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이경재 숭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이경재 교수
서울 숭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연구실에서 만난 이경재 교수. 많이 읽고 많이 쓰기로 유명한 그의 연구실에는 책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2023.11.21 /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1976년 인천 부평2동 ‘삼릉’서 태어나

일본 전범기업 이름 ‘미쓰비시’의 한자어

군수공장 제작소 자리하며 지명으로

노동자 집단 거주한 ‘미쓰비시 줄사택’

‘하꼬방’ 초등학교 1학년까지 살았다

‘유튜브’ ‘넷플릭스’ ‘웹툰’처럼 영상·이미지 콘텐츠가 범람하는 시대에도, ‘문학’은 그보다 더 큰 힘을 갖는다고 믿는 문학평론가 이경재 숭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15번째 주인공이다.


일년의 대부분을 읽고 쓰기에 바치는 이경재 교수는 시쳇말로 ‘문학 덕후’로 유명하다. 올해에만 200자 원고지 1천200매 넘는 분량의 글을 썼다고 한다. 소설가라면 한 달에 한 번꼴로 단편소설을 집필한 셈이다. 이 교수가 소개하고 비평하는 ‘요즘 소설들’은 문학이 결코 ‘유튜브’보다 낡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경재 교수와 인터뷰하면서 그가 ‘인천 밖에서 인천을 들여다보는 인천 사람’이란 기획 취지에 딱 들어맞는 사람이란 생각을 굳혔다. 이 교수는 한국 문학의 ‘공간과 장소’를 탐구하는 데 천착해 왔다. 고향 인천 또한 주요 탐구 대상이었는데, 그가 평론가·연구자로서 인천이란 공간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서른살이 다 돼서다.


이 교수는 인천에서 나고 자랐지만, “인천이 한국 문학과 근현대사에서 이토록 중요한 공간인지 한참 후에야 알게 됐다”고 했다. 그는 문학에서 찾은 인천이 “한국적 모던을 대표하는 도시”라며 “나의 비평과 문학에 있어 인천은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라고 강조했다.


이경재 교수는 1976년 4월 인천 북구(현 부평구) 부평2동 ‘삼릉’(三菱·미쓰비시)이라 불리는 동네에서 태어났다.


삼릉은 일본 전범 기업 ‘미쓰비시’의 한자어로, 미쓰비시의 로고인 ‘3개의 마름모(다이아몬드)’를 뜻한다. 1942년 일본군 군수공장 역할을 한 미쓰비시제강 인천제작소가 부평2동 일대에 자리하면서 지명으로 굳었다. 당시 부평은 한반도 최대 군수공장인 일본육군조병창(현 캠프 마켓)을 중심으로 미쓰비시제강 등 조병창의 하청을 맡은 공장들이 집적화한 일종의 군수산업단지였다. 제2차 세계대전(아시아·태평양전쟁)이 심화하면서 부평에서 동인천까지 인천 지역 산업시설 전체가 전쟁에 동원됐다.


이 교수가 초등학교 1학년 때까지 살던 집은 미쓰비시제강의 전신 히로나카상공 부평공장이 1930년대 말 지어 나중에 미쓰비시가 인수한 노동자 집단주택인 이른바 ‘미쓰비시 줄사택’이다. 부평역사박물관이 2016년 펴낸 학술총서 ‘사택마을 부평 삼릉’을 보면, 현재 기록이 남아 있는 1939년 말 히로나카 상공 종업원 1천495명 중 부평공장에 1천88명이 있었다.


하꼬방은 단칸방에 공동 수도 쓰던 집이었죠.
공동 화장실에 빠진 적도 있습니다.
요즘과는 달리 서로의 일도 다 챙기던 동네였어요.

