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위기 '저어새'와 공존 꿈꾸는 동아시아

[멸종위기 '저어새'와 공존 꿈꾸는 동아시아·(上)] 그들의 천국, 월동지 대만 타이난시를 가다

아기 새의 첫 여정 "겨울 나고 내년 봄 고향 인천 갈게요"
입력 2023-11-20 20:14 수정 2024-10-16 17:31
지면 아이콘 지면 2023-11-21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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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기념물(205-1호)이자 멸종위기 1급 보호조류인 저어새와 올해 5월 태어난 유조들이 인천시 남동구 남동유수지 인공섬에서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전 세계에 4천여 마리밖에 남아 있지 않은 저어새는 겨울에는 제주도, 일본, 대만, 홍콩 등지에서 월동을 하다 매년 봄이 되면 세계 유일의 도심지역 내 번식지인 남동유수지와 강화도를 비롯, 북한 등 서해안 무인도로 다시 찾아와 번식을 한다.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남동유수지 인공섬 등 매년 80% 부화
갯벌 메워 쉴 공간 점차 사라져가고
해양쓰레기 등 생존 위협 증가 우려
10월 홍콩 등서 지낸 뒤 3월께 귀향


혹시 매년 봄과 여름, 드넓은 갯벌에서 먹이잡이를 하는 저어새들을 본 적이 있나요? 숟가락 모양의 검고 납작한 부리를 가진 하얀 새, 그게 바로 저랍니다. 우리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이자 '천연기념물(205-1호)'로 보호를 받고 있대요.

저는 올해 5월 인천 남동유수지 '작은 인공섬'에서 태어났어요. 우리 엄마는 올해 3월 이곳에 와서 알을 낳았고, 엄마가 따뜻하게 품어준 덕분에 두 달 후 제가 알을 깨고 나올 수 있었어요. 참, 매년 아기 저어새의 80%가 인천에서 태어난대요. 덕분에 저는 고향 친구가 아주 많답니다.



인천에서는 좋은 추억이 많아요. 하루는 남동유수지 근처 '저어새생태학습관'이라는 곳에 아이들이 놀러 왔는데, 매년 5월 인천의 환경·시민단체가 준비하는 '저어새 생일파티'가 있는 날이라고 했어요. 멀리서 우리를 바라보며 노래도 불러주는 학생들을 보니 기분이 정말 좋더라고요.

반대로 슬픈 일도 있었어요. 하루는 엄마, 아빠, 친구들과 함께 인천 송도갯벌을 찾았어요. 저와 친구들은 처음 와보는 곳이라 마냥 신이 났었는데, 아빠 말로는 계속해서 갯벌이 좁아지고 있다고 해요.

원래는 엄청나게 넓은 곳이라 마음껏 날면서 물고기도 잡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갯벌을 메워 땅을 만들고 건물이 들어서면서 사람들의 공간이 됐대요. 가뜩이나 남동유수지에 너구리들이 종종 찾아와 무서운데, 저어새들이 편하게 쉴 공간이 점차 사라지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파요.

인천에 추위가 찾아오면서 10월 우리 가족은 다른 무리와 함께 더 따뜻한 곳을 찾아 떠나왔어요. 저는 먼 곳으로 이동하는 게 처음이라 떨렸는데, 엄마와 아빠가 도와준 덕분에 뒤처지지 않을 수 있었답니다.

처음 도착한 곳은 일본 후쿠오카 하카타만이었는데, 한때 인천을 떠난 저어새들이 가장 먼저 찾는 최대 월동지였다고 해요. 하지만 제 눈에 보이는 모습은 좁은 갯벌, 그리고 새로 지은 것처럼 보이는 높은 건물들뿐이었어요. 우리는 다시 다른 곳을 찾아 비행을 시작해야 했죠.

한 바닷가에서 쉬어가던 어느 날, 몇몇 친구가 갑자기 아파하기 시작했어요. 배가 고프다며 바닷가에서 물고기를 주워 먹었는데, 그게 탈이 났나 봐요.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각종 쓰레기가 잔뜩 널브러진 모습이 보였어요.

썩은 냄새도 조금 나는 것 같고, 뾰족한 물체도 섞여 있었어요. 모두 우리가 피해야 하는 해양쓰레기와 낚싯바늘이래요. 이 쓰레기들 때문에 물고기 건강이 나빠진 게 분명해요. 친구들은 다시 일어나지 못했고, 슬프지만 그 모습을 뒤로하고 우리는 다시 비행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어요.

기나긴 여정 끝에 지금 우리 가족은 대만 타이난이라는 곳에 머물고 있어요. 엄마 말로는 이곳도 몇 년 전까지는 주위가 온통 물이었는데, '태양광 패널'이라고 하는 검고 낯선 물체들이 자꾸 생기고 있어서 두렵대요.

또 다른 무리는 중간에 헤어져 홍콩 마이포 습지로 향했는데, 그쪽도 주변에 빌딩들이 들어서고 습지 내 저어새들의 공간이 자꾸 변하고 있나 봐요. 그곳으로 간 친구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걱정이 되네요.

우리 가족은 대만에서 겨울을 보낸 뒤 아마도 내년 3월이면 제가 태어난 인천으로 돌아갈 거예요. 열심히 날갯짓해서 다시 인천을 찾았을 때, 우리 가족과 친구들을 반갑게 맞이해 주실 거죠? → 경로도·표 참조

 

→ 관련기사 3면([멸종위기 '저어새'와 공존 꿈꾸는 동아시아] 대만 타이난 어민들이 내어준 '생태 친화 서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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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난/김희연기자 khy@kyeongin.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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