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대 국회의원 선거

[현장르포] 22대 총선 최대 승부처 ‘계양구을’… 정작 지역이야기 없다

입력 2024-02-04 18:33 수정 2024-02-04 19:25

인천 ‘계양구을’이 총선에서 전국 최대 승부처가 될 전망이다. 거대 야당을 이끄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역구 출마 여부를 확정 짓기 위한 마지막 조율 작업을 진행 중이며 국민의힘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은 예비후보 등록을 완료하고 교회, 등산길 등을 돌아보는 지역 행보를 시작했다. 10여 년 전부터 터를 잡고 정치력을 확대해온 같은 당 윤형선 전 국민의힘 계양구을 당협위원장은 일찌감치 예비후보로 등록하고 지지세를 넓히고 있고, 소수 정당에서는 진보당 고혜경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인천지부 교육위원장이 예비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최근 이재명 대표의 측근에서 저격수로 돌아선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의 출마설도 흘러나온다. 계양구을이 4·10 총선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정치적으로 크게 주목받지 않았던 조용한 선거구가 하루아침에 거물 정치인의 각축장으로 변했다. 이를 지켜보는 계양구을 유권자의 생각은 복잡하다. 계양구 주민들의 ‘바닥 민심’을 듣고자 지난2일 일부 주민을 만나 직접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재명 인천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 출마선언

사진은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나서는 당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상임고문이 계양산 야외공연장에서 열린 출마 선언 기자회견에 잎서 지지자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는 모습. 2022.5.8 /경인일보DB

먼저 계양산을 찾아갔다. 계양산은 계양구를 대표하는 장소 중 하나로 최근 정치인들이 자신의 정치 행보를 대중에게 보여줄 장소로 이곳을 택했다. 이재명 대표는 민주당 상임고문으로 있던 2022년 5월 인천 계양구 계양산 야외공연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계양구을 출마를 선언했다. 이재명 고문이 공식 석상에 나선 건 대선 패배 이후 그날이 처음이었다. 국민의힘 원희룡 전 국토부 장관은 계양구을 예비후보 등록 후 첫 일정으로 지난 4일 계양산 둘레길을 택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원희룡 전 장관은 인천과 뚜렷한 접점이 없었지만 이곳을 정치적 기반으로 선택했다. 연고 없는 두 인물에 대해 이곳에서 만난 시민들의 의견은 엇갈렸다. 연고가 중요치 않다는 생각과 그래도 중요하다는 의견이 팽팽했다.

임재정(52)씨는 “이재명 대표와 원희룡 전 장관이 같이 계양을에 출마하면 재밌을 거 같다.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해온 윤형선 예비후보 같은 인물도 있지만, 그래도 이름값 있는 후보가 낫다고 생각한다”며 “이번에 당선되는 후보는 이번 총선에서 계양구을이 크게 주목받았던 점을 의식해서라도 지역에서 뭔가를 더 해주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 김예성(32)씨는 “인천에 연고가 없는 두 인물 모두 마음에 안 든다. 국회의원으로서 정치적 영향력은 있겠지만 지역구를 잘 알고 작은 것을 챙기며 이바지할 인물은 아닌 거 같다”며 “당위성도 없고 계양을이 너무 정치공학적 희생양이 되는 거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계양구을이 정치적으로 크게 주목받기 시작한 시점은 지난 2022년이다.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가 국회의원 시절 서울시장 출마를 위해 지역구 국회의원직을 내려놓은 곳이다. 송 전 대표는 계양을 한곳에서 5차례 의원직을 차지했다. 송 전 대표 빈자리를 당시 이재명 민주당 상임고문이 2022년 보궐선거에 나서며 이때부터 계양구을이 전국적 관심을 모았다.

ㄴ

인천 계양구을 역대 선거 당선자 명단

계양은 2004년 17대 총선에서 갑·을로 분리되며 2010년 재보궐선거를 제외하고는 민주당이 단 한차례도 승리를 놓치지 않은 지역구다. 송 전대표는 2000년 16대 총선 당시 이곳에서 첫 금배지를 달았고 이후 17·18·20·21대 총선에서 승리하며 ‘5선 의원’이 됐다. 국민의힘 계열 보수정당에서는 지난 2010년 이상권 새누리당 후보가 계양구을 재보선에서 이겼지만, 이후 민주통합당 최원식 후보에게 2년 만에 다시 자리를 내줬다. 이후 송영길·이재명 등이 당선됐다.

