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피해자를 돕는 사람들·(7)] 청년 아픔 담아낸 책 발간


빚 돌려막기 고금리 카드론 빌려
매일 12시간근무 고단한 일상 저술
한동훈, 책 언급 "정책 기본 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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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 피해를 입고 저서 '전세지옥'을 쓴 최지수씨가 지난 1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해 자신의 책을 들어보이고 있다. 2023.12.1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평범한 청년이 찬란한 미래를 그리며 계약한 전셋집 '1004호'는 현관문 앞에 붙은 경매통지서 1장에 지옥으로 변했다. '전세지옥' 저자 최지수(32)씨는 충남 천안시에 마련한 전셋집이 경매로 넘어간 2021년 7월부터 올해 10월2일까지 전세사기 피해자로서 보낸 820일의 기록을 책으로 펴냈다.

올해 초 전세사기 피해 회복을 위해 최씨가 밤낮으로 일하며 경찰서, 법원, 시청,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등을 찾아다니는 동안 인천 미추홀구에서는 수백억원대 전세보증금을 가로챈 속칭 '건축왕' 남모(61)씨의 피해자인 청년들이 잇따라 생을 마감했다.

최씨는 "나를 비롯해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겪은 슬픔을 알려 전세사기 특별법 제정에 목소리를 내려 했지만 쉽지만은 않았다"면서 "그럼에도 미추홀구를 비롯한 전국의 전세사기 피해 대책위원회 덕분에 작은 변화가 생겼다"고 말했다.

그의 책에는 한순간에 전세사기 피해자가 된 평범한 청년의 삶이 어떻게 변했는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최씨는 전세보증금 대출이 연장되지 않아 고금리 카드론을 통해 돌려막기 식으로 빚을 상환했다. 그는 카드 빚을 갚기 위해 하루 12시간씩 일했다고 한다. 낮에는 초밥집 직원으로, 퇴근 후엔 아르바이트로 고단한 일상이 이어졌다.

"처음에는 감정이 북받치면 눈물이 멈추지 않아 글쓰기 작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 과정을 수십 번 반복하니 마음에도 굳은살이 생겼나 봐요. 눈물을 흘리면서도 글을 써나갈 수 있었어요."

최씨는 "나처럼 전세사기로 피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단 1명이라도 줄어들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틈틈이 글을 썼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최씨의 저서를 언급하며 "정책의 기본으로 삼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씨는 "그동안 전셋집을 집주인은 투자처, 은행은 장사 수단, 세입자는 거주 용도로 각각 달리 보고 있었다"며 "집주인의 잘못으로 집이 경매에 넘어가면 집에 대한 권리는 세입자가 제일 마지막에 갖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투기를 위한 오피스텔과 다세대주택 등에는 강력한 대출 규제와 세금을 부과해 빌라왕, 건축왕이 생길 수 있는 기형적 시스템을 없애야 한다"며 "세입자에겐 조건 없이 높은 수준의 최우선변제금을 보장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씨는 최근 6개월 동안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원양상선에 올랐다. 그가 잃은 전세보증금은 '파일럿'이라는 오랜 꿈을 위한 자금이었다. 파일럿 교육을 받기 위해 목돈이 필요한 그에게 원양상선 승선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사기꾼들에게 돈을 빼앗긴 것이지 행복을 빼앗긴 게 아닙니다. 우리 모두 행복해야 할 의무감을 가지고 꼭 행복합시다."

원양상선에 오르기 전 꿈에 그리던 네팔 히말라야 여행을 마치고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최씨는 지난 1일 경인일보와 인터뷰에서 전세사기 피해자들에게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고 했다.

/백효은기자 100@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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