엇갈린 부평 강제노동 현장 미쓰비시 줄사택
인천 부평구 부평2동 ‘삼릉’에 남아 있는 미쓰비시 줄사택. 2023.05.15 /경인일보 DB

미쓰비시제강이 히로나카상공을 인수한 직후인 1942년 7월 부평공장 자산 규모 가운데 직원 사택은 88동, 공원(현장 노동자) 사택은 26동, 합숙소와 공용욕탕은 50동이다. 그 일부가 현재까지 미쓰비시 줄사택으로 남아 있다. 일본 기업에서 건설한 사택 중 보기 드문 한옥사택이다. 이 교수가 살던 1970년대 말에도 이미 미쓰비시 줄사택은 40년 넘은 노후 주택이었다. 그 사이 여러 차례 개축돼 한 지붕에 여러 개 굴뚝이 있는 집이 많았다. 미쓰비시 줄사택 일부는 현재까지도 보존돼 부평구가 국가등록문화재 등록을 추진하고 있다.


“제 또래 친구들에게 줄사택 얘기를 하면 믿질 않을 정도로 오래된 집이었습니다. ‘하꼬방’(판잣집)이라고 부르는 단칸방에 공동 화장실, 공동 수도를 쓰던 도시 서민이 사는 집이었죠. 공동 화장실에 빠진 적도 있습니다. (웃음) 어린 시절엔 골목에서 친구들과 구슬치기, 딱지치기하며 놀던 하루하루 재미있고 나름 풍요로운 공간이었습니다. 요즘과는 달리 이웃이 한 가족처럼 대소사 다 챙겨주던 동네였습니다.”


삼면이 구릉, 마을 앞 경인철도… 섬 같아

당시엔 공장·미군부대·철도가 다인 동네

미군 클럽 드나드는 악단 음악인 살기도

철길 옆 살적엔 화물열차 불빛 벽면에 아른

철로변 아이들 놀이터 인명사고 적잖아

삼릉은 삼면이 구릉이고, 마을 앞에는 경인철도가 지나 경계를 만드는 섬 같은 지역이었다. 지금이야 부평 일대가 도시화 돼 아파트 단지와 빌라로 뒤덮였지만, 당시만 해도 집이 많지 않아 공장, 미군부대, 철도가 더 두드러졌다. 일제강점기 부평 지역 경제 중심이 군수공장들이었다면, 해방 이후 한국전쟁을 거치며 미군기지 중심으로 돌아갔다. 삼릉에는 부평 미군기지 인근 미군 클럽에서 연주하는 한국인 악단 음악인이 많이 살았다.


이 교수는 줄곧 부평에 살았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5학년까지 부평6동 철길 옆 주택에 살았는데, 새벽에 달리는 화물열차 불빛의 그림자가 벽면에 비치곤 했다. 그때 살던 집은 현재 철거됐다고 한다. 부평엔 경인철도를 따라 늘어선 주택이 많았고, 철로변은 아이들 놀이터였다. 그래서 인명 사고도 많았다. 이 교수는 인근 연립주택, 십정동 아파트에서 오랫동안 살다 서울로 이사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삼릉이란 지명의 의미를 성인이 돼서 알았습니다. 그 전까진 제가 살았던 곳을 평면으로만 접했다면, 그 의미를 알게 된 후 입체로서 접하게 된 느낌입니다. 내가 나고 자란 그런 곳이 한국 현대사의 본질적 일이라 할 수 있는 역사가 숨쉬는 공간이라는 걸 깨닫고는 고향이 더 각별하게 느껴집니다.”


삼릉, 지면의 의미를 성인 돼서야 알았어요.
그전까지 평면적으로 알고 있던 고장이라면
이후엔 입체로서 이해하게 된 느낌입니다.

