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내가 추천하는 인천책·(5)] 이재용 평론가 - 이광수 소설 '재생'

입력 2023-11-27 19:02 수정 2023-11-27 19:22
지면 아이콘 지면 2023-11-28 10면

그 시절 인천을 비춰주는 '아픈 손가락'


당시의 문화·풍속 풍부한 묘사
'허영의 시장' 변모한 조선 조망
후반부 지역 모습 드러나 눈길
삶-죽음 억지스런 신파로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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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소설 재생 표지
재생. 이광수 지음. 애플북스 펴냄. 604쪽. 2014년 11월 28일 출간
엄밀하게 말하면 이광수의 '재생'(1926년)은 인천 문학 필독서라고 단언하기 어렵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 인천 문학 관련 서적에서 '재생'은 인천의 미두장을 다룬 소설이라는 정도로 살짝 소개하고 넘어간 적이 많았다.

하지만 1920년대 인천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매번 어물쩍 언급만 하고 넘어가는 것도 한계가 있다. 언젠가는 다뤄야 한다면 '내가 사는 터전 인천을 공부하는 분위기를 조성하자'는 취지로 기획된 이 지면을 활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재생'이 이러한 평가를 받는 이유는 여럿이다. 이광수가 상해 임시정부에서 돌아와 훼절을 의심받는 가운데 썼던 작품이라는 이유가 무엇보다 앞서고, 톨스토이의 '부활'을 상기시키는 거창한 제목을 내걸고 오자키 고요의 '금색야차'의 플롯을 차용한 통속소설을 썼다는 데 다음 이유가 있다.



3·1운동의 가치를 폄훼한 '민족개조론'을 발표하자마자 타락한 조선의 이미지와 숭고한 도덕성을 가진 인물을 대치시켜 독립운동의 방향을 왜곡시켰다는 이유도 덧붙여야 할 것이다.

W여학교의 김순영과 청계천의 무교다리 인근에 사는 신봉구, 두 인물이 '재생'의 주인공이다. 순영과 순영의 오빠 순흥, 신봉구는 동지로서 함께 3·1운동의 투쟁 현장을 누빈 사이다. 순흥과 봉구가 감옥에 간 동안 김순영은 오백만장자인 백윤희의 유혹에 떨어져 순결을 잃고 그와 결혼한다. 감옥에서 나온 봉구는 순영의 변절에 복수를 다짐하고 돈을 벌기 위해 인천의 미두중개소에 신분을 속이고 들어간다.

삼각관계와 복수극으로 치장한 이 통속극에서 주목할 점은 당시의 문화와 풍속을 풍부하게 살렸다는 점이다. 당대의 신흥 부자들이 동대문 인근의 낙산에 집을 사는 경우가 많았고 동래나 원산에 여행을 다녔으며 미두가 흔한 투자 행위였다는 등 역사적으로 확인해볼 만한 요소가 꽤 들어있다.

뿐만 아니라 봉구가 취업한 인천 미두중개소의 풍경이나 사용하는 단어, 1차대전 후 독일이 프랑스에 배상을 거부해 일어난 미두 가격 급변동과 '이백십 일' 같은 특수용어, 투자의 신 반복창 등 풍속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충분히 관심을 가질 만한 단어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튀어나온다.

작품의 후반부에서는 백윤희와 김순영이 월미도호텔의 별장 관해정에 나타나 십만 석을 주문한다. 서쪽으로 바다를 향하고 방 두 개로 이루어진 관해정의 화려한 별장은 1923년 설립된 월미도유원주식회사에서 운영했던 조탕과 여관, 대여식 별장, 식당, 매점 등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인천, 100년의 시간을 걷다' 참조).

조선 부호들의 화려한 삶, 복수에 불타는 옛 투사의 타락한 후일담을 그린 '재생'은 애국계몽의 시대가 끝나고 '허영의 시장'으로 변한 조선을 조명한다. 이는 작품 초반부터 확연한데, 경성 청량리역의 승객들은 '저마다 앞을 다투어 비비고 틀고 떠들고 서로 욕지거리를 하며 지나간다.'

단정하게 기차에 올라 차창을 사이에 두고 눈물겨운 인사를 나누던 '무정'의 시대와 비교하면 그 차이가 현격하다.

독립운동가는 몰락했고 사기꾼은 넘쳐난다. 바다를 건너온 신문물은 조선을 '위압적인 호사의 과시와 기만적인 책략, 이에 따르는 모든 악덕'('인간 불평등 기원론')으로 물들였다.

그렇다면 제목에서 암시한 순영과 봉구의 재생 결말은 어떠한가. 봉구가 취직한 중개점의 주인이 죽는 사건이 일어나고, 봉구는 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로 체포된다.

재판 과정에서 봉구와 순영 모두 회심하지만 작가 이광수는 봉구에게는 삶의 길을, 순영에게는 죽음의 길을 예비함으로써 억지스러운 신파로 밀어 넣는다.

'자아 기능을 형성하는 거울 단계'라는 글에서 프랑스의 정신분석가 자크 라캉은 박애주의자의 공격성을 지적했었다.

이광수의 박애주의는 조선 민중 전체를 비도덕적인 비난으로 몰아세우며 완성되었다. 그가 제시한 '재생'의 길은 희생으로 감당해야 할 몫을 높은 벽으로 세운 후 뛰어넘으라고 요구한다. 다른 이들 모두를 영혼의 죄인으로 만들면서.

'재생'은 비판적 독서를 기반으로 역사적 탐구와 병행해야 할 작품이다. 인천 문학을 공부하려면 한 번은 거쳐야 할 마음 아픈 추천 목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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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문화재단 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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