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않은 전쟁, 아픔딛고 미래로

피묻은 손으로 지켜낸 '자유'… 전쟁은 아직 '진행형'

입력 2023-12-18 20:39 수정 2024-01-18 15:07
지면 아이콘 지면 2023-12-19 11면

[끝나지않은 전쟁, 아픔딛고 미래로·(25·끝)] 잊지 말아야 하는 '아픔의 기억'


1129일의 처절했던 사투… 남북한 300만명 사망·실종
'정전 70주년' 올 1월부터 지역언론 9곳 '기억의 여정'
포화 속으로 뛰어든 수많은 젊은이들 발자취 되새겨

무고한 민간인 학살, 정확한 진실 규명 아직까지 미궁
비극 반복 안되려면 '기념 사업' 민간차원 동참해야
선열들이 지켜낸 역사, '다음 세대로 연결' 준비해야

'총력전(總力戰)'.

군대를 넘어 국가가 가용 가능한 모든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하여 싸우는 전쟁을 뜻한다. 말 그대로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전 국민이 전쟁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는 양상을 일컫는다.



총력전은 군대끼리 맞붙어 누가 더 많이 살아 남는가 등의 결과로 승패를 갈랐던 역사속의 전쟁과 달리 전쟁의 참상과 고통을 군인뿐만 아닌 참여하지 않는 민간인에까지 미치게 되며, 과거를 지나 현재까지도 겪게 하기도 한다.

70여년 전 한반도에서 벌어진 동족상잔의 비극, 한국전쟁은 이 같은 총력전의 참상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의 남침으로 발발해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되면서 중단된 한국전쟁은 1천129일동안 남북한을 통틀어 약 300만명의 사망 또는 실종자를 냈다.

당시 한반도의 인구가 3천만명 수준인 점을 고려하면 10명 중 1명이 전사한 것으로 사실상 모든 한국인이 이 전쟁으로 가족, 이웃, 친척을 잃는 참담한 경험을 한 셈이다.

한국전쟁은 전선의 전후방을 따지지 않았다. 국군과 인민군 모두 자신의 점령지역에 있는 민간인에게 '반동분자'라는 꼬리표를 붙여 학살을 자행했다. 이로 인해 적법한 절차 없이 희생되거나 행방불명된 민간인만 약 99만명에 이르고 있다. 이는 비슷한 시기 같은 총력전을 펼쳤던 제 2차 세계대전이나 베트남전쟁 등에 비해서도 월등히 높은 수치로, 여전히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차가운 땅속 산하에 잠들어 있는 희생자들이 셀 수 없이 많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처럼 총성이 멈춘 지 70년이 지났지만 승자도 패자도 없었던 한국전쟁은 우리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와 고통 그리고 수많은 과제를 남겼다.

이에 전국의 지역 대표 언론 9개사가 소속돼 있는 한국지방신문협회는 한국전쟁 정전 70주년을 맞은 올해 1월부터 '끝나지 않은 전쟁, 기억해야 할 미래'를 주제로 350일간 24차례에 걸쳐 각 지역에 담겨있는 한국전쟁의 상흔을 돌아보고 이를 치유하는 동시에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기억의 여정을 독자들과 함께 걸어왔다.

■ 수많은 희생이 지킨 자유


=각 신문사 취재팀은 먼저 1950년 6월 25일 첫 총성이 울린 이후 1953년 7월27일 총성이 완전히 멈출 때까지 한국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이름없는 젊은이들의 발자취를 찾았다.

평생 농사만 짓던 이들에게 전장에서 빗발치는 총성과 박격포의 굉음은 생전 처음 느껴보는 공포를 안겨줬다. 그러나 한국의 수많은 젊은이들은 조국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포화 속으로 뛰어들었다.