이경재 교수 어린시절
부평 삼릉 미쓰비시 줄사택에 살던 시절 이경재 교수. /이경재 교수 제공

1937년 경기도 김포 통진면 출생 아버지

1938년 일본 교토 태어나 부평 온 어머니

철도청 공무원 근무하시며 인근공터 농사

열무나 배추 수확해 차이나타운서 팔아

황량한 철길에 ‘축축축’ 화물열차 오가고

뱃고동 소리 들리던 인천항 모습 떠올라

분꽃 피는 줄사택과 다르던 아버지 일터

이 교수의 아버지는 1937년 경기도 김포 통진면 출생으로, 통진에서 9대를 이어온 토박이다. 1938년생 어머니는 일본 교토에서 태어난 한국인으로 해방 이후 가족 모두 한국으로 돌아와 부평에 정착했다. 이 교수의 어머니가 김포로 시집가기 전까지 살던 곳도 미쓰비시 사택촌이었다. 1남4녀 중 막내인 이 교수는 큰누나와 18살 차이가 날 정도로 막둥이지만, 부모님은 자녀 모두 대학까지 보내며 차별 없이 길렀다.


아버지는 인천역 근처에 있는 인천 객화차 분소(차량사업소)에서 화물차를 고치는 철도청 공무원이었다. 아버지는 일하는 틈틈이 직장 인근 공터에서 열무나 배추 같은 채소를 심었고, 어머니는 수확한 채소를 인천차이나타운 중국인 식당 등지에 팔았다. 어린 이 교수는 종종 어머니를 따라 나섰다.


“어릴 때 축항(인천항)에 대한 기억은 황량한 철길에 시커먼 석탄이나 시멘트를 잔뜩 실은 화물열차가 축축축 소리를 내면서 왔다갔다 하던 모습입니다. 가끔 멀리서 뱃고동 소리도 들렸고요. 분꽃이나 봉숭아꽃이 피던 평온한 미쓰비시 줄사택 동네와 달리 아버지의 일터는 거대한 기계와 무시무시한 소음이 있었던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이 교수가 인천항과 인천역, 인천차이나타운 일대를 경험할 즈음 소설가 오정희는 그 공간이 등장하는 단편소설 ‘중국인 거리’(1979)를 발표했다.


시를 남북으로 나누며 달리는 철길은 항만의 끝에 이르러서야 잘려졌다. 석탄을 싣고 온 화차는 자칫 바다에 빠뜨릴 듯한 머리를 위태롭게 사리며 깜짝 놀라 멎고 그 서슬에 밑구멍으로 석탄가루를 흘려보냈다.

오정희 ‘중국인 거리’ 중에서

‘민주 세일’ 나와 평론가 길 걷게 된 문학도

이경재 교수는 부평남초, 부평서중을 거쳐 산곡동 세일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문학소년이었다. 대학에서 국문학, 도서관학을 전공한 누나들 영향도 컸다. 집 책꽂이엔 삼성출판사에서 발간한 60권짜리 세계사상전집이나 100권짜리 세계문학전집이 꽃혀 있었다. 집 지하실에 밥상 하나를 두고 글을 써보기도 했다.


고등학교 1학년때 친구 ‘만두’가 보여준 책

88년 출간된 최신소설 읽는 모습에 충격

그날부터 문학상 수상작 줄줄이 열독

“고등학교 1학년 때 만두라는 별명을 가진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이문열의 장편소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1988)를 읽고 있었어요. 그때까지도 나는 기껏해야 김동리의 ‘역마’(1948)나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1936)을 읽었는데, 친구가 나온 지 얼마 안 된 최신 소설을 읽어 충격을 받았죠. 친구한테 그 소설을 빌렸는데, 정말 밤을 새워 읽었습니다. 그때부터 이문열, 이청준, 이문구 소설을 읽기 시작하고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수상 작품집을 읽었습니다.”


이경재 교수 교지
이경재 교수가 고2 때 명지대 주최 문예대회에서 1위를 차지한 단편소설 ‘불꽃 속의 양떼’가 실린 세일고 교지 ‘철마혈’. /이경재 교수 제공

본격적으로 문학을 읽고 쓰기 시작한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명지대학교가 주최한 고등학생 문예대회에 낸 단편소설로 1등을 차지했다. ‘불꽃 속의 양떼’란 제목의 소설인데, 세일고 교지 ‘철마혈’에도 실렸다.