계산역으로 눈을 돌렸다. 계양구 내에 상업·교통이 비교적 발달했지만 주택가는 구도심으로 평가되는 곳이다. 수십 년 넘게 살아온 토박이 주민 가운데 ‘지역 개발’이 필요하다는 이들도 만났다. 20년째 식당을 운영하는 오이화(63)씨는 “계양구 주택가는 낙후된 곳이 많고, 노인들만 산다. 동네가 낙후되니 새로운 게 안 들어온다”며 “조금 살 만한 사람들은 청라나 검단으로 빠진다. 지역발전을 위해서라도 재개발·재건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계산역 인근 아파트 현수막

계산역 인근 한 아파트 단지에 걸려있는 아파트 현수막. 빠른 재건축을 요구하고 있다. 2024.2.2 /김성호 기자

계산역에서 150m 떨어진 곳에 저층 아파트 단지가 나타났다. 대통령·인천시장·구청장·지역구 국회의원 이름을 언급하며 재건축과 안전진단 면제를 요구하는 현수막이 아파트 단지 담장에 걸려 있었다. 이 일대에는 1980년대 말에서 1990년 준공한 노후 저층 아파트단지 3천700가구가 밀집해 있다. 1천가구 규모 아파트 단지에서 30년 넘게 거주했다는 이권형(55)씨는 “1988년 올림픽때 지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바닷모래로 지었다고 하는데 외벽이 난리가 아니다. 도시가스배관에서 가스도 유출된다”면서 “누가 국회의원으로 오던 신도시뿐 아니라 이곳 구도심도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곳 한 아파트 단지 노인정을 찾아갔다. 80~90세 사이 여성 노인 7명이 모여 화투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어떤 국회의원이 ‘계양구을’ 국회의원이 됐으면 좋겠냐는 질문에 노인들은 “국회의원끼리 싸우지 않아야 한다” “나쁜 말을 안 했으면 좋겠다” “다 필요없다”는 등의 말을 쏟아냈다. 그러면서도 “계양구를 위해서 제대로 일할 사람이 와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전영순(87)씨는 “거친 말 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예쁘게 말하고, 겸손한 그런 사람이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정치인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한 달에 10번인 노인들을 위한 일자리 횟수를 (지금보다) 늘렸으면 좋겠다”는 목소리와, “노령연금을 조금 올렸으면 좋겠다”는 대답도 나왔다.

계양구청

계양구 최대 번화가로 불리는 계양구청 주변 계양문화로 일대. /계양구 제공

계양구청을 비롯해 소방서, 경찰서, 우체국, 보건소 등 관공서와 병원, 대형마트, 영화관, 먹자골목 등이 밀집한 계양구 내 최대 번화가인 계양문화로 일대에도 찾아가 목소리를 들었다. 계양구청으로부터 약 1㎞ 반경 내 학교만 20곳에 이르고, 인접 아파트만 수만 가구를 훌쩍 넘어 다양한 성별과 연령층의 유권자가 섞여 있는 장소다.

계산4동 오조산 공원에서 만난 두 노인은 최근 이곳에 출마하기로 한 원희룡 전 장관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계양구에서 50여 년을 살았다는 A씨(남·70대)는 “이곳도 이제 바뀔 때가 됐다”며 “항상 같은 곳(민주당)만 뽑아주니 지역이 변하지를 않는다. 내가 정치는 잘 몰라도 민주당이 계양에서 너무 편하게 있는 것은 알 것 같다”고 했다. 옆에 있던 B씨(남·70대)는 변화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국민의힘 출신 후보의 당선이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B씨는 “여기엔 옛날에 지방에서 가난하게 올라와 터를 잡은 사람이 많다. 민주당이 유리한 것도 그 이유”라며 “윤석열 밑에서 장관했던 사람이 오면 이곳이 바뀔 것 같긴 하지만 뽑는 사람들이 변하겠나”라고 했다.

