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으로 불쑥 들어온 한 남성의 무차별 폭행에 "도와달라"고 절규하던 30대 여성 점주에게 인천경찰청 112 치안종합상황실은 "주소가 어떻게 되느냐"고 수차례 반복해 물었다. 경찰이 제대로 출동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에 점주는 폭행을 당하면서도 전화를 끊고 다시 편의점 본사 콜센터에 도움을 요청했다.
현장에 출동해 가해 남성을 체포한 경찰은 조사를 마친 후 당일 밤 그를 풀어줬다. 여성 점주는 그가 다시 찾아올까 봐 불안에 떨며 그날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찰은 사건이 발생한 지 1주일 만에야 피해자 안전조치용 스마트워치를 제공했다.
본사 콜센터 연락해 도움 요청
가해자 '조사 당일 밤' 귀가 조치
폭행 일주일지나 스마트워치 제공
인천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여성 A씨가 지난달 23일 오후 7시27분께 일면식도 없는 20대 남성 B씨에게 일방적으로 폭행을 당했다. A씨의 112 신고 당시 경찰의 초동 대처와 사건 이후 피해자 보호 조치 등이 부적절했던 정황이 경인일보 취재 결과 드러났다.
A씨는 "구타를 당하던 중에 112에 전화를 걸어 '묻지마 폭행을 당하고 있다'고 거듭 외쳤지만, 경찰은 반복해서 정확한 주소를 말하라고 요구했다"고 토로했다. 폭행을 당하는 긴박한 상황이어서 더는 대화를 이어가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는 A씨는 1분34초 동안 이어진 전화를 끊고 간신히 편의점 본사 콜센터에 연락해 도움을 요청했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폭행 혐의로 긴급 체포한 B씨를 조사한 후 당일 밤 귀가 조치했다. 건장한 체격의 남성이 혼자 일하던 여성을 상대로 벌인 '묻지마 폭행' 사건인 데도 경찰은 "B씨가 범행 사실을 모두 인정하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였다"는 이유로 풀어줬다.
머리와 목 부분 등을 다친 A씨는 치료와 심리적 안정을 위해 일주일 동안 편의점 문을 닫았다. 이보다 풀려난 B씨가 찾아와 해코지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더 컸다. 영업을 재개한 지 일주일 만인 지난달 31일 B씨의 어머니가 편의점에 있는 A씨를 찾아왔다. 우려했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A씨는 "(B씨 어머니는) 아들이 정신질환이 있다며 사과하고 싶다고 하면서도, '나도 신고할 것이냐'고 위협적으로 말해 두려웠다"며 치를 떨었다.
가해자 母 찾아와 위협적 언사
"신고때부터 경찰 신뢰 무너져"
A씨를 보호하기 위해 경찰이 한 일은 '안전조치용 스마트워치'를 제공한 것이 전부다. A씨는 B씨 어머니가 찾아오기 하루 전이자, 폭행을 당한 지 1주일 만에 경찰로부터 이 장비를 받았다. 스마트워치는 신고 버튼을 누르면 즉시 경찰에 위치 정보가 전달된다. 그럼에도 A씨는 스마트워치 대신 사설 보안업체의 휴대용 비상신고 버튼을 구매해 사용하기로 했다.
A씨는 "뒤늦게 제공한 스마트워치마저도 경찰은 한 달 뒤에 반납하라고 하고 오작동이 생길 수 있다는 이야기도 했다"며 "신고 과정에서부터 경찰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찰 입장을 들어봤다. A씨의 신고 당시 주소를 반복해 물은 이유에 대해 인천경찰청 관계자는 "피해자의 신고가 있기 전에 비슷한 장소에서 폭행 신고가 있었고, 같은 사건인지 확인되지 않은 상태여서 정확한 출동을 위해 주소를 물은 것"이라며 "신고 접수 5분여 만에 현장에 도착한 것으로 확인했다"고 해명했다.
해당 사건을 담당한 인천서부경찰서 관계자는 "피해자가 일주일간 편의점 영업을 중단해 당장 스마트워치가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했다"며 "통상 피해자가 요청해야 스마트워치를 제공하지만, A씨가 불안감을 느껴 먼저 경찰에서 스마트워치를 제공했다. 피해자가 원하면 이용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운·정선아기자 sun@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