이 교수가 다니던 시절 세일고는 학생들의 학내 민주화 운동이 활발하기로 전국에서 손꼽히는 학교였다. 고등학교 3학년 수학능력시험이 얼마 남지 않은 1993년 11월11일 세일고는 학생들이 농성을 벌이자 사흘간 ‘휴업(휴교)령’을 내렸다. 학생들은 전날 오전 학교 운동장에 모여 학교 측이 학생회장을 임의로 추천해 임명한 것이 무효라면서 학생회칙에 보장된 직선제를 보장하라며 5시간 농성을 벌였는데, 이에 따른 학교 측의 조치였다.


‘경인일보’ 1993년 11월17일자 신문 기사를 보면, 학교 측은 수능시험일인 16일 징계위원회를 열어 농성을 주도한 3학년 학생 2명을 퇴학 조치했고, 이에 반발하는 학생 100여명이 징계 철회를 요구하며 또 다시 연좌농성을 벌였다.


“1990년대 중반에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데모해서 휴교령을 내렸다는 얘길 믿는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것도 수능시험을 앞두고. 당시 학생들 대다수가 복도로 나와 학교에 항의하고 농성에 참여했습니다. ‘민주 세일’이라고, 세일고는 과거부터 폭력 교사 물러나라고 집회를 하는 등 학생운동 전통이 있었어요. 깨어 있는 선생님들의 영향이 컸던 것 같습니다. ”


세일고, 학생회장 임의 임명에 분개 농성

수능시험 당일 징계위 열어 2명 퇴학조치

‘민주 세일’ 폭력에 반대운동 전통 건실

경인일보 기사에도 남은 복도 농성 외침

1989년 7월 ‘전교조 합법 성취 범국민대회’에 참석했던 교사들이 무더기로 경찰에 연행되자 전국 80개 고교 학생들이 농성했는데, 세일고 교사 18명이 연행된 교사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단식 농성을 했다. 같은 해 8월 세일고 전교생 1천500여명은 3일 동안 수업을 거부하며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된 원종찬(현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교사의 복직을 요구하며 연좌 농성을 벌였다. 세일고 학생들은 해직된 원종찬 교사의 집에 찾아가 수업을 받아 당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1990년대 들어서도 세일고의 학생운동 전통은 이어졌다. ‘경인일보’ 1991년 4월19일자 신문 기사를 보면, 세일고 2~3학년 학생 150여명이 학교 복도에서 신입생 교복 착용 폐지, 육성회비 지출 공개, 도서관 자유 열람, 매점 환경 개선 등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이경재 세일고
세일고 시절 이경재(오른쪽) 교수. /이경재 교수 제공

소설가 되고 싶어 서울대 국문학과 입학

조남현 교수 만나 국문학자·비평가 길로

‘학산문학’ 편집위원 맡으며 고향 탐구

이 교수는 1994년 3월 서울대학교 국문학과에 입학했다. 입학 전 면접 시험에서 이 교수는 “소설가가 되기 위해 국문학과를 지망했다”고 말했는데, 면접관으로 참여한 교수가 “소설가가 되려면 막노동판에 가거나 전쟁터에 가서 체험해야지 국문과를 왜 오느냐”고 되물었다고 한다.


“그 교수님 말씀대로 선배들 절반 이상은 교수로, 나머지의 절반쯤은 언론계로, 일반 기업으로 취직했지 소설가나 시인이 되고 싶은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처음엔 방황 아닌 방황을 했죠. 소설가가 되고 싶어 대학에 왔는데, 소설 쓰는 법은 가르치치 않았어요. 그러다 국문학 연구자이면서 문학 평론을 하는 조남현 교수님을 만났습니다.”


한국현대소설 연구를 본격적인 학문의 반열에 올려놓았다는 평가를 받는 조남현 서울대 명예교수는 인천 출신이기도 하다. 이경재 교수는 조남현 교수의 지도로 서울대 대학원에서 현대문학 전공으로 석·박사 과정을 거쳤다. 국문학자 겸 비평가의 길을 걷기로 했다. 이 교수는 “조남현 교수가 없었다면 문학의 세계에서 걸음마조차 시작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할 정도로 조남현 교수가 롤모델이다.


