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물질 노출로 '폐암 위험' 높아지는 노동
환기시설 보완 시급한 학교부터 선정 '정비'
인력 충분히 확보 노동 강도·조건 조절 필요
기름·조리방식 등 중요… '본보기 사례'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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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 직업환경의학전문의
우리 사회가 '밥하는 일'로 가벼이 생각했던 학교 급식 노동자들의 노동이, 하루 평균 531만명 학생들의 끼니를 책임지는 중요한 일일뿐더러, 폐암 위험이 높아지는 노동이었다는 것이 뒤늦게 알려졌다. 급식실의 위험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충분한 듯하다. 이제 필요한 것은 개선과 변화인데, 그 방향이 중요하다.

조리흄(cooking fume, 요리 매연)을 작업환경측정 대상으로 정해서 관리하자는 의견도 있지만, 실효는 의문이다. 작업환경측정은 작업 시 노출될 수 있는 유해물질의 기준 농도를 정해놓고, 보통 6개월에 한 번씩 공기 중의 유해물질 농도를 측정하여 기준 농도 아래로 유지하도록 하는 관리제도이다.

하지만 조리흄은 단일 물질이 아니라 분진, 오일미스트, 가스 등 여러 물질의 혼합물이다. 또 원재료 성분, 조리 기름의 종류와 온도, 조리 방식 등 여러 요인에 의해 매우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어, 정량화 방법이 학계에서도 합의되지 않았다. 그래서 노출 양을 측정하고 관리하기 위한 제도를 도입하기보다 작업환경을 관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작업환경 관리 첫 번째는 환기다. 이미 경기도교육청에서 실태조사가 이루어졌고, 대부분 학교의 환기설비가 적절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조사에 더 힘을 쓰기 보다, 교육부에서 제시한 급식실 환기설치 가이드라인에 따라 개선을 빠르게 시행해야 한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초기 개선 과정에서 도교육청 단위에서 '표준 모델'을 만드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점이다. 일선 학교에 가이드라인만 던져준 채, 각자 주어진 예산 범위 내에서 개선하려다보면 돈만 쓰고 충분한 개선은 되지 않을 위험이 있다. 그동안 학교에서 설비를 할 때 특별히 환기나 배기 등을 고려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제대로 개선하려 해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무조건 예산을 내려보내고 각자 개선하도록 하는 방식 대신, 더 위험한 학교나 개선이 시급한 학교를 선정해 도교육청, 교육지원청 별로 표준적인 개선 모델을 만들고 주변 학교들이 순차적으로 따라서 개선하도록 해야 한다.

노출을 줄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학교 급식실 인력이 충분해서 노동강도가 낮아지는 것이다. 병원, 공공기관, 회사, 군대 등 다양한 집단급식 중 특히 학교 급식에서 1인당 식수 인원이 높고 노동강도가 높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노동강도가 높으면 호흡수가 높아지고, 피부 노출도 높아진다. 인력이 부족할수록 튀김 등 조리흄 노출이 많은 메뉴를 담당하는 빈도도 당연히 늘어난다. 또 대량으로 조리할 때 조리흄의 순간 최고 수준 농도 노출이 높아진다.

그래서 학교급식실 조리 노동자를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각 학교에서 인력난이 심해, 노동강도가 높은 것은 물론이고 노동자들이 병가나 휴가 쓰기 어렵다는 얘기도 흔히 들려온다.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보상을 높이는 등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일부 학교에서 급식실 개선 예산을 활용해 공기청정기를 구입하거나, 가스 노출을 염려해 가스 화구 대신 전기 인덕션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공기청정기나 인덕션 도입은 조리흄 노출을 줄이는 데 효과적인 방법이 아니다. 공기청정기는 실내 공기를 흡입하여 걸러낸 뒤 다시 공기를 배출한다. 공기청정기의 필터는 주로 '분진' 형태의 오염 물질을 걸러내기 때문에, 조리흄의 다양한 성분 중 가스 형태나 오일 종류의 성분은 걸러내지 못한 채 그 공기를 다시 실내에 내놓게 된다.

또 폐암 유발요인인 조리흄 노출은 기름 종류, 온도, 조리방식이 중요하지, 화구가 가스냐 인덕션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조리실에서 이용되는 가스 자체가 폐암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한 번 교육부, 도교육청 역할이 중요하다. 이런 점들을 두루 살펴 각 학교에서 본보기로 따라할 만한 개선 사례를 보여주고, 이를 '위에서부터 아래로' 전파 시키는 역할을 '직접' 해야 한다. '죽음의 급식실'이라는 말이 사라지도록, 빠르고 올바른 개선이 필요하다.

/최민 직업환경의학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