이재명 당대표에 대한 ‘동정론’도 눈에 띄었다. 공원에서 체육시설을 이용하고 있는 성모씨(여·60대)는 “이재명이 검찰에 계속 괴롭힘을 받고 얼마 전에 칼까지 맞지 않았느냐”라며 “고생한 사람이 지역에서 다시 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대형마트에 유모차와 함께 장을 보러 온 한 주부는 ‘선택지’가 없어 고민이라고 했다. 김모씨(여·37)는 “계양구에 출마하겠다는 정치인이 많아진 것 같은데 정작 지역 얘기를 깊게 하는 사람은 없어 누굴 뽑아야 맞는지 모르겠다”며 “뉴스에서는 이재명과 원희룡 이름만 나오는데 둘 다 계양구에서 실제 얼굴 본 적은 없다. 계양구가 서울로 가는 대중교통도 더 발달하고 아이가 커서 살기 좋은 곳이 됐으면 하는데 누구를 선택하는 게 좋은 거냐”고 반문했다.

로또 판매점을 운영하는 한 상인도 “방송에서 정치인이 서로 다투는 내용만 나오는데 그 대표격들이 이곳에서도 싸운다고 생각하니 투표를 하기 싫어졌다”며 “국민 수준이 많이 높아졌는데 정치는 아직도 서로의 잘못만 지적하고 있다. 계양구 얘기를 좀 했으면 한다”고 지적했다.

2

박형우 전 계양구청장 역대 선거 결과

1

윤형선 전 계양구을 당협위원장 역대 선거 결과

계양구를 위해 지역에 익숙한 인물이 나와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민주당에서 계양구을 출마 의지를 밝힌 박형우 전 계양구청장은 가장 최근까지 계양구에서 내리 3선 구청장을 지낸 지역 토박이다. 국민의힘 쪽에서는 윤형선 전 계양구을 당협위원장이 1998년 3월부터 병원을 운영하며 지역 텃밭을 닦아왔다.

공인중개사 정모씨(남·62)는 “계양구에서 국민의힘은 힘들지 않겠나. 민주당 후보만 따지자면 지역에서 오랜 기간 일한 박형우가 나오는 게 바람직하다”며 “윤형선도 고생을 많이했는데, 여기선 ‘간판’(당)을 바꾸지 않는 이상 힘들 것 같다. 지역에 대해 잘 알고 관심 많은 사람이 나오길 바란다”고 했다. 다른 상인 C씨(남·40대)는 “한번 인물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익숙한 곳보다는 기회를 갖지 못했던 곳에서 가장 절박하게 오랜 기간 있었던 후보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

이낙연 새로운미래 인재영입위원장이 2일 인천 계양구에서 인천시당 창당대회에 참석해 ‘국민과 함께’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서있다. 2024.2.2 /박현주기자 phj@kyeongin.com

이날 계양구에서 열린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의 신당 ‘새로운미래’ 창당식에 대한 불편한 시선도 있었다. 호남 출신으로 수십년간 계양구에서 공인중개사로 일한 박모씨(남·59)는 “민주당에서 빠져나온 신당에서 계양구에 후보를 내면 같은 쪽에서 표를 갈라먹게 된다”며 “원희룡이 이재명 대항마로 계양구에 출마하겠다는 것 자체가 계양구민을 바라보기보다는 자기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한 것인데 지역민 입장에선 전혀 달갑지 않다”고 강조했다.




경인일보 포토

김성호·조경욱·유진주기자

ksh96@kyeongin.com

김성호·조경욱·유진주기자 기사모음

경인일보

제보안내

경인일보는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제보자 신분은 경인일보 보도 준칙에 의해 철저히 보호되며, 제공하신 개인정보는 취재를 위해서만 사용됩니다. 제보 방법은 홈페이지 외에도 이메일 및 카카오톡을 통해 제보할 수 있습니다.

- 이메일 문의 : jebo@kyeongin.com
- 카카오톡 ID : @경인일보

개인정보의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안내

  • 수집항목 : 회사명, 이름, 전화번호, 이메일
  • 수집목적 : 본인확인, 접수 및 결과 회신
  • 이용기간 : 원칙적으로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목적이 달성된 후에 해당정보를 지체없이 파기합니다.

기사제보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익명 제보가 가능합니다.
단, 추가 취재가 필요한 제보자는 연락처를 정확히 입력해주시기 바랍니다.

*최대 용량 10MB
새로고침