대학원 졸업 후 육군사관학교 교수부 국어과 전임강사로 군복무를 한 이 교수는 전역 직후인 2006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돼 비평가로 등단했다. 인천을 다시 만난 것도 이때다. 조남현 교수 추천으로 인천문인협회가 발간하는 계간지 ‘학산문학’ 편집위원을 맡으면서 고향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등단했다고 다 평론가로 활동하는 게 아니고, 글을 발표할 지면이 있어야 합니다. 등단 후 조남현 교수님이 전화해 중·고등학교 동기인 김윤식 시인이 인천문인협회 회장이라면서 ‘학산문학’을 소개했습니다. 김윤식 시인을 2006년 여름 인천역 인근에서 처음 만났는데, 너무 자애롭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넘치는 분이었어요. 그길로 2012년까지 ‘학산문학’ 편집위원을 맡으며 인천과 문학의 관련성을 탐구하는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제 비평과 문학의 중요한 주제는 작품에 나타난 공간에 대한 탐구입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갖게 된 계기는 ‘학산문학’에서의 경험입니다.”


조남현 이경재
이경재 교수를 문학의 세계로 인도한 조남현(왼쪽) 서울대 명예교수와 함께. /이경재 교수 제공

이 교수는 여러 대학에서 시간 강사로 강의하면서 박사 논문을 준비했고, 2008년 8월 ‘한설야 소설의 서사시학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아주대학교 기초교육대학 강의 전담 교수를 지내다 2011년부터 13년째 숭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09년 10월29~30일 인천아트플랫폼에서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AALA) 문학포럼과 한국문학번역원이 주최한 ‘AALA 문학심포지엄’을 이경재 교수는 잊지 못할 기억으로 꼽는다. 이 교수는 당시 심포지엄 토론자로 참여했다.


“팔레스타인 대표 문인이자 여성 작가인 사하르 칼리파부터 생전의 박완서 선생님까지 전 세계 문인들이 인천에 모여서 백인을 중심으로 한 유럽 중심이 아닌 진정한 세계문학의 방향성을 토론한 자리였습니다. 그 대단한 문인들이 신포동 밤거리에서 같이 소주잔을 기울이며 낭만을 누렸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국제도시 인천에서 열린 ‘AALA 문학심포지엄’은 이듬해 4월 인천문화재단이 ‘제1회 AALA 문학포럼’으로 정식 개최했다. 해마다 열린 AALA 문학포럼은 25개국 120여명의 문학인들이 다녀갔으나, 2013년 행사를 끝으로 다시 열리지 않았다.


한국의 근대를 압축한 도시, 인천

이 교수는 현재 학계와 문단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는 국문학자이자 평론가로 꼽힌다. ‘요즘 소설이 궁금한 당신에게’(2023), ‘한국 베트남 미국의 베트남전 소설 비교’(2022), ‘비평의 아포리아’(2022), ‘이질적인 선율들이 넘치는 세계’(2021)를 비롯해 단독 저서만 19권에 달한다. 그의 주요 연구 주제는 20세기 한국을 대표하는 사회주의 작가 한설야를 필두로 한 진보계열 작가들의 문학적 흐름, 결혼이주여성이나 이주 노동자 등 다문화를 다룬 소설, 문학의 공간성과 장소성이다. 이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 인천이기도 하다.


한국 근대의 특징이 응축된 도시가 인천입니다.
개화의 과정, 식민지 경험, 분단 그리고 전쟁
산업화와 민주화까지…

“인천처럼 한국적 근대의 특징을 응축한 도시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근대를 대표하는 몇 가지 큰 사건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유교적 중화질서 속에 살다가 서구 근대 문명을 향해 우리를 활짝 열어젖히는 개화의 과정, 두 번째는 식민지 경험, 이어진 분단과 전쟁, 산업화 그리고 민주화입니다. 그 모든 일을 정면으로 다 경험한 도시는 대한민국에 인천밖에 없거나 인천만한 곳은 없습니다. 근현대 한국문학을 이해함에 있어 인천을 괄호로 치고 하는 논의는 성립하기 힘듭니다.”


