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위기 '저어새'와 공존 꿈꾸는 동아시아

[멸종위기 '저어새'와 공존 꿈꾸는 동아시아·(上)] 대만 타이난 어민들이 내어준 '생태 친화 서식지'

휴지기 양식장, 휴식처로… '태양광 발전'에 면적 줄어든다
입력 2023-11-20 20:43 수정 2024-02-07 17:03
지면 아이콘 지면 2023-11-21 3면
저어새들을 위한 생태친화적 서식지로 지정된 대만 타이난의 한 양식장에 철새들이 찾아와 먹이잡이를 하고 있다. /김희연기자 khy@kyeongin.com

조업 끝난뒤 물 말리지 않고 남겨
겨울철 저어새 먹이 공급처 역할
적은 인센티브에도 참여자 늘어

신재생에너지 확대에 곳곳 패널
"일정 범위내 서식지 보존 노력"

11월1일 찾은 대만 타이난(台南)시. 저어새를 관찰하기 위해 30분 정도를 차로 달리는 동안 도로 양옆에 크고 작은 물웅덩이가 계속 보였다. 어떤 곳은 흙을 쌓아 올려 네모나게 구획을 나눠놓기도 했는데, 맑은 물에 잠긴 논의 모습 같기도 했다. 간혹 물 없이 바닥이 보이는 구역이 있어 살펴보니, 예상보다 깊지 않아 저수지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차에 타고 있던 대만야생조류학회(TWBF) 필립 쿠오 상임이사에게 물어봤다. 이는 대만 전통 방식의 '물양식장'이었다. 타이난을 포함한 대만 남부지역은 늦어도 매년 11월 중순에는 양식이 끝나는데, 물이 없는 곳은 고기잡이를 모두 마친 양식장이다.



물이 남아있는 곳은 아직 양식 중이거나, 저어새들을 위해 물을 말리지 않고 남겨둔 양식장이라고 했다.

■ 대만 정부, 양식장 내주는 어민에 '인센티브'


'저어새들을 위한 양식장이라니…'. 이는 대만 전통 방식을 따르는 양식장이라서 가능했다. 이곳 어부들은 '사람과 자연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특별한 양식문화'를 지향한다. 양식장 주변에 별다른 차단막이나 장비를 설치하지 않고, 마치 호수에 물고기를 키우듯 양식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저어새들이 날아와 먹이를 찾기 시작했고, 주민들은 저어새들의 겨울나기에 양식장이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대만 정부는 겨울에도 양식장의 물을 말리지 않고 저어새들의 휴식처이자 먹이터로 활용하는 아이디어를 냈다. 대만에서는 이를 '생태 친화적 서식지'라고 부른다. 저어새 서식지 조성에 동참하는 어민은 타이장 국립공원으로부터 '인센티브'를 받는다.

타이장 국립공원은 2009년 대만 정부가 타이난에 개관한 대표 생태공원으로, 저어새들이 타이난에 많이 날아온다는 사실이 공원 조성에 큰 계기가 됐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대만을 찾은 저어새는 4천228마리인데, 이 중 절반 이상인 2천247마리(53.1%)가 타이난에 머물렀다고 쿠오 이사는 설명했다.

생태 친화적 서식지는 저어새가 쉬면서 먹이잡이를 할 수 있게 겨울 동안 수위를 20~30㎝로 유지하고, 그물을 치워 어류의 출입을 자유롭게 해야 한다. 양식장에 들어온 작은 물고기와 새우 등을 잡지 말아야 하고, 양식장을 관리하려고 화학약품을 써도 안 된다.

이 조건을 모두 지키고 조류 모니터링에 협조하면 양식장 한곳당 5천 대만달러를 받는다. 한국 돈으로 20만원 정도라 어민들에게 큰 금액은 아니지만, 저어새를 위해 양식장을 선뜻 내어준다고 한다.

2020년 이 사업을 시작할 때는 어민 3명만 참여했는데, 그 수가 점차 늘어 지난해에는 신청자 34명 중 조건을 충족한 28명이 인센티브를 받았다. 올해도 어민 42명이 생태 친화적 서식지 조성을 신청했다.

올해 고기잡이가 모두 끝나 물을 모두 말린 대만 타이난 지역 양식장의 모습. /김희연기자 khy@kyeongin.com

■ 기후변화 대응 태양광 발전 이슈 등에 서식지 줄어


설명을 듣는 동안 저어새가 있는 장소에 도착했다. 사람의 발길이라고는 없었을 듯한 수풀을 헤치니 큰 저수지가 보였다. 쿠오 이사는 평소 저어새를 관찰하던 자리에 능숙하게 망원경을 설치하고 렌즈를 조절한 뒤, 망원경을 들여다보라고 했다. 렌즈 속에는 눈으로 볼 수 없는 먼 곳에 저어새가 모여 먹이잡이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 일대에 머무는 저어새만 600여 마리라고 한다. 인천을 떠난 저어새가 대만에 도착하기까지는 꼬박 이틀이 걸리는데, 이들에게는 빨간 발찌를 채워놓는다고 해서 수많은 저어새 사이에서도 알아볼 수 있었다.

타이난 지역은 인천과 비교해 겨울철 날씨가 따뜻한 데다, 생태 친화적 서식지 조성 등 저어새 쉼터를 확장하려는 노력을 이어오고 있어 저어새 월동지로 손색이 없다. 하지만 최근 대만 전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기후변화와 산업화 영향을 피할 수는 없었다.

현재 대만 정부는 기후위기에 대응하고자 태양광 발전을 독려하는 등 신재생에너지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저어새를 관찰한 뒤 타이장 국립공원으로 이동하는 길옆에도 양식장이 많았는데, 그 너머에는 이미 태양광 패널 수백 개가 설치된 모습도 함께 보였다.

쿠오 이사는 "원래 이 길도 양옆이 모두 양식장이었는데, 태양광 발전 산업이 급속한 성장을 이루면서 일부 구역에 점차 태양광 패널이 들어서기 시작했다"며 "산업화를 위한 태양광 패널 설치를 아예 막을 수는 없겠지만, 일정 범위까지는 생태 친화적 서식지 보전을 위해 제한하는 방안을 정부에 건의하는 등 저어새들의 공간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타이난/김희연·정선아기자 khy@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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