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촬영 범죄를 어떻게 조심하라는 거죠?"
인천 남동구 로데오 거리에 설치된 불법촬영 경고 '싸인블록'(Sign block·바닥 표지블록) 문구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천남동경찰서 설치 싸인블록
'불법촬영 금지' 아닌 주의 메시지
"범죄 책임 피해자에 떠넘기나"
로데오 거리 일대 버스정류장 7곳에 설치된 싸인블록에는 '불법촬영 주의, 불법촬영이 잦은 곳입니다!'라고 쓰여있다. 불법촬영 범죄가 마치 피해자의 부주의로 생기는 것처럼 비쳐질 수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제기되고 있다. '불법촬영 금지' 아닌 주의 메시지
"범죄 책임 피해자에 떠넘기나"
이 싸인블록은 인천남동경찰서가 지난 2021년 불법촬영 범죄 예방 등을 위해 설치한 것이다. 싸인블록은 바닥에 설치해 보행자 등에게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블록이다.
시민들은 이 문구가 불법촬영 범죄를 예방하는 데에 효과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불법촬영은 범행 순간에도 피해자가 인지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불법촬영이 잦으니 주의하라'는 내용은 범죄 책임이 피해자에게 있다고 여겨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싸인블록이 설치된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김성하(36)씨는 "불법촬영은 당사자 동의 없이 몰래 찍는 것이라서 내가 당했는지 알 수 없는데 어떻게 조심하라는 건지 모르겠다"고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배준영(24)씨도 "가해자에게 범죄를 저지르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 같다"며 "불법촬영이 잦아 단속을 강화했다는 내용도 아니고 단순히 조심하라는 말은 오히려 불안감을 준다"고 했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해당 싸인블록을 두고 '불법촬영을 조심하라는 것이 아니라 찍지 말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불법촬영이 피해자가 조심해야 하는 일인가' 등 비판하는 글이 올라오고 있다.
하지말라 경고하거나 불법성 강조해야 효과적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불법촬영을 조심하라는 문구는 자칫 피해자들에게 불법촬영 범죄의 책임이 있다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며 "불법촬영을 하지 말라고 경고하거나 범죄의 불법성을 강조하는 등의 내용을 담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부적절한 문구를 문제 삼는 목소리가 잇따르자 싸인블록을 설치한 경찰은 문구 수정을 검토하고 있다. 남동서 관계자는 "해당 문구에 대한 비판을 인지하고 있다"며 "내년에 싸인블록을 개선할 수 있도록 남동구청과 적극적으로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정선아기자 sun@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