단독 저서만 19권 달하는 왕성한 활동

20세기 사회주의·진보계열 작가 관심

다문화·문학 속 공간성·장소성에 집중

 

‘남생이’ ‘중국인 거리’ ‘괭이부리말 아이들’

어린 아이가 주인공인 소설 많아

인천이 인격적 표상이 된다면 그 모습은 어린이

한국은 준비도 없이 근대문물에 노출된 것

민족적으로 혼종된 공간… 관문·외지인 표현도

이 교수가 본 문학 속 인천에는 개항도시, 실향민, 해안 매립과 산업화, 방현석·정화진 등 일련의 소설에 등장하는 노동자 투쟁과 민주화 운동이 있다. 이어 인천을 다룬 문학의 특징을 논했다.


“현덕의 ‘남생이’(1938), 오정희의 ‘중국인 거리’, 김중미의 ‘괭이부리말 아이들’(2000) 등 어린 아이가 주인공인 소설이 많아요. 인천이란 도시가 하나의 인격적 표상으로 전환됐을 때 그 모습이 어린이라고 봅니다. 한국이란 나라가 별다른 준비도 없이 서양 근대 문물에 그대로 노출돼 버린 거죠. 마치 세상을 살아갈 능력도 힘도 아무것도 없는 어린 아이의 형상으로 나타났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인천은 민족적으로 혼종된 공간으로 그려집니다. 외국으로 나가는 관문으로 그려진다는 특징도 있고, 외지인들의 도시로도 표현됩니다.”


이경재 교수
이경재 교수는 문학에서의 ‘공간과 장소’에 대해 탐구하는 학자이자 비평가다. 그가 문학의 공간성을 탐구하게 된 계기는 고향 인천이다. 2023.11.21/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이 교수는 인천을 다룬 단 한 편의 소설을 꼽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 강경애의 장편소설 ‘인간문제’(1934)를 꼽았다.


“1930년대는 한국 근대 문학이 완성된 시기로 보는데, 이때 최고 걸작으로 염상섭의 ‘삼대’(1931), 채만식의 ‘탁류’(1937), 한설야의 ‘황혼’(1936)을 꼽습니다. 저는 ‘인간문제’가 앞서 나열한 작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은 물론이고 어떤 면에서는 더 뛰어난 면도 있다고 생각해요. 앞선 작품들과 달리 ‘인간문제’는 농촌과 도시를 한데 다 그리고 있고, 여성주의적 문제의식도 있습니다. 인천을 배경으로 펼치는 노동 문제와 계급적 불평등 문제는 21세기인 지금도 우리가 충분히 고민할 문제입니다. 특히 1930년대의 인천의 모습을 ‘인간문제’처럼 정밀하게 그린 소설이 없습니다.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더블린 사람들’(1914)만 있다면 아일랜드 더블린이 화재로 잿더미가 돼도 복원하는 데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인간문제’가 있어 1930년대 인천을 재현하는 게 불가능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인천의 이 새벽만은 노동자의 인천 같다! 각반을 치고 목에 타월을 건 노동자들이 제각기 일터를 찾아가느라 분주하였다. 그리고 타월을 귀밑까지 눌러쓴 부인들은 벤또를 들고 전등불 아래로 희미하게 꼬리를 물고 나타나고 또 나타난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부인들은 정미소에 다니는 부인들이라고 하였다.

강경애 ‘인간문제’ 중에서

최근 이경재 교수는 외국으로 나간, 혹은 외국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 2·3세가 남긴 문학에 관심을 두고 있다. 진보계열 문학, 다문화, 문학의 공간성을 결합한 주제다. 지난해 미국 드라마로 제작돼 인기를 끌기도 한 이민진의 장편소설 ‘파친코’(2017)가 그 예다. 관련해서 글도 많이 읽고, 자료도 모아 둔 상태다. 이를 글로 쓰기만 하면 된다고 앞으로의 계획을 설명했다. 평론가로서 목표보단 국문학자로서 목표가 더 커지고 있기도 하다. 한국 구한말부터 21세기 초까지 다룬 문학사를 써보는 게 학자로서 목표다.