한국전쟁 첫 승전인 '춘천대첩', 결사항전으로 임시수도 부산을 지켜낸 '낙동강 전투', 앞서 낙동강 방어선 구축에 시간을 벌어준 '대전전투', 한국전쟁의 전황을 뒤바꾼 '인천상륙작전', 마지막으로 가장 처절했던 '백마고지 전투' 등 후손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내던진 무명 영웅들이 지역에 남긴 이야기를 돌아보고 그들의 숭고한 정신을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 남아있는 상처, 드러나지 않은 상흔

=이어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국가의 폭력에 희생된 죄 없는 민간인들의 이야기와 남아 있는 이들에게 남겨진 상처를 수면 위로 끄집어냈다.

전쟁에서 희생되는 건 전투에 참여한 군인들만이 아니다. 국군과 인민군이 다녀간 지역에 살던 수많은 민간인이 자신의 죄명도 모른 채 형무소로 끌려가 죽임을 당하거나 행방불명됐다.

전북과 전남, 경남 그리고 제주에서는 정부와 경찰이 죄 없는 민간인들에게 '빨갱이'라는 낙인을 찍어 무참히 살해한 '국민보도연맹' 학살사건이 자행됐다. 1950년 5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대전 동구 산내 골령골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의 경우 어림잡아 2천∼7천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현재 진실과화해위원회와 유족회 등이 조직돼 이들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이지만 정확한 희생자 수와 진실 규명 등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전쟁에 희생된 이들의 억울한 '한'은 대를 이어 전달돼 7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도 일부 유족들은 '빨갱이 자식'이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진 고통 속에서 살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 차원의 적극적인 노력과 관심이 필요한 상황이다.

■ 기억하라, 미래를 위하여


=마지막으로 취재팀은 전쟁의 상흔을 기억하고 앞으로의 미래를 그렸다.

현재 각 지자체마다 각종 기념관과 기념사업회가 설립됐고 자유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친 군인들을 잊지 않기 위해 학술적 연구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같은 민족이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에게 총구를 겨눈 한국전쟁과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이 땅에 남아 있는 우리는 당시의 기억을 담아내고 후세에 전하는 길을 걸어야 한다.

전쟁 초기 서울 함락 이후 정전협정까지 1천23일 동안 대한민국의 임시수도로서 기능했던 부산에서는 당시 정부청사 등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재 임시수도 정부청사는 국가등록 문화재로 지정돼 관리 중이다.

마찬가지로 1950년 6월 28일 대한민국 임시수도로서 이승만 대통령이 머물렀던 옛 충남도청은 2013년 대전근현대사전시관으로 개관했다. 한국전쟁 당시 모습 등 100년간의 대전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한국전쟁의 뼈 아픈 비극을 기록으로 남기고 자유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한 영웅들의 이야기를 생생히 기록하기 위한 움직임도 진행 중이다.

현재 전황을 뒤바꾼 인천상륙작전과 한국을 지켜낸 낙동강 전투 등을 반추하기 위한 기록 사업과 마산만 전투, 춘천대첩의 기념관을 세우기 위한 계획이 추진 중이다. 국립현충원에 잠들어 있는 수많은 호국선열들을 기리는 선양사업도 함께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인해 점차 한국전쟁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당사자만 기억하는 잊혀진 역사가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정부와 지자체를 넘어 민간차원에서도 기념사업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하는 이유다.

■ 피로 지켜낸 공간을 물려받은 우리…함께 전해야 할 기억


=지난해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한국전쟁과도 같은 전쟁의 참상이 21세기에도 여전히 일어날 수 있다는 경각심을 일깨웠다.

여전히 한국전쟁은 진행 중인 '끝나지 않은 전쟁'이다.

북한은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에 서명한 이후 여전히 우리의 빈틈을 엿보며 총구를 겨누고 있고 국제 사회도 제 3차 세계대전의 유력 후보지로 한반도를 꼽곤 한다. 이 땅에 종전의 마침표가 언제 찍힐지 가늠하기도 어렵다.

이와 동시에 '기억해야 할 미래'이기도 한 것이 바로 한국전쟁이다.

어쩌면 다시는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말이 있듯이 73년 전 선열들이 피로 지켜낸 공간에 살고 있는 우리가 잊혀져 가는 한국전쟁의 기억을 다음 세대에 고스란히 연결하는 것을 준비해야 한다.

/전북일보=이준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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