천의 거주 인구가 늘어나면서 교통수요가 증가하는데 근본대책을 세우지 못한 채 땜질식 처방만 계속되면서 이제는 '총체적 난국'이 돼버렸다.
문제는 총체적 난국이 길어지면서 수도권 지역 간 갈등만 커지고 있다는 점. 그중에서도 가장 큰 갈등요인은 '지하철'. 워낙 정책 수요가 크니, 정치권에선 선거 때마다 단골 메뉴처럼 지하철 공약을 내세우지만 선거가 끝나면 모르쇠로 일관하기 일쑤다. 기대로 잔뜩 부풀었던 지역민들의 허탈감만 커졌고 이런 현상이 심화되면서 이제는 그 화살이 서로를 향하고 있다. 지하철역을 내가 사는 동네로, 우리 집 앞에 끌어와야 한다며 서로 목소리를 높이는데, '동족상잔'같은 비극이 옆동네, 같은 동네에서도 왕왕 벌어지는 게 경기도·인천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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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지역의 열차 역사는 일제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수도 서울 근처에 있는 덕(?)에 아주 일찍부터 열차가 도입됐다. 일제강점기에 경인선을 필두로 안양·수원·오산·평택 등을 오가는 경부선이 오갔다. 의정부와 동두천, 연천 등을 오가는 경원선도 경기북부를 지나갔고, 구리·양평 등 경기 동부에는 중앙선을 타면 오갈 수 있었다. 안성선도 있었는데, 충청남도 천안에서 안성까지 운행하는 열차였다.
수인선과 수여선의 협궤열차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이들 열차의 목적은 오로지 '일제의 수탈'이었다. 쌀, 소금을 비롯해 각종 자원을 일본으로 가져가기 위해 대량 수송이 필요한 열차가 필요했기 때문에 열차들이 운행됐다.
특히 지금은 사라졌지만, 당시 수원과 여주를 오가는 수여선은 용인과 이천, 여주의 질 좋은 농산물을 수원으로 옮겨 일본으로 수송해갔고, 폐선된 후 다시 재개된 수인선의 경우 소래포구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수송하려는 목적으로 부설돼 일제강점기의 아픔으로 기억된다.
열차 이후 경기도와 인천에 들어온 것은 전동차다. 주로 서울 지하철이 동서남북으로 뻗어 나가면서 덩달아 '전철시대'를 맞았다. 1974년 8월 15일에 지하철 1호선이 개통하면서 서울에서 인천, 서울에서 수원 사이를 오갈 수 있게 된 것이 그 시초다.
이후 서울 지하철 3호선이 서울 강남구에서 고양시까지 이어지고, 4호선은 서울 노원구 당고개부터 남태령, 과천, 안산까지 이어졌다. 또 7호선은 서울 온수역에서 의정부시까지 이어져 경전철과도 연결된다.
8호선은 서울에서 성남시를 관통해 분당선으로 이어지는데, 이중 한 갈래는 용인 경전철로도 연결된다. 분당선은 2014년엔 수원시청을 거쳐 수원역으로도 연결됐고 서울 왕십리까지도 이어진다.
올해 가장 많은 주목을 받는 9호선은 김포공항과 서울을 잇고 인천공항철도와도 이어져 수도권 교통의 확장성을 보여줬다.
분명, 경인지역 교통망은 더 빠르고 촘촘하게,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서울의 관점에서, 수혜적 시선에서 어린아이 젖 물리듯 교통 정책이 펼쳐지는 것도 사실이다.
/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