이민진 장편소설 ‘파친코’ 처럼

외국으로 나간 한국인 2·3세 문학 관심

‘넷플릭스’ 인기지만 소설은 중요한 것

 

작품은 사회를 모체로 탄생할 수 밖에

통찰과 올바른 분석 위해 평론은 필요

소설을 읽는 것보다 소설을 원작으로 한 ‘넷플릭스’ 드라마나 영화를 더 많이 보는 시대다. 이 교수는 그럼에도 소설을 읽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왜 소설을 읽어야 하는지는 요즘 제자들이 이 교수에게 자주하는 질문이라고 한다.


“소설은 무언가를 알려줍니다. 거창하게 말하면 인식적 기능이죠. 황석영의 ‘철도원 삼대’(2020)를 통해 일제강점기 인천에서 이뤄졌던 노동자들의 지하 투쟁과 철도사를 알게 됩니다. 오정희의 ‘중국인 거리’를 읽으면 전후 인천항과 인천차이나타운 풍경을 알 수 있습니다. 논문이나 역사책에서 알게 되는 것보다 소설로 알게 되면 훨씬 더 쉽고 재밌겠죠. 그리고 소설은 어떻게 사는 게 올바른 삶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게 합니다. 톨스토이의 ‘부활’(1899)처럼.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 소설은 미적인 쾌감과 감동을 줍니다.”


이 교수는 평론이 더더욱 읽히지 않는 시대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작품 자체가 시대나 사회를 모체로 탄생할 수밖에 없다”며 “그 작품에 대한 올바른 해설과 분석을 하기 위해선 시대나 사회에 대한 통찰로써 평론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 교수는 고향과 다소간 거리를 두고 살면서 조금 늦게나마 자신의 분야에서 고향의 가치를 새로 발견한 사람이다. 이 교수가 인천을 더 새롭고 가치 있게 볼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고 그를 만나며 생각했다.


 


■약력

1976년 4월 인천 부평구 부평2동 출생

1988년 2월 부평남초 졸업

1991년 2월 부평서중 졸업

1994년 2월 세일고 졸업

1998년 2월 서울대 국문학과 졸업

2002년 2월 서울대 국문과 박사과정 수료

2002~2005년 육군사관학교 교수부 전임강사

2006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평론부문 당선

2008년 서울대 국문학과 박사학위 취득

2008~2011년 아주대 기초교육대학 교수

2011년 9월~ 숭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2013년 제14회 젊은평론가상 수상

2017년 미국 UC버클리 동아시아연구소 객원교수

2018년 제29회 김환태평론문학상 수상

■주요 저서

‘단독성의 박물관’(2009), ‘한설야와 이데올로기의 서사학’(2010), ‘한국현대소설의 환상과 욕망’(2010), ‘끝에서 바라본 문학의 미래’(2012), ‘한국 프로문학 연구’(2012), ‘현장에서 바라본 문학의 의미’(2013), ‘여시아독’(2014), ‘다문화 시대의 한국소설 읽기’(2015), ‘문학과 애도’(2016), ‘재현의 현재’(2017), ‘한국 현대문학의 공간과 장소’(2017), ‘촛불과 등대 사이에서 쓰다’(2018), ‘한국 현대 문학의 개인과 공동체’(2018), ‘명작의 공간을 걷다’(2020), ‘이질적인 선율들이 넘치는 세계’(2021), ‘비평의 아포리아’(2022), ‘한국 베트남 미국의 베트남전 소설 비교’(2022), ‘한국 현대문학과 민족의 만화경’(2023), ‘요즘 소설이 궁금한 당신에게’(2023)

■주요 활동

‘학산문학’ ‘아시아’ ‘문학수첩’ ‘자음과 모음’ 편집위원 역임. 현재 ‘문학인’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