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피해자를 돕는 사람들·(1)] 특별법 개정안 입법 추진 김태근 변호사


피해자 극단적선택 잇따르던 시점

언론 통해 "당신 책임 아니다" 설파


피해대책위 만나 심각성 깨달았지만

현행법은 뾰족한 수 없어 개정 필요

7개월 이어진 재판, 법적증언 도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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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융평' 사무실에서 만난 김태근 변호사(세입자114 운영위원장)가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 필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2023.11.10 /변민철기자 bmc0502@kyeongin.com

올해 1월 김태근(48) 변호사의 서울 서초구 사무실로 한 손님이 찾아왔다.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안상미(45)씨다. 그는 전세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지 등 법률적 구제 방안을 묻기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김 변호사를 찾았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김 변호사는 미추홀구 전세사기 사건의 자세한 내막을 알지 못했다. 김 변호사는 "지난해 11월 미추홀구에서 전세사기사건이 발생했다는 기사를 접했다"면서도 "피해자를 직접 만나기 전까지 상황이 이렇게까지 심각한지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전세사기 피해 가구는 곧 경매가 시작될 위기였고, 가구 상당수가 소액임차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최우선변제금'조차 받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안씨와 2시간가량 면담한 뒤 그가 내린 결론은 "현행법으로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였다.

그래서 김 변호사는 피해자들과 함께 구제 법안을 만들기 위한 작업에 돌입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과 시민·사회단체가 구성한 '세입자 114'의 운영위원장인 김 변호사는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머리를 감싸 쥐었다. 상황이 정말 심각했다"며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생각해 곧바로 의원들과 논의해 국회 토론회 등을 열고 입법을 추진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던 중 2월28일 미추홀구 한 빌라에서 전세사기 피해자인 30대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김 변호사는 첫 번째 사망자가 나온 후 사건에 정신없이 빨려들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김 변호사는 방송에 자주 등장했다. 수백에서 수천여 명에 달하는 피해자를 일일이 만날 수 없어 언론의 힘을 빌리기로 한 것이다.

김 변호사는 "피해자들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기 위해 방송에 나갔다"며 "'이겨낼 수 있다'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라고 간절히 외쳤던 것 같다"고 했다.

그의 간절한 외침에도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잇따라 세상을 등졌다. 희생자가 여럿 생기고 나서야 정부와 국회는 대책 마련에 고삐를 당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구제 방안(우선매수권 행사, LH 공공매입 임대, 경매유예 신청 등)을 담은 이른바 '전세사기 특별법'(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 안정에 관한 특별법)이 5월 탄생했다.

그러나 김 변호사와 피해자들은 현행 전세사기 특별법으로는 구제 대책에 한계가 있다며 보완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특히 김 변호사는 ▲최우선변제를 위한 소액임차인 기준 시점 변경 ▲신탁사기 구제 방안 ▲아파트 외 다가구, 원룸 전세사기 피해 대책 ▲피해 주택 단전·단수 등 관리 문제 ▲외국인 피해자 구제 방안 등 최소 9가지 대책이 개정안에 담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 변호사는 미추홀구 전세사기 주범인 속칭 '건축왕' 남모(61)씨 재판에서 피해 세입자들의 법정 증언 등 재판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이 재판은 지난 4월 이후 150여 명의 피해자가 증인으로 출석하는 등 7개월 넘게 이어지고 있다.

현재 국회와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 입법을 추진 중인 김 변호사는 "전세사기의 본질은 자산 양극화 시대가 맞이한 대한민국 주거 불안의 현실"이라면서 "전세사기 피해자들에겐 특별법이 일몰되기 전인 앞으로의 1~2년이 가장 중요하다. 정부와 지자체가 어떤 대책을 마련하고, 이들에게 어떤 도움을 줘야 할지 깊이 있게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변민철기자 bmc0502@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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