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피해자를 돕는 사람들·(1)] 피해자에 동행한 사람들
미추홀구 '건축왕'에 보증금 빼앗긴
아파트·빌라 533가구 430여억 달해
특별법 개정안 입법·새거처 등 온힘
지역 공동체 도움 위기속 큰힘 주목
평생 모은 종잣돈으로 마련한 전셋집에서 하루아침에 쫓겨날 처지에 놓인 우리 이웃들. 깨소금 냄새가 나는 신혼집이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이들의 보금자리였고, 은퇴 후 편안한 노년을 보낼 안식처였다.
전세사기를 당할 줄 어찌 꿈에라도 상상이나 했을까. 평온했던 일상의 삶은 송두리째 흔들렸다. 집이 경매에 넘어가는 순간에도 속수무책이었다.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심정이다. 생업도 뒤로한 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거리에 나와 "도와달라"고 간절히 외쳤다.
인천 등 전국 각지에서 대규모 전세사기 피해가 잇따르자 정치권 안팎에선 '사회적 재난'이냐, '사적 영역'이냐는 소모적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정부와 지자체는 뒷짐을 졌었다. 벼랑 끝에 몰린 청년 세입자 일부는 '(전세사기 관련) 정부 대책이 굉장히 실망스럽고 더는 버티기 힘들다' '저의 결정으로 이 문제를 꼭 해결했으면 좋겠다'는 유서를 남기고 끝내 세상을 등지기까지 했다.
인천 미추홀구 일대에서 수백억원대 전세보증금을 가로챈 속칭 '건축왕' 남모(61)씨에게 사기를 당한 세입자들 이야기다. 비극의 시작은 지난해 여름이었다. 인천경찰청 광역수사대는 그해 8월께 미추홀구 일대 부동산 중개업소와 임대업자 주거지 등 10곳을 압수수색하는 등 수사에 나섰고, 12월 남씨 일당을 사기 등의 혐의로 붙잡았다. 피해자들의 외로운 싸움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벌써 계절이 다섯 번이나 바뀌었다.
남씨 일당이 미추홀구 일대 아파트와 빌라 등에서 빼돌린 전세보증금은 현재까지 확인된 것만 430억원(533가구)에 달한다. 검경 수사 상황에 따라 피해 규모는 훨씬 더 늘어날 수 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넋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지난해 겨울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원회'를 꾸렸다. 이들은 기자회견이나 집회를 해본 적도 없고, 고위 공직자나 정치인을 만날 일도 드문 그저 평범한 우리의 이웃들이다.
정작 인천에서도 이들을 향한 지역사회의 시선은 냉담했다. 인천시와 각 군·구가 범시민운동으로 펼치던 재외동포청,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담 개최도시 인천 유치 목소리에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외침은 묻히고 말았다.
정부와 국회가 뒤늦게 마련한 전세사기 특별법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인천시를 상대로 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선 인천시의 전세사기 피해 지원 예산 집행률이 0.88%로 매우 적다며 소극적인 대응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전세사기 피해를 당한 인천시민을 돕기 위한 인천시·미추홀구 등 지자체 차원의 조례 제정은 여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손을 내민 사람들이 있다. 한 변호사는 전세사기 특별법을 보완하는 개정안 입법을 위해 뛰고 있다. 공인중개사사무소를 운영하는 한 이웃 주민은 쫓겨날 처지였던 세입자의 새 거처를 찾아주기도 했다. 한 심리상담사는 상처투성이인 이들의 마음을 보듬고 있다.
지역 공동체는 위기 속에서 큰 힘을 발휘한다. 경인일보는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텨내는 전세사기 피해자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넨 사람들의 이야기에 주목하기로 했다. 인천시민 등 독자들의 관심과 성원을 당부한다. → 관련기사 6면([전세사기 피해자를 돕는 사람들·(1)] 특별법 입법 앞장 선 김태근 변호사)
/변민철·백효은기자 bmc0502@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