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지고 떠나, 공포만 남은 급식실·(1)] 폐암 노출된 환경, 변하지 않는 학교


공기 배출장치 설비 이상땐
조리실 안개낀 듯 자욱해져
지원청 "시설엔 문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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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경기도내 한 학교 급식실에서 조리준비 하는 모습. 2024.1.4 /목은수기자 wood@kyeongin.com

 

성남시의 한 고등학교 급식실에서 일하다 2020년 6월 폐암 진단을 받은 조리실무사 A씨가 수년간의 투병 끝에 지난달 숨졌다. 현재까지 경기도에서만 16명의 노동자가 폐암 확진판정을 받았다.

경기도교육청이 여러 대책을 내놓았지만, 현장에서 느끼는 변화는 더디기만 하다. 그 사이 급식실은 모두가 기피하는 공간이 됐다. 폐암에 걸린 노동자들은 급식실로 돌아오는 대신 사표를 내고, 조리실무사의 정원 미달은 일상적인 문제가 됐다.

본보는 5차례에 걸쳐 급식실 노동환경의 실태와 문제점, 해결방안을 모색해 본다. → 편집자 주

"머리가 너무 지끈거리면 타이레놀을 먹어요."

지난 4일 찾은 도내 한 초등학교 급식실. 조리실무사 8명이 분주하게 급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빠르게 일해야 하는 특성상 모든 반찬조리가 쉽지 않지만, 가장 고역은 튀김류다. 180도가 넘는 기름 앞에서 일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날 튀김류는 냉동식품이라 그나마 나았다. 수제 튀김 요리일 경우 '하나 하나' 만들어서 서로 들러붙지 않게 중간중간 거름망으로 건져내 탁탁 쳐가며 튀겨야 한다.

이곳에서 일하는 14년 차 조리실무사 A씨는 "튀김이나 전을 할 때는 목이 칼칼하고 싸르르한 게 느껴진다"며 "튀김솥 앞에서 계속 연기를 맡다 보면 머리가 아픈데, 심한 날은 가져온 두통약을 먹기도 한다"고 했다.

고온에 노출된 작업환경과 연기가 잘 빠져나가지 못하는 구조 탓에 숨이 차고 답답하다는 게 조리실무사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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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경기도내 한 학교 급식실에서 조리준비 하는 모습. 2024.1.4 /목은수기자 wood@kyeongin.com

용인의 한 조리실무사는 "튀김을 하는 날은 땀이 줄줄 나서 사람이 지쳐버린다. 밥도 잘 안 넘어가 그날은 거의 밥을 먹지도 못한다"고 했다. 후드(공기 배출 장치) 설비가 잘못된 경우 상황은 더 심각하다. 의왕의 한 조리실무사는 "후드는 오자마자 켜는 데도 음식을 만들다 보면 조리실이 안개 낀 듯 자욱해진다"며 "숨이 너무 차면 잠깐 홀에 나와 에어컨 바람을 쐬고 숨을 고른다"고 전했다.

이날 조리를 끝내고 기름을 걷어낸 튀김솥은 가장자리를 중심으로 누런 기름때가 들러붙은 모습이었다. 시간은 부족하고 일반 세제로는 잘 닦이지 않는 탓에 약품을 사용하지만, 너무 독하다고 조리실무사 B씨는 설명했다. 그는 "약 냄새가 코로 올라오면 컥컥거릴 때가 있어서 중간중간 숨을 참는 게 습관이 됐다"고 했다. 그가 솥을 청소하는 모습은 닦는다기보다는 긁어내는 것에 가까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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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경기도내 한 학교 급식실에서 조리준비 하는 모습. 2024.1.4 /목은수기자 wood@kyeongin.com

급식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잇따라 폐암판정을 받고 있다. 2021년 수원의 한 중학교 급식실에서 근무하다 폐암에 걸린 조리실무사가 처음으로 산재인정을 받으면서, 전국 시·도 교육청은 급식실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건강검진을 시행했다.

경기도교육청에 따르면 검진결과 도내에서 폐암 확진판정을 받은 급식실 조리사는 16명이다. 검진 전 수치는 통계조차 없다. '폐암 의심' 또는 '매우 의심' 판정을 받은 129명을 포함해 이상소견을 받은 노동자는 1만1천905명 중 3천996명(33.6%)에 달한다.

조은정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경기지부 정책국장은 "경기도에만 37곳의 지하급식실이 있는데, 여기서 폐암 환자가 4명이나 나왔다. 당시 지원청에 설비 점검을 요청했는데도, 시설에는 문제가 없다고만 답할 뿐 개선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며 "교육청이 여러 대책을 발표만 하는 사이 노동자들은 여전히 위험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관련기사 (급식실노동자 폐암 만드는 '연기', 형식적 조치로 틀어막았나)

/목은수기자 wood@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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